역사문화경관
- 제목
-
충렬사
작성일 2010-06-23
조회수 199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0-06-23
- 분류
- 충렬사
- 지역
- 부산 동래구
- 위치
-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838번지
- URL
- Keyword
- 역사문화경관,충렬사
- 내용
- - 문화재 정보 :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7호
- 지 정 일 : 1972.06.26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 공을 모시기 위해 1605년(선조 38) 당시의 동래부사 윤훤(尹暄)이 동래읍성 남문 근처의 농주산에 송공의 위패를 모신 송공사(宋公祠)를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그 시초이다. 그 후 1624년(인조 2) 선위사(宣慰使) 이민구의 청으로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짐에 따라 송공사는 충렬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1652년(효종 3) 동래부사 윤문거가 당시의 사당이 좁고 저습하며, 성문이 가까이 있어 시끄러워 위치가 적당하지 않다는 점과 송상현 공의 학행과 충절은 후학의 사표가 되므로 그 학행과 충절을 선비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들어 안락동 현 충렬사 자리로 이전하면서 사당을 창건 한 후 강당과 동·서재를 지어 안락서원이라 하였다.
그러나 일제시기 서원에서의 교육과 함께 동래의 유림에 의해 매년 2월과 8월에 봉행되는 제향이 민족정기를 북돋운다고 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방해를 가했기 때문에 일제 36년을 거치는 동안 서원과 사우(祠宇 : 신주를 모시기 위해 따로 지은 집)는 보수를 하지 못하고 낡아 허물어져 갔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정화공사를 실시하여 현재의 규모로 정화한 후 임진왜란 때 부산지방에서 순절하거나 공을 세운 모든 선열의 위패를 직책 또는 증직(曾職)의 순서에 따라 92위의 신위를 모셨다. 현재 매년 5월 25일에는 부산시민 모두의 정성을 모아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1592년 왜적이 동래읍성으로 쳐들어와 길을 빌려 달라(항복하라)고 하자 송상현 공이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라는 글을 나무판에 써 적진으로 던지고, 왜적과 싸우다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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