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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구

수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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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부산지역에는 최근에 해운대 청사포와 신시가지 개발지역에서 구석기 유물이 채집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이 거주하였다. 수영지역은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수영동(좌수영)에서 마제석검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 대부터 사람이 주거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삼한 및 삼국시대 초 수영지역은 거칠산국의 영역 하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거칠산국은 『삼국사기』권34, 지리지에 의하면, "동래군은 본래 거칠산국 이었는데 경덕왕 때 동래군으로 고쳐 지금도 이를 따르고 있다. 영현이 둘이다"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권23, 동래현조에는 "옛 장산국이다(혹은 내산국) 신라가 점유하고는 거칠산국을 두었는데,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수영지역도 거칠산국의 영역에 속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고려사』권57, 지리2 울주조에 의하면, "속현이 둘이 있는데, 동래현과 헌양현이다"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사』 권57, 지리2 동래현조에는 "현종 9년에 본주(울주)에 소속시켰으며 후에 현령을 두었다. 이 현에는 온천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영지역은 동래현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수영지역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을 설치하였고, 태종조에 울산 개운 포에 있던 것이 임란 직전 부산 수영으로 옮겨졌다. 임란 직후인 인조 13년(1635)에 남구 감만동으로 옮겼다가 감만지역이 왜관(현 수정동 부근)과 거리가 가까워 군사기밀이 누설될 우려가 있다 하여 효종 3년(1652)에 다시 오늘날의 수영(현 현대아파트 부근)으로 이전되었다. 수영지역은 조선시대 대외 군사 요충지로 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였던 군사기지였다.
한편, 행정구역 살펴보면, 『동래부지(1740)』에 의하면, 7개면 82리 19동의 체제였으며, 『동래부읍지(1832)』에 9면 체제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1832년 이전에 9면체제로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남읍지(1895)』에는 9면 131동리, 『경상 도동래군가호안(1904)』에는 12면(읍내면, 북면, 서상면, 서하면, 사상면, 사중면, 사하면, 동평면, 남하면, 남상면, 동하면, 동상면) 154동리로 변화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수영지역은 조선후기 이후 남촌면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남촌면의 영역은 축산동(광안동), 숭정리(망미동), 감포리(수영백산 아래), 동부리 (수영동의 북쪽), 남문외리(수영성의 남쪽), 남천리(남천동) 등이다.
일제시대의 수영지역은 1914년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동래군에 소속되었고, 1942년에는 동래군의 수영과 해운대의 일부가 부산부에 편입되면서, 수영출장소(수영동, 광 안동, 민락동)가 설치되었다. 1949년 8월 부제를 시제로 바뀌어 부산시에 속하게 되었다. 1953년에는 해운대출장소(우동, 중동, 좌동)가 수영 출장소에서 분리되었다. 1957년에는 구제의 실시로 부산진구 대연출장소와 동래구 수영출장소로 개편되었고, 1973년에는 시직할 대연출장소로 승격되었다. 그러다가 1975년에 남구로 승격되었고, 1995년 3월 1일 남구에서 수영구로 분구되었다. 현재 수영구의 관할동은 남천1, 2동, 수영동, 망미1, 2동, 광안1, 2, 3, 4동, 민락동 등이 있다.

관할행정구역

남천제1동(南川第1洞), 남천제2동(南川第2洞), 수영동(水營洞), 망미제1동(望美第1洞), 망미제2동(望美第2洞), 광안제1동(廣安第1洞), 광안제2동(廣安第2洞), 광안제3동(廣安第3洞), 광안제4동(廣安第4洞), 민락동(民樂洞)

주소 및 전화번호
[48305]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동로 100 (Tel : 051-610-4000)

자료관리 담당자

자치행정담당관
황종연 (051-888-1805)
최근 업데이트
201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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