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사상구

사상구

홈페이지 - http://www.sasang.go.kr 바로가기
연혁

사상지역은 낙동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조건과 따뜻한 기후 등의 좋은 자연적인 조건으로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여 생활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사상지역의 신석기 유적으로는 모라동과 학장동의 조개무지 유적에서 김해문화기의 김해식 토기 파편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무렵 동래에는 독로국이 있었으므로 낙동강 하구의 동안지역인 사상지역은 변한 12국중 독로국에 속하였던 지역이다.
삼한 및 삼국시대 사상지역은 거칠산국의 영역 하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거칠 산국은 신라 지증왕 16년(505)에 거칠산군이 되었고, 거칠산군에는 두 개의 속현 이 있었는데 그 하나는 갑화량곡현이며, 또 하나는 당감동 근처에 그 치소를 갖고 있던 대증현이다. 거칠산국은 『삼국사기』권34, 지리지에 의하면, "동래군은 본래 거칠산국이었는데 경덕왕 때 동래군으로 고쳐 지금도 이를 따르고 있다. 영현 이 둘이다"라고 하고 있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1530)』권23, 동래현조에 의하 면, "옛장산국이다(혹은 내산국 이라고도 한다), 신라가 점유하고는 거칠산군을 두었는데,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고 하고 있다. 사상지역은 구포, 주례, 개금지역과 함께 동평현에 속했다.
고려시대에는 『고려사』권57, 지리2 울주조에 의하면, "속현이 둘이 있는데, 동래 현과 헌양현이다"라고 있다. 그리고 『고려사』권57, 지리2 동래현조에 의하면, "현종 9년에 본주(울주)에 소속시켰으며 후에 현령을 두었다. 이 현에는 온천이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 성종 2년(983) 전국에 12목을 설치하여 지방관을 파견하였고, 이때 사상지역은 상주목에 속했고, 동왕 14년(995) 전국을 12도로 나누고 사상은 영동도 양주군(현 양산) 동평현에 속해 있었다.
조선시대 동래는 태조 6년(1397)에 군사요충지로 진이 설치되고 병마사가 동래현의 행정관인 판현사를 겸임하였으며, 세종 5년(1423) 병마사를 첨절제사로 개칭, 세종 22년 진을 속현인 동평현으로 옮겼다가 다시 환진하였다. 명종 2년(1547) 동래부로 승격되었다. 한편, 조선후기에는 『동래부지(1740)』에서는 7개면(읍내면, 동면, 남 촌면, 동평면, 사천면, 서면, 북면)82리 19동 체제로 사상은 사천면에 속했다. 사천 면은 상단에 포함되었고, 뒤에 상단은 사상면으로 하단은 사하면으로 불렀다. 『동 래부읍지(1832)』에 의하면, 사상면에는 주례리, 괘내리, 덕포리, 대수리, 모라리, 장문리, 엄광리의 6개리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경상도동래군가호안 (1904 )』에는 12면 154동리로 사상지역은 사상면(주례리, 감동, 괘내리, 모라리, 덕포동, 창법동, 서전동, 엄궁동, 장문동, 학성동, 구포동)에 속하였다.
일제시기에는 1914년에는 동래군 사상면에 속했다가 1936년 부산부에 편입되어 부산진 출장소에 소속 되었다. 1949년 8월 부제를 시제로 개칭되고, 이후 1963년에는 부산진구 의 사상출장소가 되었다가 1975년 1월 1일 부산진구의 구포 및 사상 출장소를 통합하여 북부출장소가 되었다. 1978년 2월 15일 북구로 승격, 그리고 1995년 3월 1일에는 북구에서 사상구로 분구되었다.

관할행정구역

삼락동(三樂洞), 모라제1동(毛羅第1洞), 모라제3동(毛羅第3洞), 덕포제1동(德浦第1洞), 덕포제2동(德浦第2洞), 괘법동(掛法洞), 감전동(甘田洞), 주례제1동(周禮第1洞), 주례제2동(周禮第2洞), 주례제3동(周禮第3洞), 학장동(鶴章洞), 엄궁동(嚴弓洞)

주소 및 전화번호
[46985]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감대로 242 (Tel : 051-310-4000)

자료관리 담당자

자치행정담당관
황종연 (051-888-1805)
최근 업데이트
2016-12-19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