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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도서관

부산도서관

부산지역의 도서관의 기원은 일본인이 경영하였던 일본홍도회(日本 弘道會) 도서실이 최초의 도서관이다. 1901년 일본인전관거류지 내에 일본인들은 수양단체인 홍도회를 조직하여 1902년 용두산 동쪽 기슭에 사무실을 두고 사무실내 별도의 방에다 책을 모아 일반인에게 열람케 한 것이 부산지역 도서관의 효시라 할 수 있다. 1903년 홍도회 부산지부는 사무실을 개축하면서 기존 도서실에다『부산도서관(釜山圖書館)』이란 간판을 내걸면서 도서관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으나, 시설이나 장서는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뒤 "부산교육회"가 조직되면서 홍도회의 부산도서관을 인수하게 되었다.

1911년 11월 지금의 광복동에서 용두산공원 계단을 오르다 보면 중턱자리 체력단련장에 건평 44평에 서구식 건물을 신축하여 1912년 6월 열람석 60석의 부산도서관이 새롭게 개관되었다. 1913년도 부산도서관의 개관 일수는 299일에 열람인원은 3,516명으로, 하루 평균 11.8명에 지나지 않았다. 1914년 10월 당시 장서 총수량은 5,329권 중 일본서적과 한서가 5,046권이고 나머지 283권이 양서였다고 한다. 1915년 도서관의 관리권이 부산교육회에서 부산부로 넘어 가면서 열람료를 무료로 하였다.

1933년도에는 2층 본관 건물과 89평의 1층 서고를 갖추게 되면서, 장서가 늘어나면서 시민들의 열람의욕도 높아지게 되었다. 부산도서관은 1936년 부산부청이 신청사로 이전함에 따라 1937년 9월 16일 구 부산부청사로 이전하여 업무를 시작하였다. 1층에 접수실, 신문열람실, 아동열람실을, 2층에 일반열람실, 특별열람실 등을 두었고 3만 여권의 장서를 갖추게 되면서 도서관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1938년 2월 9일 화재 발생으로 2층 건물이 전소하여, 용두산 구 도서관 건물을 임시 도서관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도서관 건물 신축을 추진하였으나 빛을 보지 못하고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광복 이후 도서관 업무는 일시 중단되었다가 1945년 12월 25일 기존 용두산 도서관 건물로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부산시와 적산관리처 등 관계기관에 요청하여 동광동 부산시교육위원회 청사(지금의 동광동 반도호텔 자리)의 별관을 도서관으로 개조하여 재 개관하게 되었다. 1948년 8월 부산시립도서관으로 개칭하였고, 한국전쟁 때는 청사가 징발 당하면서 일시 휴관을 하게 되었다.

1963년 8월 5일 중구 동광동에서 부산진구 부전동으로 신축하여 이전하였고, 1982년 8월 17일 지금의 초읍동으로 신축 이전 개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산의 도서관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용두산 "부산도서관" 건물은 1954년 12월 용두산 대화재 때 부근의 판자촌과 더불어 완전히 소실되면서 그 흔적조차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그 터에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인근 주민들의 체력 단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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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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