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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상

장건상

경상북도 칠곡에서 1882년에 태어나 1883년 부산 좌천동으로 이주하여왔다. 좌천재(佐川齋)에서 12년간 수학하였다. 1916년 상해(上海)로 망명, 신규식(申圭植)이 조직 운영하던 동제사(同濟社)에 가담하여 독립운동 전선에 뛰어들었으며, 1917년 만주(滿洲) 안동현(安東縣)에서 망명객의 길 안내역을 맡아 활동했고, 영국상선(이륭양행 소속) 안동지사장 죠지 쇼우와 친교를 맺었다고 한다.

1919년 4월 22일 임정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고 외무부 위원이 되었으며, 동년 7월 1일 대한적십자회가 상해에서 창립되어 상의원이 되었다. 1919년 의열단의 기밀부 요직을 맡아 활약하였으며, 1921년 4월 19일 3.1운동이 발발했을 때 미국에 있던 이승만 등이 미국정부에 우리 나라를 위임 통치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한 것이 알려지자 임정은이를 크게 성토하였다.

1921년 5월 임정을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것을 주장하는 소위 창조파의 일원으로서 길립, 원세훈, 신숙 등과 조선공화정부를 북경에서 조직하고 외무총장으로 선임되었다. 1921년 8월 고려공산당에 입당, 1924년 상해임정 외교총장으로 있으면서 의열단인 이종암 등의 입국 활동시 필요한 혁명선언서 신임장과 위임장을 교부하였다.

1926년 10월 28일 북경에서 한국유일독립당 촉성회의 취지문을 발표하고 7인 집행위원중 1인이 되었으며 대표 조성환의 명을 받아 남지나에 특파되어 선전에 주력하였다. 1927년 의열단 제3기 간부훈련을 마치고 민족혁명 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다시 조선민족혁명당원으로 상해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1942년 2월 임시의정원의 개헌에 따라 주석 김구, 부주석 김규식이 선출되고 국무위원에는 이시영을 비롯 14명중 1인으로 선출되어 학무부장이 되었다.

1942년 8월 4일 임시정부 외무부 외교연구위원으로 선임, 1942년 11월 17일 임시국무위원회 국무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했다. 1943년 10월 30일 조선민족혁명당에서 인도공작원으로 파견되도록 중국 국민당에 신분보장을 요청했으며, 1944년 4월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활약하였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그의 공적들을 기리어 1986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

자료관리 담당자

문화예술과
표용수 (051-888-5058)
최근 업데이트
201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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