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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장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말(馬)의 수요가 많았다. 특히 조선 정부에서는 승마(乘馬)·역마(驛馬)·군마(軍馬) 등으로 많이 쓰였다. 그 말은 방목으로 길러야 했는데 내륙에서 방목을 하려면 우리 나라에는 말의 천적인 호랑이가 많아 방목하기 어려웠다. 지금의 영도를 절영도라 했는데 절영도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내려오는 가운데 가장 좋은 국마장 이었고, 이 곳에서 나는 말을 절영마(絶影馬)라 했다.

영도의 국마장으로 1년에 한번 또는 두번 중앙에서 목자(牧子)가 내려와서 말을 검사하여 쓸만한 말에는 낙인을 찍었다. 낙인이 찍힌 말은 국가의 필요에 따라 징발되었다. 그렇게 말을 검사하는 곳을 고리장〔環場〕이라 했다. 둘레에 둥글게 고리〔環〕모양 말목을 쳐서 그 안에 말을 가두어 검사를 할 수 있게 한 장소였다. 당시 고리장이 있었던 곳은 신선동과 봉래동 경계지역으로 오늘날의 봉래동로터리 부근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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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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