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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빈매축

북빈매축

부산항의 본격적인 매축이 시작된 것은 부산 매축주식회사(釜山埋築株式會社 : 日本人 會社)가 설립되어 오늘의 중앙동 옛 부산역과 지금의 부산우체국과 세관부지와 중앙동의 중앙로 일대 북빈매축(北濱埋築)을 1898년 1월 구한국정부에 매축 허가를 요청하여 1900년 12월 8일에 매립을 허가하면서 부터이다.
이때 허가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① 부산항 일본조계 동쪽해변을 매축하고,
  • ② 경계는 부산감리와 해관장 및 일본 영사가 심의확정,
  • ③ 許可後 20개월 이내에 기공하고 기공 후 6년내에 준공하여야 하며, 기간내 부득이 기·준공을 못하면 파기한다.

라고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으며, 훗날 이 매축허가 조항은 일본측의 요청으로 기타 특히 공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地所는 조선정부에서 실비로서 매환할 수 있다. 또한 기타는 매립자와 협의한 위의 실비에 다소의 이익을 가하여 매환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양해가 성립되어 그 실현을 보게 되었다.

이 공사는 1, 2기공사로 나누어지는데 1기공사는 1902년 7월 19일에 착공하여 1905년 12월 준공을 보았고, 2기공사는 1907년 4월에서 1909년 8월까지에 이르렀다. 1기 매축공사는 1902년 7월 19일 착공하여 1905년 12월에 준공되었으며, 이 공사는 일본청부업자인 大倉組가 담당하였고 하청부는 일본 下關의 蘇藤組가 인수하였다. 그동안 공사에 필요한 재료 및 기구일체는 조선국정부로부터 무관세의 특전을 받았다. 또 절영도의 토사, 석재 및 일본거류지묘지 토석을 무대가로 채취할 특권을 얻게 되었다. 공사중 소요 인원이 가장 많을 때는 1일 조선인 약 900명, 일본인 약 2,000명이나 되었고, 예선용기선 수척, 준설선 3척, 트럭 수백대가 동원되었다.

제2기 공사는 1904년에서 1909년 8월에 이르는 동안 28,865.1㎡을 매축하였고, 제 1·2기 공사에서 매축하여 얻은 토지는 136,537.5㎡이었다. 이곳 북빈매축은 일본거류지를 보다 넓게 보완하여 부산에 있어서의 일제의 근거지를 보다 강고히 해준 사업으로 오늘날의 세관과 구부산역 자리가 여기에 속한다. 오늘날의 중앙동은 이때 바다가 메워져 부산항의 중심지구가 되었는데 현재의 중앙동의 중앙로 동쪽 지역은 매축이 되기 전은 바다였다. 1기공사를 직접 맡은 토건업체는 일본의 청부업(請負業) 조직인 大倉組였다. 이 공사 때 소요된 흙과 돌은 일본 조계지와 절영도(현 영도)에서 조달하였다. 지금의 중구 용두산과 복병산(부산지방기상청이 있는 산)이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이 공사 때 깎아내려 중앙동과 부민동으로 이어지는 평탄한 큰길이 생겼는데 이것이 지금의 대청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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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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