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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진성전투

다대진성 전투

다대진성(多大鎭城)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포 다대초등학교 일원에 있었던 진성이다. 다대진성 전투(多大鎭城戰鬪)는 1592년 4월 14일 오전 부산진성(釜山鎭城)을 함락시킨 왜군이 그 기세를 타고 인접 지역의 서평포진(西平浦鎭)과 다대진(多大鎭)을 공격한 일이다. 두 진영의 전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서평포와 다대포가 모두 지금의 부산 영역이었지만 부산포보다 군사적 지위가 낮았고 고을 규모도 작고, 외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1592년 4월 14일 부산진성이 함락된 후 왜군의 다수 병력은 동래로 향하고, 나머지 소수의 병력은 다대진성(多大鎭城)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다대포성의 군·관·민의 저항으로 격퇴를 당하자, 4월 15일 왜군은 군대를 재정비하여 총공격을 시도하였고 다대진첨사(多大鎭僉使) 윤흥신(尹興信)을 비롯한 군·관·민들은 최후까지 싸웠으나, 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이때 첨사 윤흥신과 동생인 윤흥제 등 군·관·민은 최후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왜군들은 상륙 이후 경상도 해안지역의 요충인 부산진과 다대포진을 점령함으로써 조선군의 해안 방어세력을 제거하고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다대진성 역시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성벽과 성문 등이 모두 철거되어 버렸다. 이곳 다대진성도 부산진성, 동래읍성, 좌수영성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 맞서 최후까지 항전하였던 곳이다. 당시의 흔적으로는 다대포객사 건물만이 보존되어 있으며, 옛 성터는 주택지로 바뀌어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곳은 낙동강 하구 인근지역으로 군사적 요충지로 그 중요성이 큰 곳이었다. 다대진성에 대하여는 각종 문헌이나, 옛 지도를 통하여 성에 대한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부산시에서는 1981년 9월 10일 임란 당시 다대포성 전투에서 최후까지 성을 지키다 장렬하게 전사하신 첨사 윤흥신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 고관입구에 석상을 세워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관련 유적지로는 윤공단(시 기념물 제9호), 정운공순의비(시 기념물 제20호), 다대포객사(시 유형문화재 제10호) 몰운대(시 기념물 제27호) 등이 있다.

자료관리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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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편찬실 (051-888-5058)
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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