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가덕도 대항

가덕도 대항

가덕도 대항(加德島 大項) 세바지에는 일제강점기 때 해안에 동굴을 파서 진지와 관측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또한 외양포에는 포대진지를 만들었고, 포대사령부가 주둔한 지역이며, 일본의 건축물이 많이 산재해 있다. 이곳은 러일전쟁(1905년 5월 27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일본군이 주둔한 지역으로 가덕도수비대가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덕도 대항 마을의 오른쪽에 있는 곳으로 러일전쟁을 준비하고, 일제에 의하여 암반에 인공적으로 굴착하여 만든 동굴로 가덕도수비대가 대항마을과 진해만에 출입하는 선박을 감시하는 초소로 이용되었다.

가덕도 대항마을 포구에서 대항마을 세바지로 가는 야산의 모습, 일본군의 가덕도수비대가 주로 주둔한 지역으로 군사훈련을 받고, 거주하던 막사가 있었던 곳이다. 지금도 이곳 마을에는 "진해만요새제1지대표(鎭海灣要塞第一地帶標)"라고 새겨진 표석을 민가의 지줏대로, "육군사용지(陸軍使用地)" 라고 새겨진 석물을 계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등 당시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러일전쟁 이후에도 일본군은 계속 주둔하면서 태평양전쟁 때에도 주둔하였고, 해안쪽으로 포진지를 설치했던 굴이 앞쪽에는 3개의 출구, 뒤쪽에는 2개의 출구가 완성 돼 있다. 뒤쪽 출구 1개는 공사도중 태평양전쟁에 패하면서 공사가 중단 됐다고 하는데, 강원도 태백에 온 광부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광부들은 일제가 연합군에 패한 뒤 강원도 태백에서 온 광부들이 살아서 나가는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일본군 육군인 가덕도수비대가 출입하는 선박 또는 연합군 비행기를 감시하기 위해서 만든 감시초소. 밖에서 안으로 가면서 점점 작아져서 겨우 한 사람의 몸이 들어 갈 정도(가로 3약 50cm, 세로 약 50cm)의 크기이다

자료관리 담당자

문화예술과
시사편찬실 (051-888-5058)
최근 업데이트
2017-09-15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