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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공원 부근 일제흔적

금강공원 부근 일제흔적

동래금강원 표지석

금강공원(金剛公園)은 동래구 온천1동 산27-9번지 일원으로 공원 내에는 아직도 일제강점기 당시의 시설물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공원 입구에서 좌측 길을 따라 오르면 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5호인 「독진대아문(獨鎭大衙門)」뒤 등산길 오른편에 우뚝 서 있는 자연석 바위에 "동래금강원(東萊金剛園)"이란 글자가 음각(陰刻)되어 있다. 이 표지석은 1940년 금강원이 조성될 때 일본인이 새긴 글자이다. 일본인이 새겼다는 흔적이 없는 이 표지석은 무관심 속에 공원을 찾는 시민들이 보고만 지나칠 뿐 표지석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인근에 있는 연못도 일제강점기 당시 만들어진 인공 연못이다.

황기 기념비

금강공원 입구에서 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동래금강원(東萊金剛園)」표지석을 지나 등산길로 오르면 연못이 나온다. 여기서 100m쯤 오르면 집채만 한 아주 잘생긴 바윗돌이 있다. 이 바윗돌 앞면이 단칼에 잘린 듯 잘 다듬어져 있고 거기에 우리의 굴곡 된 치욕스러운 역사가 새겨져 있어, 또 한번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한 때 강제 침탈하여 주인행세를 한 일본인들이 이 화강암 앞면을 깎아「황기 2,600년 기념비」라고 새겨 넣은 것이다. 이 거대하고 멋진 자연석은 그 날로부터 치욕적인 비석으로 둔갑하였다. 이 비에는 금강공원이 일본인 소유의 정원이었으며, 일본 황실 2,600년을 기념해 주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가로 6m, 세로 3m 크기의 화강암 바위에 2단으로 만들어진 이 기념비 윗단에는 황기 2,600년, 기념비 아랫단에는 금강원지(金剛園誌)라는 제목 아래 한자와 일본어(가타카나)와 혼용으로 178자가 새겨져 있다. 1940년 11월 10일 동래읍장(東來邑長, 從七位山口精)이라고 명시돼 있어, 제작 연도와 제작자를 전하고 있다. 비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금강원(金剛園)은 금정산 연봉(連峰) 남쪽이 다하는 곳에 있다. 산을 등지고 골짜기를 끼고, 기이한 바위들이 쌓여 있으며 푸른 소나무가 울창해서 별천지에 노니는 것과 같다. 1931년(昭和 6) 부산의 동원가차랑(東原嘉次郞) 군이 가지고 있던 동산과 못을 개방하고 누각의 문을 설치해서 거금을 투자하여 경영이 자못 순조로웠다. 금년에 황기(皇紀) 2,600년을 맞이하여 전 동산을 들어 본읍(本邑)에 기증했다.

동래읍에서는 이것을 칭찬하고 정리하고 확장하여, 산성 동남쪽 양문으로 통하는 회유(回遊)하는 숲길과 함께 온천공원을 만들어, 유람관광의 명승지를 만들려고 한다. 이에 기념비를 세우고 유래를 새겨서 이것을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하노라」는 것이다. 이 비를 제작한 1940년은 일제의 탄압과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하였던 때로, 동년 2월부터는 창씨개명을 강요당하였다.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으로 광복이 되자 이곳 지역민들은 이 비석에 시멘트를 발라 일제의 흔적을 지우려고 하였으나, 비문 자체를 철거하지는 못하였다. 광복 이후 반만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도 일제의 잔재는 굴욕의 숨막히는 응어리로 우리의 생활현장에서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13층 석탑

금강공원의 입구에서 케이블카 정차장을 지나 한참 오르다 보면「독진대아문」을 지나「황기 2,600년 기념비」에서 남서쪽 50m 떨어진 숲속 자연석 바위 위에는 10m 높이의 13층 석탑이 우뚝 서있다. 탑은 가로 4m, 세로 3m의 자연석을 평평하게 다듬은 자리에 3단 기단 위에 13층의 옥개석을 쌓아 탑신을 세우고 높이 약 1m의 일본식 상륜을 설치하였다. 옥개석의 치켜올린 선이 세련되지 못하고 상륜 위 보주 가운데는 쇠말뚝을 박아 놓은 듯 일본혼을 심은 전형적인 일본식 석탑양식이다.

이 석탑의 기단석의 동·서면에는 무슨 글자를 새겼는지 시멘트로 덧칠되어 있어 정확하게 누가 언제 세웠는지는 알 수가 없다. 최근에는 이 탑이 일제잔재라 하여 지역 주민들은 철거를 구청에 요구하기도 하였으나 철거되지 않고 있어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지난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동래장

동래장(東萊莊)은 동래구 온천1동 386번지(부산전자공고) 일대가 일제강점기 때는 도리이기조(鳥居喜藏) 농장이었다 한다.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부산원예고등학교 과수원이었다. 당시 금정산 자락의 돌밭에 7만원의 거금을 들여 330,0000㎡의 임야를 매입하여 과수원을 만들었으며, "동래장"이라는 농원을 개방하여 관광객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농원 내에 있는 조형물은 1933년 일본 고향사람인 미조오사부로(美壯三郞)라는 조각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이 조각 기법은 아링다시 기법이라 한다. 만주 등지에서 만주철도 공사, 주택공사 등을 하다가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그의 재산을 송두리째 남기고 부산에 내려오지만 만주에서의 반평생은 허망한 꿈으로 사라지며 남은 것은 동래장 농원뿐이었다.

1947년(도리이기조, 69세) '이제 늙은 것이 빈손으로 돌아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차라리 저 미륵불 밑에 나의 뼈를 묻고 싶다'라고 말한 뒤 모든 재산을 반납하고 쓸쓸히 일본으로 돌아갔다 한다. 그 당시 만들어진 조형물들이 현존하고 있으나, 조형물의 특징은 내부에 굵은 철사를 세우고 돌이 벽돌로 내부를 메운 뒤 시멘트를 발라서 형체를 완성한 조형물이다.

미륵불상

자비심을 상징하는 미륵불은 현재 부산전자공고 뒷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꽃좌대 높이 87㎝, 지름이 150㎝인 그 위에 6m가 되는 미륵불 입상이 인조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일본인의 엄숙한 얼굴 표정에 고깔 두 선을 머리에 덮어 쓴 뒤 허리춤에는 일본인의 전통의상 모양과 비슷한 끈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두 손을 합장하고 서 있는 미륵불은 멀리 동해를 응시하고 있다. 도리이기조는 자기가 죽으면 미륵불의 안내를 받아 극락세계로 갈 무덤을 미륵불 입상 좌대 밑에 만들었다고 한다. 1996년 8월 어느 누군가가 일제의 잔재라 하여 몰래 불상을 철거하여 지금은 그 자리만 남아 있다.

5층 인조탑

도리이기조는 그의 농장에 연못을 파서 물줄기를 이용하고 농수로로 활용하였다. 현재 부산전자공고 교장 사택 안에 연못을 조성하고 연못 주위에 12지신상을 만들고 3마리의 용머리에서 분출하는 분수대를 장식하였다. 그러나 12지신상과 분수대는 자취를 감추고 없어졌다. 연못 옆에는 높이가 5m되는 인조석으로 조성한 5층탑이 농장을 일구는 노력의 상징으로 그날을 말하는 듯 서 있다. 가로 1.7m, 세로 0.6m인 자연석 위에 3단 기단부의 섬세하지 못한 선과 무늬, 탑신부는 5층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옥신은 네 귀에 기둥을 세워서 회사를 형성하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전각은 위로 치켜들고 있다.

5층 인조탑의 사선이 칼로 자른 듯이 산뜻하고 축조의 아름다움은 볼수록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상륜부 암화에 박힌 1m의 쇠말뚝이 지맥을 끊는 인상을 주고 있어 일제의 침략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최근에는 이 탑이 일제잔재라 하여 지역 주민들은 철거를 구청에 요구하기도 하였으나 철거되지 않자, 일부 주민에 의하여 일부가 파괴되어 흉물스럽게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독수리상

동래구 온천1동 부산전자공고 뒷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도리이기조의 농장이었다. 독수리상은 독수리 한 마리가 두 날개를 활짝 펴 마치 창공으로 치솟을 자태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야망을 상징하는 독수리상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독수리 왼쪽 날개가 부러진 것을 누군가가 시멘트로 다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이곳이 일제강점기 당시 부산시민을 억압하고 착취했던 일본인의 농장이 있었던 수탈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용두상

권능(權能)을 상징하는 용은 미륵불상(1996년 8월 어느 누군가가 몰래 철거하여 지금은 그 자리만 남아 있음)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50여m에 위치한 하천이 있는데 3m의 둑을 높게 쌓고 용두(龍頭) 한 쌍이 있다. 옛날 이곳은 도리이기조가 인공 못과 폭포를 만들어 용의 입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리도록 만들었다. 여름철에는 용의 입에서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면 무더운 한낮이라도 공포감이 일어날 것만 같이 시원하였다고 한다. 1970년까지만 해도 인근 주민들이 여기서 폭포수를 맞으며 목욕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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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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