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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부산정거장)

부산역(부산 정거장)

경부선(京釜線, 1901. 8.~1904. 11. 10)은 부산(초량)과 서울(영등포)에서 동시에 공사를 착공, 준공하여 1905년 1월 1일부터 영업을 개시하였다. 1908년에는 초량에서 부산역까지 연장하여 동년 4월 1일 임시 부산역사에서 철도업무를 개시하였다. 1909년 1월 8일 순종황제의 순행이 있어 처음으로 궁정열차를 부산까지 운행하였다.

부산역사(釜山驛舍), 지금의 중구 중앙동 4가(부산무역회관 부근)는 1908년 6월에 착공하여, 1910년 10월 31일 준공하였다. 건물은 외관 장식은 붉은 벽돌로 벽돌벽의 상반부에 화강암으로 세 겹의 테두리를 둘렀고, 처마 밑에는 벽돌과 화강암을 엇갈린 사라센 계통의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었다. 지붕은 돔(Dome)형으로 슬레이트로 이었고 옥상에는 시계탑과 창문을 내단 각탑(角塔)이 있었다.

부산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최종 종착지로 함경도 함흥 등지에서 부산항으로, 또한 전국 각지에서 피난열차에 몸을 싣고 남으로 내려와 부산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피난민들은 피난행렬 속에서 부모 형제들과 생이별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고 한다. 당시 피난시절 생활이 얼마나 고달프고, 생이별한 가족들의 그리워하였는지는 당시 유행하였던 대중가요의 가사속에서 느낄 수 있다.「굳세어라 금순아」「용두산 엘레지」「이별의 부산정거장」등이 대표적인 노래이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역과 관련하여 피난민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로 남인수가 부른「이별의 부산정거장」은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자집이여...."라는 가사를 통하여 보더라도 당시 피난살이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던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한국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이 1,000만명에 이른다. 당시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던 부산역사(釜山驛舍)는 1953년 11월 27일 부산역전 대화재로 중앙동·동광동·영주동 일대가 초토화되면서 부산우편국과 부산일보사 사옥 등과 함께 애석하게도 소실되어 사라져 버렸다. 1965년 11월 구 초량역과 함께 부산진역으로 통합되었다가, 1969년 6월 지금의 부산역사가 준공되면서 영업을 재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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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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