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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산공원

용두산공원

용두산공원(龍頭山公園)은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남포동·창선동·대청동·동광동 등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는 해발 44m의 구릉성 산지이다. 부산시민들은 물론 외국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부산 제일의 휴식공간이자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다. 부산항 일대와 주요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용두산은 부산의 역사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때인 1678년(숙종 4년)에 두모포왜관(豆毛浦倭館, 현 동구 수정동시장 부근)에서 옮겨와 초량왜관(草梁倭館, 현 용두산 복병산일대)이 설치되면서 항거왜인의 거주 및 통상의 장소로 활용되었다. 1876년 개항과 동시에 일본전관거류지가 설치되었다. 옛 문헌자료인『동래부지(1740)』산천조에는 소나무가 울창하여 송현산(松峴山) 또는 초량소산(草梁小山)이라 불러졌다고 한다.

이후『草梁日錄(草梁館記)』『朝鮮事務書』등의 일본측 기록에서는 '복병산의 남쪽에 있는 소산(小山)으로서 중산(中山)이라 칭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용두산이라는 명칭이 기록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朝鮮歸好餘錄(1878년, 일본기록)』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그리고 1899년 산 정상에 신사를 크게 지어 그 이름을 "龍頭山神社"라고 칭함으로써 용두산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1876년 부산항이 개항장으로 개항되면서 초량왜관 일대가 일본인 전관거류지가 되면서 용두산 일대가 거의 일본인 거리로 탈바꿈하였다. 일제는 1916년 용두산을 중심으로 한 11,976평을 공원용지로 책정하고, 매년 시설을 하였으며, 1923년 산 중턱에 자동차 도로를 개통하여 많은 나무를 심어 산림이 울창하였다. 1945년 4월에 용두산 일대 39,600㎡이 공원지대로 지정되었다. 오늘날 이 산이 용두산이라 불리게 된 것은 산의 모양이 마치 용(龍)이 머리를 들고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데서 비롯된다. 그 용꼬리인 용미산(龍尾山)은 舊 부산시청(현 롯데월드 자리)이 있던 자리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자 용두산 신사가 헐리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월남한 피난민들이 영도다리,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부산역과 더불어 피난민들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용두산 주위에 판자촌이 형성되어 산 정상까지 난립하였다. 1953년 1월 30일 발생한 부산대화재로 용두산공원 일대가 초토화되었다. 1954년 12월 10일 용두산 일대에 대화재로 인해 판잣집 등 가옥 1,093동 소실되고 나무가 없는 벗은 산이 되었다. 1955년 3월 21일에서 26일까지 부산시내 공공기관에서 1,500만원의 예산으로 3,000주의 상록수와 활엽수를 심기도 했다.

1957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휘호인 우남공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가 1966년도에 용두산 공원으로 그 명칭이 환원되었다. 1966년 2월 9일 건설부 고시 제2186호로 용두산을 근린공원으로 고시하였는데 그 면적이 69,119㎡이었다. 「용두산 엘레지」가 그 대표적이다. 노랫말로는 한국전쟁 당시 용두산 공원과 관련하여 피난민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로 고봉산이 부른 "용두산아 용두산아 너만을 변치말자..... 일백구십 사계단에....." 라고 하여 당시 피난민들의 생활상을 노래하고 있다. 지금은 노랫말에 있는 194계단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공원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1683년(숙종 9년)에 세운「約條制札碑(시 기념물 제17호)」, 1870년대 세운「斥和碑(시 기념물 제18호)」가 세워졌으나, 1978년 시립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용두산공원은 1972년 6월 26일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다가 1994년 5월 해제되었다. 공원내 주요 기념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산타워(1973. 10. 9 건립, (주)도원관광)은 부산을 상징하는 탑으로 해발 69m 높이 120m이다. 타워 꼭대기 전망대의 모습은 경주 불국사 다보탑의 보개(寶蓋)를 형상화 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서 바라다보는 시가지와 부산항 전경은 낮에는 바다까지 확 틔어 보이는 시원함과 밤에는 휘황찬란한 도심 야경이 은하수 별빛처럼 황홀한 광경을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또한 맑은 날에는 수평선 위에 대마도의 모습이 바다에 비치어 보인다.

용두산의 대표적 상징물인 용탑에는 "비청룡이 날아가는 기상을 하고 있으며, 좌대는 통일의 꿈과 번영의 의욕이 세계로 뻗는 항도 부산의 큰 뜻을 새기고 수천년을 이어온 조상들의 높은 얼과 정신을 받들어 동백꽃과 오륙도가 상징하는 부산시민의 슬기와 기상을 영원히 기리고자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 부산타워 옆 팔각정(3층, 915㎡) 2․3층에는 북한우표전시관이, 1층에는 모형배ㆍ한지체험관이 눈길을 끈다. 전시관 옥상위 광장에는 휴게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문화공간인 용두산미술관(1992. 3 개관)에서는 언제나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공원 진입로(약 1㎞)는 대청동(부산근대역사관)에서 오르는 길목에는 은행나무 터널이 있어 가을단풍의 진미를 느낄 수 있는, 한 편의 시(詩)를 연상케 한다. 또한 부산시에서는 시민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1993~1994년에 걸쳐 시인 청마 유치환의 그리움 등 9인의 시비가 설치되어 있다. 동광동으로 통하는 길은 계단으로 피난민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계단이 있다. 공원으로 올라갈 수 있는 진입로는 광복동을 비롯한 5군데로 구름다리를 철거하고 용오름길이 개설되어 있다. 공원의 정상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1956. 3. 20, 높이 12m, 경상남도 도지사 이상용)이 세워져 위기에 처한 때 나라를 구한 민족의 태양으로 먼 남쪽 바다를 바라보면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동상 앞에는 직경 5m의 꽃시계가 아름다운 꽃 속에서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좌측에 있던 한국전쟁 당시 평화를 위해 장렬하게 싸우다가 산화한 부산·경남출신의 군경·애국전몰 용사들을 추모하는 충혼탑(1957)과 영안실이 있었으나, 1983년 9월 7일 中央公園(舊 大廳公園)으로 이전하였다. 동상 우측에는 자유당 독재정권에 맞서 항거 하다가 순절한 4.19 민주혁명희생자위령탑(1961, 높이 12.25m, 국제신문사)이 자리 잡고 있었으나 2007년 중앙공원으로 이전하였다. 그 외에도 벽천폭포(2015, 556㎡), 휴게쉼터(2015, 1,500㎡, 전통담정원),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비천하는 용탑,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자금 조달을 주도하고 대한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백산 안희제 선생의 흉상(1987. 9. 7)이 설치되어 있으며, 부산시민 100,723명의 기부금을 모아 1996년도에 건립된 시민의 종(종각)이 있어 매년 3.1절, 광복절과 1월1일 0시에 서울보신각 종처럼 부산의 각계인사와 시민들이 모여서 제야의 타종식을 거행하고 있다.

광복동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다 보면 벽천폭포 상부에 "용두산공원"이라 새긴 표지석이 있는데, 이를 보노라면 이곳이 용두산이구나 느껴진다. 공원의 많은 수목들이 혼재하고 있으나, 그 옛날 울창했던 장송들은 온데간데없고, 녹지공간은 약 70여종의 상록수와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수종은 은행나무, 느티나무, 히말라야시다, 측백, 편백, 해송, 무궁화, 벚나무, 개나리, 광나무, 쥐똥나무, 가시나무, 꽝꽝나무, 향나무, 동백나무, 연산홍, 철쭉, 사철나무, 목련, 팽나무, 푸조나무, 개서나무, 단풍나무, 참나무류, 청오동, 식나무, 산호수, 장미, 플라다스나무, 배롱나무, 종려나무, 가래나무, 조릿대 등이 울창하게 들어차 있다. 수림 사이로 공원을 우회하는 산책로가 있고 산책로 주위에는 관광객이 휴식할 수 있는 등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이 공원은 시민들이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장 적당할 뿐만 아니라 특히, 외국인의 이용도가 높으며, 노인들의 휴양지 및 인근 주민들의 산책로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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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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