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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시장(부평시장)

깡통시장(부평시장)

부평시장(富平市場)이라고 하면 잘 몰라도 깡통시장하면 부산시민이나, 전쟁을 겪은 세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였다. 부평공설시장이 개설되기 이전까지는 닷새마다 열리던「5일장」이었다. 부평시장은 1910년 6월 일본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등장한 소매시장인「日韓市場」으로 개설되었다. 이후 공설시장의 기능을 갖춘 것은 1915년 9월 부산부(釜山府)에서「日韓市場」을 사들여 설비를 확충하여「부평동 공설시장」을 개설하면서부터이다. 부산부에서는 지속적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1922년 1,283평 부지에 495평의 신축건물을 짓고 시장규모를 크게 늘렸다.

당시 공설시장은 상품별 점포가 90여 개에 달하였고, 시장 외곽 공터에 노점상을 허락하였다. 노점상에는 우리나라 영세상인들이 주류를 이루어 청과물 등을 팔았다고 한다. 공설시장 상인들은 주로 일본인들로 새로운 생필품이 가장 먼저 판매되는 등 다른 시장보다는 물건값이 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고 한다. 부평시장이 많은 이름 중 하필 '깡통시장'이란 이름이 붙게 된 데는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 즉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 등 각종 과자류 등을 노점상들이 내다 놓고 팔면서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깡통시장이 크게 번창하게 된 것은 1970년대 베트남전쟁 참전 귀환병사로부터 미군 전투식량(속칭 씨레이션) 등이 반입된 이후부터였다.

한때는 밀수품 때문에 단속의 된서리를 맞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다. 수입의 자유화로 '외제'라는 수식어가 흡인력을 잃었고, 가격이 뻔해 흥정의 맛도 예전만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밀이수건'에서 최첨단 디지털카메라까지 없는 게 없는 도깨비시장으로서의 매력은 살아있다. 무엇보다도 단돈 1만원을 갖고도 재미있게 쇼핑을 즐길 수 있는 흔치 않은 장소로 또 다른 묘미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못 구할 게 없다. 원조품목인 '씨레이션'은 지금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동물 박제까지 정말 수천수만 가지다. 중국·일본산 인형, 플라스틱 시계부터 오메가, 로렉스 등 내로라하는 최고급품까지 없는 게 없다. 물건값을 30~60%까지 깎아 준다니 귀가 솔깃하다. 또한 이국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인도에서 수입된 옷과 반지 등 액세서리, 디지털 카메라와 벽걸이형 TV, DVD플레이어 등 첨단 전자제품이 가득하다. 또한 깡통시장 명성에 걸맞게 먹을거리도 풍부하다. 골목길 한가운데 노점상들이 줄지어 앉았는데, 유부 주머니 속에 당면 등 속을 넣고 미나리로 묶은 뒤 어묵처럼 끓인 유부전골은 혀끝에 감도는 달콤한 여운이 기가 막히다. 또한 뭍에서 나는 것이라면 무엇으로라도 죽을 쑤어 파는 '죽집골목'이 있어 입맛대로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는 시장상인들의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깡통시장에서는 그 속에 묻혀 사는 사람들의 투박한 모습도 놓칠 수 없는 모습이다. 시장을 개척한 초창기 멤버들은 대부분 식품점을 운영한다. 깡통하면 역시 '씨레이션'이기 때문이다. 엄마를 따라 나섰다가 유모차 안에서 곤히 잠든 어린아이가 귀엽고, 손수레를 밀고 다니는 할머니의 거친 손등이 가슴 찡하다. '눈 밝은 사람, 동작 빠른 사람만 돈벌어 갑니다!'라고 외치는 노점상의 호객소리에 인간미가 묻어나는 곳이 깡통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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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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