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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일신여학교만세운동

부산진일신여학교 만세운동

부산진 사립 일신여학교(釜山鎭私立日新女學校)는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768-1번지에 위치해 있다. 1895년 10월 15일 호주장로선교회의 여자전도부가 부산진 좌천동 소재 초가에서 수학 연한 3년의 소학교를 설치하여 사립 일신여학교로 개교하였다. 초대교장으로는 선교사인 Menzies(1895~1902)였다.

부산진에 있는 사립 일신여학교 교사는 1905년 4월 15일 준공하여 이전하였고, 1909년 8월 9일 학부대신의 인가를 얻어 고등과를 병설하여, 1913년 3월 고등과 제1회 졸업생(4명)을 배출하였다. 1925년 6월 10일, 동래 복천동 교사로 이전하였고, 1987년 1월 19일 지금의 금정구 부곡동 교사로 이전하였다. 舊 부산진일신여학교 건물은 현재 부산·경남교역자연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의 항일 학생운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서울시민 2만 여명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서를 낭독함으로서 역사적인 3.1운동의 시위가 벌어졌고, 이를 계기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던 것이다. 3월 2~3일경 기독교계통의 인사들을 통해 독립선언서가 부산·마산에 비밀리에 배부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일신여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에 연락하였고 연락 받은 학생들은 모두 의거의 준비를 서둘게 되었다.

이때 일신여학교 측에서는 이명시(고등과 재학, 1922년 졸업)라고 하는 학생이 연락병 노릇을 하였다. 3월 11일 새벽, 일신여학교 기숙사 주변을 비롯한 시내 각처에 격문이 뿌려져 애국학생들의 마음을 한층 더 설레게 했다. 이날 일찍이 고등과 4학년 김응수(고등과 8회, 1920년 3월 졸업)는 이 격문을 주어서 기숙사 주경애 선생에게로 달려가 그 격문(삐라)을 보였다. 주경애 선생은 오늘 저녁 9시에 부산상업학교 학생들과 만세를 부르기로 했다고 알려 주었다. 이에 앞서 교사 주경애는 학생들을 시켜 비밀리에 부산상업학교 학생들과 연락을 취하는 등 일신여학교 동료교사들을 규합하면서「전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이 개시되었으니 우리 학교에서도 거행하자」고 종용하여 이들과 협의·약속한 후 이 사실을 극비리에 고등과 학생들에게 알렸다.

3월 10일,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온 고등과 학생 11명은 밤을 세워 태극기 50개를 만들었다. 3월 11일, 수업을 마친 뒤 고등과 학생 김응수(일명 김수)·송명진(고등과 10회)·김순이·김란춘(고등과 9회, 1921년 3월 졸업)·박정수·김반수(고등과 7회, 1919년 3월 졸업)·심순의(고등과 7회, 1919년 3월 졸업)·김복선·김신복(고등과 9회, 1921년 3월 졸업)·이명시 등 11명은 교사 주경애·박시연과 더불어 오후 9시 준비한 태극기를 손에 들고「大韓獨立萬歲」를 부르며 기숙사 문을 뛰쳐나와 좌천동 거리를 누비면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가 2시간이 경과되었을 때 일본 군경이 출동하여 여학생 전원과 두 여교사를 검거하여 부산진 주재소로 연행하여 주모자 색출을 위한 문초와 횡포에도 굴하지 않고 주동 인물은 없고, 우리들이 모두 주동 인물이라고 외쳤다. 또한 그들의 횡포에 참다못한 김응수는「세살 먹은 아이도 제 밥을 빼앗으면 달라고 운다. 우리들이 우리나라를 돌려 달라고 시위하는데 무엇이 나쁘냐?」고 항의하는 등 저항하였다.

결국 만세시위의 주동인물인 여학생 11명과 교사 2명은 부산 감옥에 수감되어 여학생들은 징역 6월을 언도 받았고, 여교사 2명은 각각 징역 1년 6월을 언도 받았다. 이 의거에서 여학생이 아닌 박연이라는 16세의 처녀도 시종일관 여학생들과 행동을 같이 했기 때문에 징역 6개월을 언도 받아 여학생들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특히, 일신여학교의 의거는 우리나라 3.1운동사에 있어 다른 지방에서는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었고, 또 역사적 의의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부산진 일신여학교 여학생들의 의거는 당시 부산·경남지역의 3.1운동의 첫 화살을 던지게 된 시발점이 되었으며, 그 후 경남 각지에서 만세의거가 뒤를 이어 일어나게 되었다(일신여학교 만세운동 기념비는 동래여고 교정에 세워져 있음). 사립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校舍)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5호(2003. 5. 2 지정)로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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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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