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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면3.1만세운동

정관면 3.1만세운동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점된 이후 전 민족이 항일운동을 전개하였고,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독립선언서」낭독과 숨겨두었던 태극기를 높이 들고 자유독립만세를 하늘 높이 외치던 민족의 총궐기를 통해 그 불길은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아가면서 각 지방에 파급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기장군 정관면도 예외일 수 없었다. 이 당시 정관면에서도 기장군 교리 김수용으로부터 독립선언문 여러 매를 오해환이 입수하여 오진환·김종복에게 전달하였고, 오진환·신두성·김윤희·정지모·박일봉 등 면내의 유지들이 주동이 되어 김종복의 사랑방을 밀회장소로 정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여 3월 9일(陰) 좌천장날을 기해 시장에서 만세를 부르기로 하였다. 이에 앞서 이들은 목욕재계하고 조용산 산마루와 용산암에서 대한독립만세와 의거 성공을 기원하는 천제(天祭)를 지낸 다음 혈서구국의 맹세를 하였다 한다.

3월 9일, 좌천시장에는 각처에서 운집한 장꾼들이 붐빌 시간에 오진환 등 5명의 동지들과 그에 따르는 사람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니 주위의 수많은 군중들이 함께 합세하였다. 일본경찰들은 야만적인 방법으로 군중들을 향하여 무차별 발포하여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오진환 등 50여명이 좌천주재소로 연행되자 시위 군중들은 주재소를 2중 3중으로 포위하여 투석전을 벌이며 석방을 요구하여 연행된 50여명 전원을 구출하기도 하였다. 그 뒤 신두성·김윤희·정지모 등을 검거 투옥시켜 모진 고문을 가하였다. 의사들은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위반이란 죄명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김윤희·정지모는 혹독한 고문의 여독으로 즉사하고, 신두성은 고문의 휴유증으로 고생하다가 사망하였다. 오진환은 일경의 눈을 피하여 상해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박일봉은 국내에서 피신하여 전전하다가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광복 이래로 항일선열들의 빛나는 투쟁사가 각 처에서 책자 발간과 기념비도 건립되었으나, 정관지역에서는 1979년 3.1운동 60주년을 맞아 정관면민의 뜻을 한데 모아 정관초등학교 교정에 정관면 3.1만세운동 의거비를 세우고 책자를 발간하여 선열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그 업적을 기리고 있다. 또한 지방민의 애향심과 애국심 고취는 물론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나라사랑 정신과 그 뜻을 기리고 있다(비문은 생략).

자료관리 담당자

문화예술과
시사편찬실 (051-888-5058)
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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