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백산상회

백산상회

백산상회(白山商會)의 설립배경을 살펴보면, 1910년 8월 일본제국주의 한국강점으로 국내의 독립운동이 어렵게 되자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는 1911년 러시아로 망명하여 안창호·이갑 등 독립운동 지도자들과 국권회복을 위한 방법을 논의하고, 중국에 있는 독립운동단체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백산 선생은 1914년 귀국하였으며, 당시 국내에서는 국외의 독립운동지도자들과 연락이 빈번하였다. 따라서 국외에서 독립운동기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내의 비밀연락망과 독립운동자금 조달이 절실하였던 시기였다. 안희제 선생은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고향의 전답 2,000두락을 팔아서 기금을 마련하고 이유석·추한식 등과 함께 1914~15년경에 백산상회를 설립하였다.

상회의 명칭은 그의 호 백산에서 땄다. 백산상회는 설립초기에는 곡물·면포·해산물 등을 판매하는 소규모 상회였다. 1918년 안희제·최준·윤현태·최완·김용조·정순모·성태영·이정화·유덕섭·안담·허걸 등 11명이 자본금 14만원으로 합자회사로 하여 35,000원을 불입하여 경영하였다. 영업내용은 해산물과 육상물의 구매 및 위탁판매를 하였고, 부산부 본정 3정목(현 중구 동광동 3가 10-2)에 위치해 있었다. 그 후 합자회사 백산상회를 확대 개편하여 백산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하였는데 실질적인 인가를 받은 것은 1919년 1월 14일이었다.

동년 2월 17일 발기인 총회를 개최하였으며, 발기인은 안희제·최준·윤현태 3인이고 자본금은 100만원이었다. 동년 5월 28일 백산주식회사 제1회 주주총회를 개최하여 임원진 취체역 : 안희제·윤현태·최준·조동옥·정재원·이동화·허 걸·이우석, 감사역 : 윤상은·문영무·김상익이 선출되었고, 출석 주주는 40인이었다.

백산상회가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확대 개편됨에 따라 영남의 대지주자본의 적극적인 참여에 의해서 가능하였다. 안희제 등 백산상회 관계자들은 대다수 조선국권회복단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도 하였다. 한편, 조선국권회복단 사건(일명 : 안일암사건) 이후 백산상회는 일본경찰에 지목되기도 했다. 특히, 부산·경남지역 대지주들은 대부분 백산주식회사의 중역 및 대주주들이었다.

1921년 8월에는 일시 경제계의 타격으로 백산무역주식회사가 자금난으로 경영위기를 맡게 되었으나 사장 최준은 자신의 소유재산 대부분을 저당하여 식산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대출 받아 회사경영에 전력을 다하였으며, 백산무역주식회사를 확대하여 서울에 지점을 개설하였다. 지점장은 면포업계의 대부 변상호였다.

이 외에도 대구연락사무소는 태궁상점의 서상일이 맡았고, 원산·인천 등 18개소와 국외에는 봉천연락사무소는 해천양행을 경영하는 이해천이 담당하였고, 안동·길림 등 3개에 지점 및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였다. 이후 1925년 7월 31일 제6회 임시총회를 개최하였는데 주주와 중역사이에 알력이 발생하였으며, 동년 9월 12일에는 감사역 문영빈, 취체역은 최 준·최 순·안희제·윤병호·최태욱을 사기 횡령죄로 부산지방법원에 고소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경성고등법원 상고심까지 갔던 일도 있었다. 이후 백산무역주식회사는 1928년 1월 29일 해산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백산상회는 영남지역 지주들이 대다수 참여하여 조직된 대규모의 무역회사였으며, 그 설립 목적과 운영은 국내외의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1919년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는 다수의 민족계 회사가 설립되어 한국의 산업을 민족기업가들에 의해 일으켜 민족의 경제력 증진을 목적으로 하였고 한편으로는 교육·언론기관을 설립하여 민족계몽과 국권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에 이바지하였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내 동포들의 민족의식과 독립운동자금 조달을 위하여 연통제를 조직하였는데 백산상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인「독립신문」의 국내 보급 통로였다. 국내 독립운동가들은 이 연통제 조직을 통하여 독립운동자금 조달과 독립신문 보급을 위하여 온갖 고난을 겪었으며, 백산 안희제는 독립운동을 위한 독립자금 조달과 독립신문 보급 등 국내의 주요 독립운동기지로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던 것이다.

한편, 부산광역시 중구청에서는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일제치하 백산 안희제 선생이 민족독립운동을 위해 운동기지로 삼았던 백산상회 건물을 복원하여 민족의 기상과 기개를 드높이고, 개방화·국제화에 대비 문화유적 보존·계승 차원에서 복원하였다.

백산상회 건물(대지 323.4㎡, 건물 218,064㎡)은 목조 2층 건물로서 지금은 옛 모습이 사라진 채 1층은 양복점, 2층은 술집으로 사용되고 있어, 1995년 '백산상회조성자문위원회'의 심의 결과에 따라 원형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에 따라, 기존의 건물을 완전히 해체하여 전시관으로 재건축하였다. 새롭게 단장된 백산기념관은 총 25억3천9백만원의 예산으로 토지보상 및 건물매입, 건물 신축, 기타 전시실 조성과 유품구입비로 사용되었다.

추진일정으로는 1994년 3월 중구청에서 백산상회 문화재지정 및 문화거리지정 건의, 4월 부산광역시 백산상회보존계획 확정, 5월 문화재위원회 심의결과 문화재 지정 불가확정, 11월 '부산광역시지명위원회'에서 "백산거리" 가로명 제정, 1995년 1월 '백산상회조성자문위원회' 구성, 3월 27일 착공, 8월 15일 백산기념관이 준공되었다.

복원된 백산기념관의 규모는 지하 2층, 지상에는 조형물을 설치하였으며, 지하 1층에는 백산 안희제 선생과 관련된 유물 및 독립운동관련 자료 전시와 지하 2층에는 영상실로 활용하고 있다. 지상에는 항일정신을 형상화하는 조형물로 구성되어 있다. 기념관의 복원은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적인 현장으로서 민족정신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될 것이며, 시민들의 정서함량과 시민의식 고취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부산광역시에서는 선생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시민들의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자 동광동 상업은행 부산지점에서 부산호텔(외환은행)을 거쳐 보문당에 이르는 도로를 1994년 11월 4일「백산거리」로 제정·공포하여 백산 안희제 선생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있다.

자료관리 담당자

문화예술과
시사편찬실 (051-888-5058)
최근 업데이트
2017-09-15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