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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만세거리

동래 만세 거리

동래지역은 부산의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지로서 1919년 서울 파고다공원의 3.1만세 운동이 이곳 동래읍에 전해지면서, 부산시내에도 기독교계열을 통해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가 배포되었다. 3월 7일, 서울에서 내려온 학생대표는 동래고보(현 동래고등학교) 학생인 김귀룡·고영건·엄진영 등을 찾아가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봉기하기로 약속하였다.

이들은 3월 13일까지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동래장날인 3월 13일 오후 2시 동래군청(현 동래부 동헌) 앞 망미루(지금은 금강공원 입구에 옮겨져 있음)에 올라가「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수십 매의 전단을 뿌리자 삽시간에 흥분의 도가니화 하였다. 한국인 경찰 1명은 제복을 벗어버리고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등 감격에 만세를 불렀다. 일군경의 기마병들은 20~30명과 일군 50명은 야만적인 발포로 주동자들을 검거하였다. 이중 주동자 24명이 실형을 받기도 했다.

또한 3.1운동 당시 범어사보통학교 과정인 명정학교와 고등보통학교 과정인 지방학림의 학생들이 주동이 되고 불교계의 지도자들이 배후의 비밀참모가 되어 거사를 추진하였다. 3월 19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장소로는 동래시장으로 정하였다. 김영규·차상명·김상기 등 많은 학생들은 전단과 태극기 등을 만들어 3월 19일 오후 5시경 수십 명의 학생들이 동래시장 남문에서 시위를 시작하여「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동래경찰서로 돌진하는 등 거센 만세운동을 벌였다. 마침내 왜경의 무자비한 탄압이 닥쳐왔고 주동인물은 검거되었다. 이때 검거된 학생은 34명에 달하였다.

이들은 6개월에서 2년 6개월까지 실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특히 이곳 동래시장을 중심으로 동래지역 항일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동래일성관(부산시립시민도서관 동래분관이었으나 도로확장으로 철거됨)은 운동의 거점이었다. 당시 일성관(東萊靑年會館)을 중심으로 전개된 대표적인 단체결성과 항일운동은 다음과 같다.

1919년 3월 13일 동래고보(지금의 동래고등학교 전신)의 3.1운동, 1925년 부산청년회 결성, 1927년 6월 28일 신간회부산지회 창립총회가 동래청년회관에서 거행되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때 신간회 동래청년회 소년부 회원인 동래고보 4학년생인 문재순 외 7명이 주동이 된 동래고보 연대맹휴가 있었다. 1929년 일제의 신간회 해산에 항의하여 동래고보 4학년생들의 맹휴, 1930년 1월 7일 부산 2상(현 부산상고) 학생운동으로 문길환·장남현 등이 동래청년회관의 등사기를 이용하여 유인물을 만들기도 했다. 이 밖에도 부산·동래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항일운동은 동래일성관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기에 선열들의 불타는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광복50주년 기념사업으로 부산광역시 ‘동래구지명위원회’에서는 1995년 9월 13일 구 대동병원사거리 맞은편 하나은행(옛 동래읍성 남문터)~동래시장~동래구청~복천박물관 입구까지의 전장 570m와 폭 8m의 도로를 동래만세거리로 지정하여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후손들에게는 선열들의 항일독립정신을 기리는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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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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