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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등대

가덕도등대

가덕도등대(加德島燈臺)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0호(2003. 9. 16)로 강서구 대항동 산13-2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가덕도등대는 1909년 12월에 대한제국 등대국에서 건립한 것으로 전국의 41개소의 유인등대 중에서 하나이나 불행히도 건설과정에 대한 기록은 현재로서 찾을 수 없다.

대부분의 등대건축이 등탑과 부속사를 별개의 동으로 건립하는 것과 달리 가덕도등대는 등탑과 부속사를 단일 건물로 구축한 경우로서, 8각형의 등탑을 부속사의 중앙에 기초로부터 9.1m 높이로 올려 세운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평면은 정사각형(11m×10m)에 가깝게 구성하고 정면 중앙에 현관을 설치하여 좌우로 사무실과 온돌을 두었으며, 그 후방으로 각기 부엌과 화장실, 다용도 공간, 욕실 등을 설치하였다.

기초와 기단부는 콘크리트로 시공하였고, 벽체는 현재의 벽돌규격과는 일치하지 않는 적벽돌 치장 쌓기로 시공했으며, 등탑은 동체를 콘크리트로 쌓은 위에 원형의 철제 점등실을 원형 철제지붕과 유리로 제작하였다.

지붕은 적벽돌 벽체 위에 목조 트러스를 걸어서 완만한 경사의 4모지붕 형식으로 올리고 함석으로 시공하였으며, 입면은 외벽을 적벽돌로 치장 쌓은 다음 백색 페인트로 마감하고, 네모서리 우각부와 각 입면 가운데는 1~3개소의 버팀벽(버트레스)를 설치하였다.

상부 난간벽(패러팻)은 적벽돌로 쌓아 올리고, 버팀벽의 상부를 더 높게 올려서 고딕건축의 첨탑(피나클)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수평의 난간벽과 그 사이에 낸 일정한 개구부, 적벽돌 모서리를 돌출시킨 수평 돌림띠(코오니스), 수평의 상·하인방을 설치한 외벽 창호 등에서는 중세 성관(Chateau)건축에 사용된 르네상스 풍의 의장수법을 연상시키고 있다.

가덕도등대를 제외하면 수 차례의 개·보수를 거쳐서 원형을 제대로 보존하고 있는 등대는 거의 없는 상태이고, 그밖에 도심에 건립된 초기 근대건축물도 대부분 훼손·철거되거나 크게 변형된 상태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덕도등대는 보존상태가 상당히 양호하고, 건축세부를 통해서 당시의 건축기법과 조영의도 등을 고찰할 수 있는 소중한 유구라고 판단된다.

특히 평면, 입면의 구성방식과 근대적 양식건축에서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철, 시멘트, 콘크리트, 적벽돌, 유리 등의 건축재료 사용, 의장수법 등은 부산지역의 근대건축 도입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일 뿐 아니라 한국근대건축사의 서술에서 결코 소홀하게 취급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가덕도등대는 대한제국 시대에 건립된 여러 유인등대와 같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서 건설되었지만, 국가의 명운이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단적으로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덕도등대의 건축이 한국 근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결코 간과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가덕도등대는 근대 서구건축의 양식과 건축재료, 의장수법 등이 최초로 사용되던 건물들 중의 하나였으나 당시에 건립된 여러 등대들이 대부분 이후의 개, 보수로 원형이 크게 훼손된 데 반해서 가덕도등대는 오늘날까지 상당 부분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또는 건축사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돋보이는 문화유산이다.

자료관리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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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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