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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다리

구포다리

구포다리로 더 잘 알려진 이 다리는 1930년 9월 13일 착공하여 1932년 3월 7일 준공되었다. 길이 1060m, 폭 8.4m(중앙차도 5.4m, 좌우보도 각 1.5m)의 게루바식판항교로 교각이 56개이다. 구포다리는 강서구 대저동과 북구 구포동을 잇는 다리로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였으므로「낙동장교」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공사 총인원은 7,760명, 공사비 70만원(정부보조 40만원, 지방비 19만원, 지방지원부담 11만원)이 소요되었다.

이 다리 건설이전 구포와 대저 사이는 나룻배로 왕래하였다. 다리가 개통된 이후 구포는 경남지방과 경부선을 통한 내륙지방과 연결하는 교통요지로 새로운 면모로 바뀌었다. 이 다리는 그 동안 부산과 경남을 잇는 대동맥으로 산업·경제·문화·정치의 교량역할을 해왔으며 한국전쟁 때에는 전쟁물자 수송에 큰 몫을 해낸 귀중한 것으로 낙동강과 더불어 우리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1997년 12월 현재의 구포다리 아래쪽에 최첨단 공법으로 시공한 구포대교가 준공되면서 70여 년 동안 구포와 강서의 주요 통로로서의 역할을 물려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게 되었다. 구포다리는 노후화가 지속되어 붕괴의 우려로 차량통제를 하고 있다.2003년 9월 13일 우리나라를 강타한 태풍 ‘매미’로 인하여 상류지역의 많은 강우로 인하여 불어난 강물로 인하여, 70여년을 굳게 앙버티던 구포다리의 무쇠 다릿발이 순식간에 뽑혀나갔다. 19번 교각이 붕괴되자 길이 15m짜리 상판 4개가 연달아 떨어져 나갔다. 노도처럼 밀려든 강물은 상판과 교각의 철근 콘크리트를 곤죽으로 만들어 닥치는 대로 집어삼켜버렸다. 2년 뒤 인 2005년 9월에 다시 홍수가 닥쳐 21번 교각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부서졌고 상판 하나가 날아가 버렸다.

이후 구포다리는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과 역사유적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다리의 안전도 검사 결과에 따라 최종 결정키로 하였다. 이후 부산시에서는 교량의 안전진단을 실시한 결과 E등급으로 판정을 받았다. 이처럼 1,060m의 구포다리는 두 차례의 홍수로 88m가 붕괴되었고, 다대항 배후도로 통과를 구실로 200m가 뜯겨졌다. 남은 것은 수중부 211m, 강서 대저쪽 고수부지 구간 561m는 2008년 1월부터 철거를 시작하여 12월 다리 교각(橋脚)과 상판이 완전히 철거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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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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