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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로타리부산탑

서면로타리 부산탑

서면은 지금의 부산진구 부전동 일대를 이르는 곳으로 조선시대 동래부(군)의 행정단위로 사용되었다. 1740년 편찬된『동래부지』방리조에 의하면, 서면은 행정구역으로 아주 넓은 지역을 이루고 있다. 당시 동래부 서면은 9개리(지금의 온천동·사직동·거제동·초읍동·양정동·연지동·전포동·부전동·만덕동)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부산진구의 일부 동은 동평면(현 당감동·동평동·부암동·개금동·가야동과 동구지역)에 속하여 있었다.

일제강점 이후 옛 서면은 동래군의 서상면(西上面)과 서하면(西下面)으로 나누어져 지금의 서면지역인 부전동·전포동 지역은 서하면에 속하게 되고, 서상면에는 지금의 온천동·사직동·거제동·연산동 등이 속하게 되었다. 1923년경 지금의 롯데백화점 자리에 부산상업학교가 들어 설 그 무렵의 학교 주위는 자갈밭과 논이었다.

1936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서면지역이 부산부에 편입되면서 부산진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오늘날 부산진구의 중심지가 되는 서면지역은 조선시대에는 서면(西面)으로 일제강점 이후 서하면의 면(面)소재지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지명으로 부르고 있다.

서면으로 일컬어지는 중심에 원형의 서면로타리가 조성된 것은 1957년이었다. 부산직할시 승격은 1963년 1월 1일로 법률 제1173호(1962. 12. 21 공포)이다. 부산시와 부산상공회의소는 부산의 직할시 승격을 기념하기 위하여 1962년 12월 1일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거행하였다. 이날 부산공설운동장에서 거행된 승격 기념식에는 박정희 최고회의장을 비롯한 정부요인, 재부기관장 그리고 부산상공인과 시민 2만 여명이 참여하였다.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된 것은 대외 지향적인 한국경제의 전초기지의 구축이라는 점에서 의의도 크다. 또한 부산상공회의소는 지역사회개발의 일환으로 직할시 승격을 기념하는 부산탑 건립공사를 추진하였는데 건립사업은 예산 250만원 (부산시 100만원, 부산상공회의소 150만원)으로 1962년 12월 25일 기공 (서면 로타리)되어 1963년 12월 14일 제막식을 거행함으로써 부산의 명물 부산 탑의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

부산탑의 높이 77척, 동상높이 14척으로서, 전 시민의 힘찬 모습을 담은 자유의 햇불을 든 남녀 동상을 탑 중앙에 안치하여 영원한 번영을 상징한 것이었다.
「이 탑은 넓은 바다와 맑은 하늘의 복과 덕을 입어 자유와 평화에의 굳은 신념으로 새로이 출발 한 직할시 부산의 영원한 번영과 자손 만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온 시민의 정성으로 모아진 것이다.」

이 같은 탑 문이 새겨진 이 탑은 상공인들의 알뜰한 정성에 의해 건립되어 강석진 회장으로부터 당시의 김현옥 시장에게 인계된 것이다.
탑 건립을 위해 애쓴 상공인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姜錫鎭, 具仁會, 金智泰, 朴敬奎, 朴正寬 申景浩, 申德均, 申世均, 愼重達, 梁泰振, 王相殷, 李秉喆, 李英震, 張洪植, 鄭翼鈺, 鄭泰星外 釜山商議 議員一同 (『부산상의 백년사』1989. 7, p.464중에서)

부산탑의 조형이 부산이라 글자를 상징하면서 위쪽에는 오륙도가 조각되어 있었고, 탑 중앙에는 자유의 횃불을 든 남녀상이 발랄한 기상을 보였다. 탑을 중심한 원형로타리 안으로는 꽃밭이 조성되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가꾸어지곤 하였다. 그 부산탑은 아치형으로 1968년까지도 그 아치형 부산탑 아래로 전차가 지나 다녔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도시발전과 교통량의 증가와 대중교통 수단의 확충을 위한 지하철 1호선 공사로 1981년 7월 철거되면서 서면로터리 부산탑은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부산탑에 있었던 일부인 자유의 횃불을 든 남녀상과 재질이 대리석인 기념비석(가로 61㎝, 세로 91㎝, 두께 14.2㎝)은 부산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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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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