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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최초의제생의원

부산 최초의 제생의원

부산에 서양의학 병원이 처음 선보인 것은 1876년(고종 13) 11월 13일로 관립 제생의원(官立 濟生醫院)이 지금의 부산시 중구 동광동 2가에 문을 열었다. 이 제생병원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서양의료 기술을 소개한 병원으로 알려져 있다. 1879년 6월 부산지역에 콜레라가 창궐하여 전국으로 번지자 1879년 8월 부산항을 통한 일체 무역을 중지시키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고 한다. 제생의원에서는 1877년 3월부터 매달 15일마다 천연두 예방을 위한 종두 접종을 무료로 실하기도 하였다. 또한 계속되는 환자의 증가로 1880년 용두산 동남쪽 기슭인 지금의 중구 광복동에 2층 병원 건물을 신축하여 옮겼다. 1885년 부산 일본공립병원(釜山 日本共立病院)으로 개칭하여 운영되다가, 1894년 10월 부산 공립병원(釜山公立病院)으로 개칭하였고, 1907년 12월 부산 일본인 거류민단병원(釜山日本人居留民團病院)으로 바뀌었다.

1914년 4월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부산부립병원(釜山府立病院)으로 개칭하였다. 1923년도에는 지금의 서구 부용동에 새 건물을 지어 옮기려고 하였으나, 1925년 4월 경상남도청이 부산으로 옮겨오면서 신축 건물은 도청사로 사용하게 되었다. 1937년 아미동에 건물을 신축하여 진료를 계속하였다. 1962년 이후 병원 건물은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본관 건물로 쓰이다가 헐리어 버렸다. 광복 이후 1947년 부산시립병원으로 개칭하여 사용되다가,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육군병원으로 사용하였다. 1956년 완월동(현 충무동 1.2가) 청사로 이전하여 진료를 하다가, 1962년 부산진구 부전동에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 하였다. 1968년 연제구 연산동 신청사로 이전하였고, 1982년 7월 지방공사 부산시립의료원으로, 1995년 3월 지방공사부산광역시의료원으로 개칭되었다. 2001년 12월 연제구 거제2동 신청사로 이전하여 진료를 개시하였다. 2002년 3월 부산대학교병원과 협력진료체제를 구축하여 보다나은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산의료원의 전신인 제생병원은 우리나라 종두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지석영 선생이 종두법을 배우고 익혀서 널리 보급하였던 곳이다. 선생은 1876년 수신사 일행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스승 박영선(朴永善)으로부터『종두귀감(種痘龜鑑)』을 받아 종두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지석영은 1879년 11월 홀로 부산에 내려가 일본인이 운영하는 제생의원에서 두 달 동안 종두법을 익힌 뒤 두묘(송아지에 접종하여 접종액을 만들어낼 원액)와 종두침을 얻어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오던 중 충주에 있는 처가에 들러 2살된 처남에게 최초로 종두를 시술한 일화가 전해진다.

1880년 5월 지석영은 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가는 김홍집을 따라가 직접 우두법을 익힌 뒤 귀국하여 종두장(種痘場)을 차려 시민들을 계몽하는 등 본격적인 우두 접종사업을 실시하였다. 1882년「임오군란」이 일어나자 그는 개화운동가로 몰려 충청도 덕산으로 피난을 해야 했다. 동년 8월 서울로 돌아온 선생은 난중의 방화로 불타버린 종두장을 부활시키고 전주와 충청도에서 우두국을 설치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종두를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1896년에는 동래부사로 부임하여 천연두가 유행할 때마다 우두법을 보급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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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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