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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헌병대

부산헌병대

부산헌병대(釜山憲兵臺)가 있었던 부산시 중구 대청동 2가 7-1번지에는 현대식 복합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 당시 독립투사들이 검거되어 고문과 폭행으로 고초를 겪었고 치를 떨었던 곳이었다. 1987년까지도 일본군 부산헌병대로 사용했던 벽돌 건물이 남아 있었으나, 건물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현대식 건물이 신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11년 9월 벽돌 건물을 신축하여 일본군 대구헌병대 부산분대 건물로, 일본군 부산헌병대로 승격하여 계속 사용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한때 우리 국군이 인수하여 제6헌병대 중대본부 건물로 사용되었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발생 이전까지 부산헌병대에서 독립운동관련자 등을 상대로 주로 취조나 고문을 자행하였으나,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부터는 민간인들의 사상 단속까지 담당하면서 숱한 부산시민들이 헌병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으로 사망하거나 불구자가 되는 등 그 악명을 떨쳤다고 한다. 당시 일본헌병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조선인 보조원은 일제의 전쟁수행에 대해 반대하는 말을 하는 일반인까지 마구잡이로 잡아가는 일이 허다하였다. 1945년에 들어서면서는 태평양전쟁에서 결국 일본은 망하고 '코쟁이들'이 들어온다는 소문을 전하다가 헌병대에 잡혀가 혹독한 고문을 받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일본군 헌병대에서 고문 등 곤혹을 치른 것은 조선인뿐만이 아니라 1937년 7월「중일전쟁」이후 부산거주 중국인들도 헌병대에 잡혀가 혹독한 고문을 받아 그 휴유증으로 사망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 일제는 대륙침략 정책수행을 위해 우리 민족말살과 탄압으로 많은 사람들을 체포ㆍ연행으로 혹독한 고문을 하여 직ㆍ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다. 50여년이 지난 아직까지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있다. 가해 당사자인 일본정부는 과거의 잘못의 반성은 커녕 지도층이라는 관료들은 대평양전쟁 1급 전범들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망언을 하는 등 역사를 왜곡ㆍ미화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도 일부 젊은이들은 지난 역사의 아픔을 망각한 채 일본문화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현실은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이 올바른 역사를 인식할 수 있도록 좀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자료관리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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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편찬실 (051-888-5058)
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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