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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명태고방

초량 명태고방

초량 명태고방(창고)은 동구 초량동의 부산역 건너편 중국인 화교학교로 통하는 옛 봉래각 북쪽 붉은 벽돌로 된 창고가 있었는데 이건물이 북선(北鮮)에서 해산물을 가져온다고 해서 북선창고(北鮮倉庫)라 부르기도 했다. 이 창고는 1910년 세워진 건물로 당시에는 함경도의 특산물인 명태를 비롯하여 해산물을 해상을 통하여 선박으로 부산항까지 운송하여 와서 경부선 철도를 이용하여 경상도, 충청도 각 지방으로 보급하였다.

부산상인 정치국(鄭致國)을 중심으로 부산 최초로 1천여평이 되는 창고를 지금의 초량동 393-1번지에 해산물 보관 창고를 세운 것이 명태고방이다. 그러다 1914년 8월 서울~원산간 경원철도가 부설되면서 명태를 비롯한 해산물은 서울지방으로 직접 수송할 수 있게 되었다. 부산에서 북선창고를 중심으로 도매업(= 객주)을 하던 일부 사람들이 원산으로 가서 창고를 세워 북선창고라 하면서 부산의 북선창고는 남선창고(南鮮倉庫)라 이름을 고쳤다. 광복 이전까지만 해도 이 창고에는 명태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어 삼남지방으로 보급되었고 한다.

초량의 객주들은 돈만 번 것이 아니라, 객주조합 장학회를 조직 운영하여 1905년 초량사립상업학교(광복 후 경남공업고등학교로 재발족)를 설립하여 그 운영비를 충당하였다. 이 학교의 교장은 역대 객주조합장이, 학교운영과 행정은 교감이 담당하였다 한다. 남선창고는 광복 전 동래에 사는 개인에게 넘어간 이후에도 각종 창고로 이용되었으나, 2008년 11월 철거하여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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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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