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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권번

봉래권번

봉래권번(蓬萊券番)이라는 기생조합은 1922년 12월경에 조직되었으나, 지금은 자취조차 사라져 없어졌다.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52번지 부근에 있었다. 경부선의 시,종착지(옛 부산역으로 지금의 부산경남본부세관 건너편 부산역 소화물취급소 자리)로 1915년에 형성한 초량객주(일종의 도매업 및 무역업자)들이 영주동으로 옮겨왔다.

당시 봉래권번에는 대구, 진주, 동래에서 온 기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의 기생들은 영주동에 있었던 영선관(瀛仙館, 1925년), 영춘관(瀛春館, 1936년) 등 한국요리 집과 초량의 봉래각(蓬萊閣, 1933년), 흥안각(興安閣, 1938년) 같은 중국요리 집으로 출장가서 기악(器樂)과 노래, 춤으로 여홍을 돋구어 주기도 하였다. 봉래권번이 한창 번창한 1939년 무렵에는 조합원 수가 70명이 넘었다고 한다.

봉래권번이 번창하자 1940년 평양과 서울쪽의 기생들이 부산으로 내려와 초량동 579번지에 초량권번을 차리기도 했고 그 회원이 30여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초량권번 기생의 장기는 우리나라 유행가였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4년 3월 12일 전국 예기(藝妓)영업 폐지령이 공포되면서 이곳의 봉래권번도 문을 닫게 되었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고, 봉래각의 건물이 전해오고 있으나 그나마 1972년 화재로 내부는 완전히 불타버리고 건물 구조만 남아 있을 뿐이며, 봉래권번의 옛 명성은 구전(口傳)으로만 전하여 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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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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