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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일성관

동래일성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1910년 8월 강점되자 항일운동이 전국적으로 불길처럼 일어났다. 당시 부산지역 특히 동래지역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특히, 항일운동이 가장 강렬하게 진행되었던 곳은 동래지역이었으며 그 중심지는 동래일성관(誠館, 東萊靑年會館, 지금은 도로개설로 철거)으로 항일운동의 본거지였다. 동래청년회관 이전에는 동래기영회(1846. 3 설립)에서 관장하던 삼락제(서당)로 중등과정인 한문과 신학문 등 항일민족 자주의식을 가르치던 민족교육 기관이었다. 당시 동래고보(현 동래고등학교) 졸업생이던 곽상훈(국회의장 역임)이 동래기영회에 사정하여 동래청년회관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동래청년회관에는 신간회부산지회(1927. 6. 28 창립), 근우회, 청년동맹, 소년동맹 등의 단체가 입주하여 활동하였다. 점차 단체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회관이 비좁고 불편하여 좀더 큰 회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동래청년회관측에서는 건물 신축을 위해 모금운동을 통하여 기금을 모으기로 하고 전국 각지의 지방 유지들을 방문하는 등 1년여의 모금 결과 어느 정도 기금이 확보되어 새로운 회관을 신축할 수 있었다. 4년여의 고생 끝에 일성관이라 이름을 붙여 1933년 10월 준공하였다. 그러나 낙성식을 거행하는 날 동래일성관 정문에는 일본순사들이 들이닥쳐서 붉은 사상의 온상이라며 출입을 금지시켜 낙성식을 거행할 수가 없었다. 당시 동래일성관(東萊靑年會館)을 중심으로 전개된 대표적인 단체결성과 항일운동은 다음과 같다.

1919년 3월 13일 동래고보의 3.1운동, 1925년 부산청년회 결성, 1927년 6월 28일 신간회부산지회 창립 총회를 동래청년회관에서 거행,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때 신간회 동래청년회 소년부 회원인 동래고보 4학년생인 문재순외 7명이 주동이 된 동래고보 연대맹휴, 1929년 일제의 신간회 해산에 항의하여 동래고보 4학년생들의 맹휴, 1930년 1월 7일 부산 2상(현 부산상업고등학교) 학생운동으로 문길환 장남현 등이 동래청년회관의 등사기를 이용하여 유인물을 만들기도 했다.

이 밖에도 부산 동래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항일운동은 일성관(東萊靑年會館)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많은 독립운동이 이루어진 곳으로 그 정신을 기리고자 동래구에서는 동래만세거리로 지정하였다. 일성관 건물은 광복이후 시립도서관 동래분관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997년 도로확장으로 철거되어 사라져 버렸고, 옛터에는 동사무소 건물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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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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