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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성장대

수영성 장대

장대(將臺)는 성(城)·보(堡)·둔(屯)·수(戍) 등의 동·서(東·西)에 쌓아 올린 장수의 지휘대를 말한다. 수영성 장대는 지금의 수영사적공원(水營史蹟公園)을 중심으로 수영동 일대에 있었던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성(慶尙左道水軍節度使營城 : 좌수영성 또는 수영성이라고도 함)은 낮은 구릉지에 세운 평산성(平山城)이었기 때문에,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높은 곳에 장대를 쌓을 필요에 따라 쌓은 곳이다.

이러한 지형적 여건으로 이곳의 장대는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적의 동태를 살필 수 있는 척후처(斥候處 : 적의 형편이나 지형 등을 살피는 곳)인 점이대(覘夷臺 : 민락동 백산 부근)와 망경대(望鏡臺 : 광안2동 토산)에서 오는 신호를 받아 지시를 내리는 지휘소로 이용되었다. 그 위치는 좌수영성 남문 밖 5리에 있었고, 신호로는 깃발 또는 나발이 사용되었다.

장대에서는 수군(水軍)들이 무술을 닦고, 무술시험을 보던 연무정(鍊武亭)이 있었다. 무술시험은 매년 10월 1일에 개최되었는데, 좌수사(左水使)가 직접 무사(武士)들에게 무예를 시험하였다. 이때 합격한 사람은 좌수사 명의의 합격증을 받아 선달(先達 : 군의 간부가 될 후보자)이 되었다. 한편, 이곳 장대는 1868년(고종 5년) 8월 조선정부의 천주교 박해로 천주교도 이정식(李廷植) 등 신도 8명이 참수형(斬首刑)을 당한 곳으로 당시 서학(西學)에 대한 조선 사회의 인식을 대변하고 있다. 지금 장대는 없어졌지만, 부근 골짜기를 장대골[將臺谷]이라 부르는 것에서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2003년 부산광역시에서는 수영구 광안4동 체육공원 내에 역사유적 표지석을 세워 역사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1868년 부산 수영장대에서 군문 효수형을 받고 순교한 이정식 요한과 그의 일가족(동생, 아들, 며느리) 4명을 비롯한 8명의 부산 순교자들의 묘지가 있는 곳이 오륜대 순교자 묘지에 모셔져 있다. 부산 순교자 유해는 본래 동래구 명장동에 안장되어 있었으나, 도시계획에 의해 1977년 9월 17일 오륜대 순교자 묘지로 옮겨지게 되었다.

오륜대 순교자성당 우측을 돌아 뒷편으로 가면 순교자묘소 가는 길과 산속으로 난 십자가의 길 입구가 보인다.왼편으로 층계를 오르면 부산 동래 출신 8명의 순교자 무덤이 3단으로 서편 햇볕을 받으며 잘 정돈되어 있다. 80여세의 노구로 순교의 월계관을 받은 이정식(요한)과 아들 이 프란치스코와 며느리 박 마리아 등 일가족 4명과 이정식(요한)의 선교 활동에 의해 세례를 받은 양재현 말띠노 등 모두 8명이「병인박해」의 여파로 1868년 8월 19일 부산 수영 장대(水營將臺: 현 부산 광안동 수영 중학교 뒤)에서 군문 효수(軍門梟首)형을 받아 장렬히 순교 하였다. 묘지에 안장된 이들 8명의 순교자 유해는 본래 부산 동래구 명장동 산 96번지 가르멜 수녀원 뒷산 기슭에 묻혀 있었는데 부산시의 도시계획에 따라 1977년 9월 19일 현재의 한국 순교자 기념관 뒷동산에 이장되었다. 8분의 순교자중 이정식(요한) 일가 4명의 유해는 발굴되었으나 나머지 4명은 유해가 발굴되지 않아 기념비만을 세워 두고 있다.

그 명단을 보면, 이정식(李廷植, 요한 John Lee Chong Shik), 이삼근(李三根, 베드로 Peter Lee Sam gun), 이관복(李寬福, 프란치스코 Francis Lee Kwan Bok), 박소사(朴召史, 마리아 Mary Park So Sa), 양재현(梁在鉉, 말띠노 Martin Yang Che Hyon), 차장득(車長得, 프란치스코 Francis Cha Chang Duk), 이월주(李月柱, 야고보 James Lee Wol Chu), 옥소사(玉召史, 발바라 Barbara Ok So Sa )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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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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