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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정

정과정

정과정 유적지(鄭瓜亭遺蹟址)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4호('03. 5. 2 지정)로 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동 산6-2번지 일원이다. 「정과정곡(鄭瓜亭曲)」을 지은 정서(鄭敍, 호 瓜亭)는 고려 인종·의종 때의 사람으로 동래 정씨의 시조 정문도(鄭文道)의 증손자이며,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정항(鄭沆)의 아들이다. 정서는 고려 17대 인종의 동서였으나, 인종에 이어 의종이 왕위에 오른 후 궁중의 권력다툼으로 간신의 모함을 받아 의종 5년(1151) 동래(東萊)로 유배당하였다.

유배 당시 의종은 정서가 무고하였음을 알고 곧 소환 할 것을 생각하였으나, 10년이 지나도록 임금의 부름이 없어 지난날의 결백과 임금을 그리워하며 정과정(鄭瓜亭, 정자이름)에서 우리 국문학상 가치를 지닌 가요(歌謠)인「정과정곡(鄭瓜亭曲)」을 지어 오늘에 전하고 있다. 이 가요는 그 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십구체(十句體) 신라 향가 형식으로 된 순 우리말 노래라는 것과 충신연주의 간절한 내용이 심금을 울리는 보배로운 시가이다. 속요체 고려가요 중 유일하게 작자를 알 수 있는 노래이다. 가요의 전문은『악학궤범』에 실려 있다.

정서는 고향인 동래에 유배되어 그 곳에 정자(亭子)를 짓고 참외[瓜]를 심어 스스로 호를 과정(瓜亭)이라 짓고 머물면서 임금의 부름이 있기를 빌면서 기다렸다 한다.『동국여지승람(1481)』동래현 고적조에도 과정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과정'은 동래현의 남쪽 10리에 있다고 했다. 이 기록을 토대로 추정해 보면 정과정의 현재 위치는 수영강변을 따라 수영하수처리장에서 고려제강에 이르는 지역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일대 대부분의 지역은 개발 등으로 인해 원 지형을 찾기 어려우며, 수영구 망미2동 산6-2번지 일원 약 4,092㎡ 정도만이 원 지형을 간직한 녹지로 남아 있다.

이곳에 1974년 '정과정 옛터' 표시석과 1984년에는 정과정곡 가사를 새긴 '정과정비'를 부산교대부속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세웠다. 또한 경암(鏡巖, 용두곶)이라는 바위가 있고, 보호수 1그루와 1984년 토향회에서 건립한 정과정시비가 있는 등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과정은 이 곳을 중심으로 하여 '오옹건내'를 건너서 오이밭을 일구고, 또한 이 곳에서 망산(望山, 지금의 번영로 건너 망미주공APT가 들어서 있는 곳)에 올라가 임금이 계시는 개경(開京)을 바라보며 배산쪽을 향해 임금께 잔을 바쳤다 하여 배산(背山)을 '배산(盃山)'이라 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옛 국군통합병원~연안교간 3.6㎞구간의 도로명인 과정로는 정과정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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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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