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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대

영가대

영가대(永嘉臺)는 일본에 파견되었던 통신사행(通信使行)과 관련이 깊은 부산의 명소였다. 1614년(광해군 6) 경상도 순찰사 권반(權盼)은 당시 부산진성 근처의 해안이 얕고 좁아 새로 선착장을 만들었다. 이때 바다에서 퍼 올린 흙이 쌓여 작은 언덕이 생겼고 이곳에 나무를 심고 정자(亭子)를 만들었다.

1617년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였던 오윤겸(吳允謙)이 처음 영가대에서 일본으로 출발한 이후 통신사행은 줄곧 이곳에서 출발하여 이곳으로 돌아왔다. 1624년(인조 2) 선위사 이민구(李敏求)가 일본 사절을 접대하기 위해 부산에 파견되었다가 이 정자를 보고 권반(權盼)의 고향 안동의 옛 이름인 영가(永嘉)를 따서 영가대(永嘉臺)라고 이름 지었다.

통신사행은 조선후기 한일관계를 밝혀주는 평화사절로,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파견된 것은 1636년부터 1811년까지 총 9차례였고 이때 조선국왕의 국서(國書)를 가지고 일본 막부(幕府)가 있는 에도(현 東京)에 파견되었는데 주된 파견목적은 새로운 막부장군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통신사행(通信使行)은 왕복 8개월 정도가 걸리는 긴 여정이었고 또 거친 대한해협을 건너가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 따라서 통신사행은 출발하기 전에 영가대에서 안전 항해와 무사 귀환을 비는 해신제(海神祭)를 올렸다.

해신제(海神祭) 제문(祭文)
유세차 을미(乙未, 1655) 오월 갑신삭 이십칠일 경술일에 통신 정사 조현(趙珩)·부사 유창(兪瑒)·종사관 남용익(南龍翼) 등은 삼가 맑은 술잔, 여러 가지 제사음식으로 공경히 큰 바다 신에게 제사 드리나이다.… 지금 우리의 행차는 먼 나라에 왕명(왕명)을 띠고 가는 것입니다.… 배를 준비하고 좋은 날을 가려 받아 오백명의 사람이 여섯 척의 배에 나누어 실렸습니다. 잔잔한 물결 놀란 물결에 목숨이 털끝과 같습니다. 신의 은혜가 아니면 어찌 무사히 건너 겠습니까.… 정성을 깨끗이 하여 술잔을 올리오니 신은 우리의 원을 들어주소서. 흠향(欽饗)하여 주소서.
-1655년 통신사 종사관 남용익이 쓴『부상록(扶桑錄)』중에서-

뿐만 아니라 영가대는 경치가 빼어나 시인, 묵객(墨客)은 물론 이곳을 거쳐간 통신사행들이 많은 시를 남겼다.

高臺蕭瑟出雲端 높은 대가 소슬하게 구름 끝에 솟았는데
陂水千尋石色磻 언덕 밑 천길 물에는 돌그림자 서려 있네.
艦穩如藏大壑 배들이 평온히 큰 구렁에 숨겨져 있는 듯
海中終日自波瀾 바다 가운데에는 온종일 물결이 치는구나.
-1643년 신유 영가대-

영가대는 1906년 경부선의 개통으로 양분되고 일제강점기 때 오이케 다다스케(大池忠助)의 별장인 능풍장으로 옮겨졌다가 그 후 도시화 과정에서 건물이 헐리면서 그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2000년 부산광역시에서는 동구 좌천동 지하철역 출구 부근 도로공원에「부산포왜관·영가대터」의 표석을 세워 역사교육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부산시 동구청에서는 2004년 부산진지성 부근에 영가대를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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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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