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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개

용호동 일대를 조선시대에는 분개(盆浦)라고 불렀다.『동래부지(1740)』에 의하면, "분포리는 남촌의 관내에 있으며, 관문에서 28리 거리에 있었다"고 하였다. 지금의 용호1동과 용호3동 위쪽인 LG아파트(구 동국제강)가 들어서 있는 자리 근처를 분개라고 하였다.

이곳의 지형은 바닷물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그릇 모양의 염전이 있는 갯벌의 모양에서 분개라 하고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분포이다. 분개에서 언제부터 소금을 구웠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부터 약 400년 전에 석포마을의 동쪽에 사분개 염전을 시작한 것이 분개 염전의 시초라고 한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바다가 자연 매립되어 남쪽으로 해안이 이동함에 따라 지금의 용호동쪽으로 염전이 옮아가게 되었다. 조선시대 이곳에 염전분이 24군데나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는 6곳의 염전구역으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그때의 염전 명칭은 거득분, 신분, 강개분, 보리분, 광개분, 등분 등 6곳이었다. 지금은 분개라는 이름만 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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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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