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주요역사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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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2월 26일 | 강화도에서 강화도조약(일명 丙子修好條規) 체결됨 - 부산항 근대무역항 개항 |
1876년 4월 4일 | 수신사 김기수 일행 한양출발(4. 26일 부산항에 도착) |
1876년 4월 29일 | 수신사 김기수일행 일본기선 타고 부산항 출발(윤5. 7 수신사 일행 부산항 도착) |
1876년 5월 3일 | 일본, 대마도주의 職과 송사의 예를 폐지함에 따라 대마도주의 국서를 동래부에 반송 |
1876년 6월 | 부산에 사설 제일은행 설치 |
1876년 7월 6일 | 『朝日修好條規附錄』 및 『朝日貿易章程』 조인 |
1876년 10월 25일 | 일본외무성 藤眞鋤, 부산관리관으로 부임 |
1876년 11월 1일 | 부산 일본영사관내 일본재외우체국 설치, 일본우편선 浪花丸 부산항 입항 |
1877년 1월 30일 | 동래부사 洪祐昌, 일본국관리관 近藤眞鋤간 『釜山港日本人居留地界條約』 조인 - 종전의 초량왜관 지역이 日本人專管居留地가 됨 |
1877년 2월 10일 | 일본인 경영의 부산재생병원 매월 15일 종두실시한다고 고시 |
1877년 2월 25일 | 초량왜관 수설문 폐지 |
1877년 5월 12일 | 동래부사 尹致和 부임, 吳連伊 등 왜관난입 내통죄로 처형 |
1877년 5월 23일 | 동래부사 홍우창, 일본국관리관 近藤眞鋤사이에 일본으로 표류한 조선선박 취급에 관한 辯理漂流船隻章程 조인 |
1878년 6월 21일 | 일본 국립 제일은행 부산지점 설치 |
1878년 8월 10일 | 부산항 출입화물의 과세 징수를 위해 세목과 통행규칙 결정 |
1878년 8월 | 일본인 부산상업회의소 설립 |
1878년 9월 3일 | 조선정부, 두모포에 해관 설치 - 본국 상인에게만 관세징수 |
1878년 9월 14일 | 일본관리관, 부산해관 설치가 병자수호조규에 위배된다고 동래부에 철폐요구 |
1878년 11월 6일 | 일본대리공사 花房義質, 부산에 와 관세징수를 항의하는 무력시위 |
1878년 11월 26일 | 부산 두모포 해관을 폐지하고 수세중지 - 일본 해관세 문제로 손해배상 요구 하며 소동 일으킴(일명 : 부산해관 수세사건) |
1878년 12월 2일 | 조선정부, 관세징수를 일시 중단키로 결정 |
1878년 12월 4일 | 일본정부 대리공사가 부산 일본관리관에게 해관철폐 요구케 함 - 동래부사 조정의 명이라 불응 |
1878년 12월 19일 | 부산해관 폐쇄 |
1879년 3월 | 일본관리관청사 本町(현 동광동) 착공 - 부산 최초의 양식건물(9. 6 준공) |
1879년 3월 24일 | 부산에 불법침입한 일본해군 39명과 모리배 행패자행 |
1879년 3월 25일 | 일군관 60여명 동래부청 습격 |
1879년 윤3월 3일 | 일본대리공사 花房義質, 개항촉진과 부산해관징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위해 부산항 입항 |
1879년 5월 3일 | 동래부사 尹致和, 대일교섭 불화의 책임으로 파면 |
1879년 5월 | 동래부 전역에 콜레라 창궐 |
1879년 10월 | 지석영 부산 재생병원에서 종두법 기술습득 |
1880년 2월 | 종래의 일본거류민 관리관청을 부산영사관으로 명칭변경(영사주재) |
1880년 3월 26일 | 미 해군제독 슈펠트 군함을 이끌고 수호조약 체결 위해 부산항 입항 |
1880년 3월 27일 | 동래부사 일본영사를 통해 제출한 미국 서계 접수 거절 |
1880년 4월 | 부산영사관에 일본경찰서 설치(현 동광동) |
1880년 5월 9일 | 프랑스 군함 1척 부산항에 입항 통상요구 - 동래부사 거절 |
1880년 6월 25일 | 지석영(池錫永) 종두· 두적(痘笛) 제조법을 배우기 위해 수신사 김홍집 일행을 따라 도일(8월 11일 수신사 김홍집 일행 부산도착) |
1881년 2월 21일 | 영도에 절영도첨사영 設鎭(포이포진, 서평포진, 개운포진은 폐진) |
1881년 4월 10일 | 신사유람단 부산항 출발 |
1881년 8월 7일 | 수신사 趙秉鎬 종사관 등 부산항 출발 |
1881년 10월 19일 | 일본상인들 부산에서 旬刊 "朝鮮新報" 발행 |
1882년 2월 | 琉球(현 오키나와)商社, 부산에서 와서 교역요구 - 거절 |
1882년 4월 6일 | 조·미 수호조약 조인 |
1882년 4월 30일 | 부산일본영사대리, 정부의 소가죽 매점에 대해 동래부에 항의 |
1882년 5월 15일 | 조·독 수호조약 조인 |
1882년 8월 9일 | 일본특사수신사 박영효 일행 부산출발 - 최초로 태극기 사용 |
1882년 8월 23일 | 조·청상민수륙장정 조인 |
1883년 1월 24일 | 釜山 - 長崎간 한일해저전선부설조약 체결 |
1883년 1월 27일 | 태극기 국기로 제정, 전국반포 |
1883년 5월 11일 | 동래에서 민란이 일어나 수백명이 관아습격 죄수방면하는 사건 발생 |
1883년 8월 19일 | 3개항구(부산, 인천, 원산)에 해관 사무를 위하여 감리(監理)를 둠 |
1883년 9월 8일 | 3개항구의 해관세 수세업무를 일본제일은행 각지점에 위탁계약 |
1883년 9월 16일 | 부산 - 長岐간 해전전선가설공사 착공 영국정부 영선산 일대 영사관 부지 조차 |
1883년 11월 3일 | 부산해관 개설(현 중앙동) - 해관 주도권을 청국이 장악 |
1884년 1월 4일 | 일본제일은행과 개항장 해관세 취급약정 조인 |
1884년 2월 2일 | 부산 - 長崎간 해저전선 가설 완공 |
1884년 2월 28일 | 부산 - 長崎간 해저전선 개통 |
1884년 2월 | 부산항 출입 일본선박의 출입수칙 제정 |
1884년 5월 4일 | 부산 해전전선 보호조치 제정공포 |
1884년 5월 7일 | 부산영사관 건물 착공(1910-1936 부산부청사로 사용) - 1884. 10. 3 준공 |
1884년 5월 8일 | 청국상무공사 부산분서 설치 (현재 중국화교학교 자리) |
1884년 5월 | 부산일본전신분국 전보 무료송수신 개시 |
1884년 윤5월 4일 | 조·불수호통상조약 조인 |
1884년 윤5월 15일 | 조·러수호통상조약 조인 |
1884년 6월 | 부산일본전신분국 기상기계 설치하여 기상관측 시작 |
1884년 10월 | 동래·부산지역에 쌀 판매 거절사건 발생 |
1885년 4월 | 일본거류민단이 共生病院 설립 - 濟生病院 전신 → 1914년 부산부립병원으로 바뀜 |
1885년 5월 1일 | 부산감리서 폐지 |
1885년 11월 10일 | 일본재판소 설치 |
1885년 11월 11일 | 조·일해전선 조관속약 조인(11월 16일 체결) |
1886년 10월 1일 | 남선전선, 한성 - 부산간 전기가설공사 착공 |
1886년 10월 19일 | 부산일본영사 室田義文 부임 |
1887년 3월 5일 | 일본임시 대리공사, 부산 등지의 소가죽세, 방곡령 해제요청 |
1887년 3월 25일 | 조선정부와 청국과 부산 - 한성간로 전신설정 체결 |
1887년 3월 | 경상감사, 부산 등지에 都庫방지 위해 방곡실시 |
1887년 6월 1일 | 전보국 동래분국 신설 |
1887년 11월 28일 | 부산일본영사, 곡물수출금지령 철폐를 정부에 요구 |
1888년 1월 31일 | 부산 절영도에 일본해군 저탄소 조차조인(4,900평) |
1888년 2월 18일 | 영국의 기술자 감독아래 부산 - 경성간 전선 가설 |
1888년 4월 29일 | 부산해관부지 확장 매축공사 준공(1887년 착공) |
1888년 8월 7일 | 부산감리서 재차 설치(현 봉래초등학교 자리) |
1889년 1월 | 호주 선교사 데이비스 목사 전도소 창설 |
1889년 7월 19일 | 부산객주상업회의소 설립 |
1889년 10월 20일 | 『조·일통어장정』 조인 |
1890년 3월 | 부산항 25객주분읍제 실시하여 매매주선독점권을 주는 25객주제 허가 |
1890년 6월 10일 | 개항장의 객주·거간규칙 일본의 반대로 철폐 |
1891년 3월 23일 | 부산주재 일본영사 中川恒次郞 부임 |
1892년 7월 | 일본 제58은행 부산지점 설치 |
1892년 8월 | 복병산에 일본인묘지조성에 관한 조·일간 계약 성립 |
1892년 8월 25일 | 영국인 브라운을 해관총세무사에 임명 |
1893년 6월 10일 | 부산감리 민영동 일본상인 절영도에 가건물 설치한 사건으로 문책당함 |
1893년 7월 10일 | 부산항 査檢官에 박기종 임명 |
1893년 8월 25일 | 최초로 전화기 도입 |
1893년 10월 24일 | 부산과 원산항에 방곡령 실시 |
1894년 2월 4일 | 부산과 원산항 방곡령 해제 |
1894년 6월 23일 | 청·일전쟁 일어남 |
1894년 6월 | 보수천 상류 저수지 및 자연여과 시설 축조 착공(1895년 1월 준공) |
1895년 5월 1일 | 칙령 제98호(1895년 5월 26일 공포) 전국을 23부 331군으로 행정구역 개편 - 동래부를 동래관찰부(관찰사)로 승격 |
1895년 5월 15일 | 부산 개항장 재판소 설치 |
1895년 5월 22일 | 부산 최초 근대학교 부산개성학교 설립(발기인 박기종) |
1895년 5월 24일 | 외무대신 각국공사에게 절영도 조차 불허통보 |
1895년 5월 | 부산, 인천, 원산항의 경무관 감축에 관한 건 반포 |
1895년 윤5월 1일 | 부산·원산·인천 감리서 폐지 |
1895년 윤5월 26일 | 부산, 인천, 원산항의 감리서 폐지에 관한 건 반포 |
1895년 7월 | 3도통제영(三道統制營), 兵․水營 폐지(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 폐지) |
1895년 10월 15일 | 부산진 사립일신여학교(동래여중·고 전신) 설립 |
1895년 11월 3일 | 향회조규와 향약판무규정 공포 - 주민이 지방행정의 공공사무에 참여 규정 |
1895년 11월 15일 | 연호 개정, 개국 505년을 建陽元年으로 함(1896년 1월 1일부터 사용) |
1896년 1월 1일 | 태양력 사용 |
1896년 5월 1일 | 개항장 경무서 설치 |
1896년 5월 | 러시아군함 부산항 정박중 예포 31발 발포, 부산항 정박중인 일본군함과 암투벌임 |
1896년 8월 4일 | 칙령 제36호(1896. 8. 4 공포), 전국을 13도 7부 1목 341군으로 행정구역 개편 - 경상남도 동래부(부윤)로 개편 |
1896년 8월 7일 | 각 개항장에 감리를 復設하는 관제와 규칙 공포 |
1896년 8월 | 동래감리서 설치 - 부산항 외교권 지휘, 감독 |
1896년 11월 | 러시아 함대 부산항 입항 절영도 상륙 - 조계조차 요구 |
1897년 8월 |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光武) |
1897년 9월 | 구관(두모포왜관)에 "辯察所" 설치하여 경찰업무 담당 |
1897년 10월 | 러시아, 부산 절영도에 석탄저장소 설치하려다 각국공사 항의로 실패 |
이해 | 부산에 나환자 병원 설립 |
1898년 2월 25일 | 부산 절영도 조차를 러시아에 허가 |
1898년 9월 8일 | 경부철도부설권 구한국정부에서 일본의 철도회사에 이관 |
1899년 5월 12일 | 상무회의소를 부산상무회사로 개칭 |
1899년 5월 23일 | 일본부산영사관 분관 마산포에 개관 |
1899년 9월 8일 | 경부철도부설권 일본인에 허가 |
1901년 5월 30일 | 부산 - 창원간 전선개통 |
1901년 8월 20일 | 경부철도 공사 초량에서 기공식 |
1901년 6월 27일 | 박기종·김석규 등 "영호지선철도회사" 설립 |
1901년 7월 9일 | 제1차 북빈(현 중앙동)매축공사 착공(1905년 12월 준공) |
1901년 9월 12일 | 부산전등(주) 설립 |
1901년 10월 | 경부철도 착공(초량-구포) |
1902년 4월 1일 | 부산전등(주) 영업개시 |
1903년 3월 | 부산거류 일본인의 발기로 철도운수회사 설립 |
1903년 7월 3일 | 칙령 제10호(1903. 7. 3 공포)로 지방제도 중 개정 - 동래부(부윤)를 동래군(군수)으로 개편 |
1904년 2월 9일 | 부산항에 정박중인 러시아 만주 동청철도 소속 상선이 일본군함에 의해 나포 |
1904년 2월 10일 | 러·일전쟁 일어남 |
1904년 3월 | 부산 측우소가 일본 기상대 임시측우소로 발족 |
1904년 4월 | 부산 - 초량간 전화개통 |
1904년 11월 10일 | 경부선 철도 완공(초량-영등포) |
1905년 1월 1일 | 경부철도 한성 - 초량간 전구간 영업개시 |
1905년 1월 | 일본침략자들은 경상도 가덕도 등지에서 군용지로 논밭 수탈 |
1905년 5월 23일 | 부산잔교 설치공사 착공 |
1905년 5월 28일 | 경부선 철도 개통식 거행 |
1905년 5월 | 영선산착평공사 착공 (1912년 8월 준공) |
1905년 9월 11일 | 부산 - 下關간 부관연락선 壹岐丸 취항(1931. 5. 11까지 운행) |
1905년 11월 1일 | 부관연락선 對馬丸 취항(1925. 12. 17까지 운행) |
1905년 12월 20일 | 일본정부, 한국통감부 및 이사청관제 반포 |
1905년 12월 31일 | 부산측우소 준공(현 중구 대청동) |
1906년 2월 1일 | 부산이사청 설치 |
1906년 3월 2일 | 부산항 거주 박영길 등의 발기로 초량사립학교 설립 |
1906년 3월 | 일본이사청이 영사관 업무 인수 |
1906년 4월 20일 | 부산에서 한일박람회 개최 |
1906년 4월 | 부산공립고등여학교 개교(부산여고 전신) |
1906년 7월 1일 | 부산해관 공사 착공(1912년 3월 31일 준공) |
1906년 9월 24일 | 칙령 제49호(1906. 9. 24 공포)로 지방행정구역 조정 - 양산군의 좌면(左面)이 동래군로 편입됨 |
1906년 9월 29일 | 함북 상인 부산에서 한국 상민공동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장흥사 조직 |
1906년 9월 | 일본정부, 의병장 최익현을 대마도에 유배 감금 |
1906년 10월1일 | 칙령 제48호(1906. 9. 24 공포)로 행정구역 명칭 개편(동래군를 동래부로 승격) |
1906년 10월1일 | 칙령 제47호(1906. 9. 24 공포) 외교․통상업무를 담당하던 감리서가 폐지되고 그 사무를 동래부(부윤) 인수 |
1906년 10월 | 부산잔교 설치공사 준공 |
1906년 11월17일 | 의병장 최익현 대마도에서 사망 유해 부산항 도착 |
1906년 11월 | 우리나라 최초로 전국적인 호구조사 실시 |
1907년 1월 1일 | “부산일보” 창간 - 1905. 1 일본조선일보 → 11월 “조선시사사보” 동래부 국체보상일심회 설립 |
1907년 4월 | 제2차 북빈(중앙동)매축공사 착공(1909년 8월준공) |
1907년 6월 | 부산 부두노동자 동맹파업 |
1907년 11월 5일 | 동명학교 설립(현 동래고등학교 전신) |
1908년 1월 27일 | 일본 한국을 식민지화 하기 위해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사위원회 조직 |
1908년 4월 1일 | 경부선 기점 초량역을 지금의 중앙동으로 연장하여 임시 부산역으로 삼음 |
1908년 4월 | 성지곡 수원지 축조공사 착공 |
1908년 8월 18일 | 동래상업회의소 발족 |
1908년 9월 | 부산재판소 설치 |
1909년 1월 | 동양척식주식회사 영업개시 |
1909년 5월 1일 | 영선산 착평공사 착공(1912년 8월 준공) |
1909년 6월 20일 | 부산경편궤도주식회사 설립발기 - 6월29일 부산∼동래간 경편궤도 부설권 허가 - 8월11일 부산궤도주식회사 창립총회 개최 |
1909년 10월 26일 | 안중근 의사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저격 |
1909년 10월 | 백산 안희제·김갑 등이 중심이 된 "대동청년단" 결성 |
1909년 11월 | 부산진 ∼동래 남문간 궤도공사 준공 (12월 1일 영업개시) |
1909년 12월 18일 | 동래 남문 ∼ 온천장간 궤도공사 준공 (12. 19 영업개시) |
1910년 3월 11일 | 부산진 일신여학교 학생의거 |
1910년 3월 30일 | 미선교사 어빈 부산 나환자병원 개설 |
1910년 4월 14일 | 탁지부 부산제빙소, 일본인 수산회사에 양도결정 |
1910년 4월 18일 | 한국은행 부산출장소 개설 |
1910년 5월 19일 | 한국와사전기주식회사에 부산부내와 부산진간 전기철도부설 허가 |
1910년 5월 25일 | 부산우체국 준공 (1953년 11월 27일 역전대화재로 소실) |
1910년 6월 | 우리나라의 최초의 공설시장 부평시장 개장(이전까지는 5일장 형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