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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항매축공사

남항매축공사

일제강점기 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동남해안 일대에는 2천여 개의 어장이 있었다. 그래서 그에 걸맞은 기능을 충실하게 발휘할 수 있는 어항(漁港)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실정에 따라 남항을 전용어항으로 하는 추진체가 조직되어 1915년에 남항 건설을 위해「남항수축기성회」가 설립되면서 남항매축공사(南港埋築工事)가 대두되었다. 기성회 설립과 함께 일본인 하시마(迫間房太郞)에 의해 남항 건설의 필요성을 조선총독부에 진정하였으나, 10년이 지나도록 성과가 없었다.

부산상업회의소 회두인 카시이(香稚源太郞)가「남항수축기성회」회장이 되어 추진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후 매축왕이라는 이케다(池田佐忠)가 나타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케다는 인천·목포·통영 등 여러 항만지역에서 매축공사를 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이케다는 민간차원에서 남항을 매축하려고 1925년 5월 현장조사에 들어감으로서 시작되었다. 1926년 에는 설계를 완성하여, 동년 10월에는 부산남항 건설허가를 조선총독부에 신청하여 1928년 2월 9일 조선총독부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1928년「부산항합자회사」를 설립하였고 11월 9일에는 공사를 해도 좋다는 실행허가를 받았다. 이 공사는 대한해협의 거센 파도가 밀어닥치는 곳이어서 방파제를 쌓는 일이 난공사였다. 남항 건설공사에는 총공사비 5백50만원이 들어갔는데 공사진행 단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25년 5월 부산 남항 실지 현장조사를 착수한 이후 1928년 2월 남항 건설공사 허가 신청인가를 받아 부산축항합자회사(자본금 5백만원)를 설립하였다. 1930년 5월 남항방파제, 남포동 해안 매축을 시작하여 1931년 4월 방파제, 1931년 8월 방파해벽, 1932년 12월 해안매축 1기공사를 준공하였다. 당시 매축된 부지는 148,038㎡(유효부지 101,956.8㎡)으로 평당 62원에 거래되었다.

남항매축 2기공사는 1934년 2월에 옛 충무초등학교(현 서구청)~충무동 5가 앞바다 매축을 시작하여 이 공사는 예정보다 늦은 1940년경에야 준공을 보았다. 매축된 부지는 112,200㎡(유효부지 73,722㎡) 이었다. 남항의 매축은 우리나라 최대 어항·어업전진기지로서 새로운 모습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와 같이 새로 마련된 호안의 길이는 약 1,026m로서 그 중에서 호안 석축이 약 286m였고, 하역장은 길이가 약 450m, 보수천 기슭의 호안의 길이가 약 230m였다. 새로 마련된 물양장은 남항의 이용가치를 높여 주었으며, 물양장의 넓이는 약 12m의 해안도로를 따라 넓이 약 6m로 비탈지게 간지석(間知石)을 깔아 하역작업이 편리하도록 하였다. 지금의 남포동 자갈치시장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남항은 우리나라 어업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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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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