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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감옥소

부산감옥소

부산감옥소(釜山監獄所)는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삼익아파트 자리로 1896년 9월부터 일본군 수비대 연병장으로 사용하여 왔던 곳이다. 부산감옥소(釜山監獄所)가 들어선 것은 1909년 10월 21일의 일이었다. 그 부산감옥소는 1923년 4월 1일 부산형무소로 이름이 바뀌고, 1962년 11월 23일에는 부산교도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1973년 11월 23일 지금의 사상구 주례동으로 건물을 지어 옮겨가면서 부산구치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부산감옥소와는 달리 부산소년원은 광복 후인 1947년 1월 8일서구 동대신동 2가 75번지에 개원하였다. 그러나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주택지에 자리 잡은 소년원은 주변 주민들의 줄기찬 이전요구에 따라 1970년 3월 12일 회동수원지 오륜대 수원지 이웃의 조용한 자리(금정구 오륜동 624번지)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구와 서구를 잇는 보수천의 여러 다리 가운데 부산감옥소와 인연이 깊은 검정다리[黑橋]라고 불리는 통나무다리가 있었다. 언제 설치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구전(口傳)에 의하면 한말에 설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검정다리는 한말 이후 오늘의 중구와 서구를 잇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특히, 한국전쟁 때는 보수천 하천가에 집단 난민촌이 형성되어, 피난민과 정착민의 애환이 서려 있던 곳이다. 통나무 다리를 놓은 후, 이 일대 사람들은 다리의 부식을 막기 위해 통나무 겉 부분을 불로 까맣게 태웠다. 통나무 다리는 큰 숯검정으로 변하였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이 다리를「검정다리」라고 불렀다. 일제 강점기 때 서구 동대신동 부산감옥소(현 삼익아파트 자리)에 수감된 죄수의 대부분은 항일독립운동가, 애국지사 또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우리 민족으로, 이들은 검은 죄수옷을 입고 있었다. 가족들이 면회를 가기 위해서는 유일한 통로인 이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억울한 옥살이를 한탄하였다 하여, 다리 이름을「검정다리」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그러나 어느 쪽 유래가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1940년대 들어 통나무 검정다리를 대신하여 콘크리트 다리가 새롭게 놓여졌다. 검정다리 이름의 흔적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이 일대 도로에는 충무동 육교에서 보수동사거리를 지나 흑교에 이르는 도로를 “흑교로”라는 도로명이 붙여져 있다. 또한 1996년 7월 부산 중구청에서는 이러한 시대적인 아픈 역사를 간직한 이 흑교[검정다리]가 놓여 있던 곳에 중구청에서「검정다리 추억비」를 세워 옛 추억을 그나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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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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