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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관

봉래관

부산항이 개항된 이후 일본인들은 동래온천장에 욕탕을 가진 여관을 설립하여 그들의 위락 휴양지로 삼으려고 갖은 술책을 썼다. 일본인 중 가장 먼저 여관업을 개업한 사람이 팔두사(八頭司)라는 사람의 팔두사여관이었다. 그 뒤인 1903년경에는 일본인 전용의 목욕 겸 여관으로서 광월루(光月樓)가 생기고, 1907년 8월에는 지금의 호텔농심(구 동래관광호텔) 뒤인 허심청 자리에 일본인 풍전복태랑(豊田福太郞)이 봉래관(蓬萊館)을 신축하였다.

이 봉래관은 증축 확장되어 1920년대 초에는 객실 35개, 대방 20개, 욕탕 5개를 두고, 본관 뒤쪽에는 한국관 온돌부 1동을 세웠다. 1923년경부터는 조선주재 일본주둔군이 늦가을에서 다음 해 봄까지 봉래관 구내에서 전지요양을 하기도 했다. 봉래관 앞 하천 2천여평을 매축하여 정원을 만들고 정원 안에 다시 수 백평의 양어지를 파서 호수를 만들어 놀이 배를 띄우고 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당구장 같은 오락시설까지 갖추어 휴양지를 찾는 손님들의 기호를 맞추었다.

그 규모는 하나의 소공원과 같은 것으로 당시로서는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큰 여관이었다. 그 후 1936년 1월 봉래관 본관이 불에 모두 타고 본관 뒤의 온돌의 한국관인 별관만 남아 있었다. 봉래관 본관이 불탄 뒤 풍전은 토지와 남은 건물을 일본인 고전(高田)이란 사람에 팔고 봉래관 서쪽에 백록관(白鹿館)을 신축하였다. 봉래관 터에는 광복 이전까지 한국관만 쓸쓸하게 남아 있었으나, 광복 이후 적산터로 남아 있다가 귀속재산으로 불하된 뒤 소유주가 여러 차례 바뀌었다가 지금은 호텔 농심과 허심청의 주차장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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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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