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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유래

1. 동래와 단절·역전된 부산의 위상

현재 부산은 15개 구(동래구 등)와 1개 군(기장군)으로 된 광역시이다. 부산+광역시 이름이 된 ‘부산’을 찾는 작업은 부산 시민이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중요한 사안이다. 이를 살피기에 앞서 부산시의 역사를 소급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부산광역시(1995년 1월 1일) 전에는 부산직할시(1963년 1월 1일), 부산시(1949년 8월 15일)였다. 제1공화국 탄생(1948년 8월 15일) 1년 뒤에 부산부에서 부산시로 바뀌었다. 부산부는 1910년 일제 강점 때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 이전, 부산시에 해당하는 행정 명칭은 동래부이다. 동래가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이 된 것은 신라 경덕왕(742~764년) 때이다. 이때 거칠산군에서 동래군으로 바뀐 이후부터 1910년까지 부산 지역은 부산이 아니라 동래였다. 조선시대 부산은 동래부 아래에 있는 부산(『호구총수』, 1759년), 부산면(『동래부읍지』, 1871년)이었다. 고려시대 부산은 면이 아니고 부곡(富山部曲)(『신증동국여지승람』, 1530년)이었다.
현재 부산광역시의 이름이 된 부산은 1910년 부산부의 탄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산부의 탄생으로 동래는 동래/부산으로 나누어졌고, 동래-부산의 위상은 부산-동래로 역전되었다. 조선시대 부산에서 부산광역시 이름이 바로 유래된 것은 아니다. 부산은 조선시대 부산포·부산진과 직접 관련된 지명이다.

2. 조선시대 사료에 보이는 부산(富山)과 부산(釜山)

현존하는 사료 중 고려시대나 그 이전 사료에서 부산이란 지명을 확인할 수는 없다. 부산이란 지명은 1402년 “동평현 부산포(富山浦)에 왜구가 들어와 천호 김남보와 사졸 10여 명을 죽였다.”(『태종실록』 3권, 태조 2년 1월 28일)는 기록이 처음이다. 이때 부산은 ‘부산(富山)’이다. 현재와 같은 한자 이름은 1469년 “동래현령 반희가 하직하니, (중략) 반희가 일찍이 부산포(釜山浦) 첨절제사가 되었을 때...”(『성종실록』 제1권, 즉위년 12월 15일)라는 기록이 처음이다. 부산(富山)/부산(釜山) 둘 다 산 이름이 아니라 부산포와 관련된 명칭이다. 지도에서는 1474년(성종 5) 남제가 그린 후, 신숙주 『해동제국기』에 수록된 ‘동래 부산포 그림(東萊富山浦之圖)’에 처음 등장한다. 1402년의 부산포(富山浦)보다 늦게 등장하지만, 역사적 유래로는 그보다 앞선 것이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의 부산(富山)부곡이다. 조선시대 사료에 등장하지만, 부산부곡은 고려시대의 산물이다. 고려시대 군현제 아래에는 부곡제가 있었다. 부산이란 명칭이 행정단위 앞에 붙은 가장 오래된 것은 바로 고려시대 부산부곡이다.

3. 부산이란 산은 현재 어느 산인가

부산포나 부산부곡 등이 아니라, 부산이란 산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사료는 『신증동국여지승람』(동래현, 산천)의 “부산은 동평현에 있다. 산이 가마솥 모양과 같아 이렇게 이름지었다. 그 아래가 바로 부산포다. 상주하는 왜인의 집[항거왜호(恒居倭戶)]들이 있다. 북쪽으로 현과 거리가 21리다.”라는 기록이다. 가마솥과 같은 부산의 모습과 함께 산 아래 부산포·항거왜호가 강조되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읍지인 『동래부지』(산천, 1740년)에서는 “부산은 동평현에 있다. 산이 가마솥 모양과 같아 이렇게 이름지었다. 아래에 부산·개운 두 진이 있다. 옛날에는 상주하는 왜인의 집[항거왜호]들이 있었다. (중략) 부까지 거리는 21리다.”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래부지』는 비슷한 내용이지만, 전자는 산 아래에 부산포, 후자는 부산진·개운진이 있다는 부분이 다르다.
그러면 부산이란 이 산은 지금은 어느 산인가? 부산에 대해서는 현재 금용산, 수정산, 증산, 자성대산 등 여러 주장이 있다. 이런 여러 주장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위치를 비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반증이다.
「1872년 군현지도」(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에 포함된 「부산진지도」에는 정공단·개운진 뒤쪽 산 정상에 ‘부산 옛터(釜山故基)’라고 적혀 있다. 초읍·연지·화지산 뒤쪽 산에 금용산이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금용산은 부산과 별개 산으로 보인다. 1872년 「개운진지도」에도 정공단 뒤쪽 산 정상에 ‘부산 옛터(釜山故基)’라고 적혀 있다. 그 뒤쪽 산에 수정산이 표기되어 있다. 1872년 「두모진지도」에는 정공단·개운포 뒤쪽 산 정상에 ‘부산 옛터(釜山古址)’라고 적혀 있다. 그 뒤쪽 산에 수정산이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수정산도 부산과 별개 산으로 보인다.
1872년 부산진·개운진·두모진의 세 지도 모두 정공단 뒤쪽 산 정상에 성벽을 그리고 부산 옛터(故基·古址)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곳이 옛 부산성(부산진성임)임을 강조한 것이다. 세 지도 모두 ‘증산고기(고지)’가 아니라 ‘부산고기(고지)’라고 한 점이 주목된다.
1678년 「목장지도」(부산대 도서관 소장) <동래부>를 보면, 자성대를 포함한 부산진성을 묘사한 성 위쪽 부분에 ‘부산(釜山)’이라 적혀 있다. 이것이 지명 이름 부산인지, 산 이름 부산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산 이름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민건호의 『해은일록』(1884년 윤5월 13일)에는 “자성대는 곧 부산(子城臺卽釜山)”이란 기록이 있다. 이런 자료들에 근거해 보면, 17세기 이후에는 자성대산이 부산으로 불린 것은 틀림없다고 보인다.

4. 부산은 증산설인가, 자성대산설인가

임진왜란 전 현재 증산 아래에 있던 부산진성(부산성)은 임진왜란 후 자성대가 있는 쪽으로 옮겨졌다. 옮긴 부산진성 모습은 1872년 「부산진지도」에 잘 묘사되어 있다. 이시눌이 1834년 6월에 그린 「임진전란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에는 현재 증산 아래에 ‘옛 부산진(古釜山鎭)’, 자성대에 ‘지금 부산진첨사가 있는 곳(今釜鎭僉使所居)’이라고 적혀 있다.
자성대산이 부산으로 묘사되는 것은 부산진성이 옮긴 후의 자료에 나타난다. 부산이란 산은 임진왜란 전에는 부산포·부산포진·부산진이란 지명과 연동되어 있다. 따라서 옮기기 전의 부산진성 뒤쪽 산을 ‘부산’으로 불렀을 가능성, 즉 증산이 부산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현재 증산과 자성대산은 서로 마주보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두 산 모두 부산포(부산진)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동래부지』(성곽, 1740년)에는 “범천증산성은 부산 서쪽 3리에 있다. 왜인이 쌓았으나 지금은 폐하였다.”고 하였다. 증산이란 산 이름은 임진왜란 때 증산왜성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증산이 옛 부산이라면, 건너편 자성대산의 옛 이름은 무엇일까? 또한 자성대산이 원래(임진왜란 전)부터 부산이라면, 건너편 증산의 옛 이름은 무엇일까? 둘 다 정답을 확정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다.
임진왜란 후 부산진성을 옮긴 후에는 자성대산이 부산으로 불린 것은 틀림없다고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옮기기 전에도 부산이었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이것은 증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증산설, 자성대산설 모두, 부산진성이 옮기기 전에는 부산이었다고 특정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두 설 외에도, 옮기기 전에는 부산진성 뒷산 즉 현재 증산이 부산이었는데, 옮긴 후에는 부산진성에 포함된 자성대산이 부산이 되었다는 가설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증산을 부산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한 자성대산도 부산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게다가 자성대라고 부르지 자성대산이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현재 부산지역에서 ‘부산’이라 불리고 있는 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어느 산도 ‘부산’이란 산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임진왜란 전, 즉 부산진성을 옮기기 전에 부산이란 산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새로운 사료가 발굴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숙제이다.

자료관리 담당자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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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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