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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무역

부산금융은 1877년 우리나라 최초로 부산에 사설 일본 제일은행지점이 개설되면서부터이다.
이 은행을 모체로 1878년 6월 일본 제일국립은행 부산지점이 개설되었으며,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구한국은행(후 조선은행)의 창립 때까지 중앙은행 기능을 담당하였다. 당시 국내경제력이 취약하여 결국 통폐합되거나 일본인의 자본에 의존하게 되었다. 부산에는 민족금융기관으로 자본금 2만5천원으로 구포저축주식회사가 1909년 2월에 설립되어 민족자본 육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1945.10.14~1946.3.10일까지 조선은행 부산지점이 중심이 되어..
시내 각 은행지점은 일본은행권과 조선은행권 교환업무를 주로 하였으며, 1945. 11. 21일부터는 조선은행 부산지점만 화폐교환업무를 취급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본격적인 경제개발계획의 추진으로 부산의 금융 규모도 급격히 늘어났으며, 1972년 8월 3일 단기금융법, 상호신용금고법, 신용협동조합법 등이 제정되어 비은행금융기관의 규모와 비중이 커졌다. 1987년 12월 제2금융도시 육성계획에 따라 1989. 4. 1일 기술신용보증기금 설치되어 업무를 개시하였다. 이후 부산에 본점과 지점을 둔 금융기관은 예금은행과 제2금융권의 점포수는 2,260개(1997년)이며, 예금은행은 부산은행을 비롯 630개 점포, 비통화금융기관은 새마을금고를 비롯한 1,530개 점포가 있다.
제2금융권을 포함한 총수신액은 1976년 12월말 43조5,020억원으로 예금은행이 14조2,762억원..
비통화금융기관 29조2,258억원으로 전국대비 6%대를 차지하였다. 1997년 IMF를 맞아 금융권 구조조정에 따라 향토 금융기관인 동남은행이 퇴출로 자금의 역외유출 등 중앙의 예속화가 가속화되면서, 국내금융의 수도권 집중화로 입지가 취악한 상황이다. 2005년말 부산의 여·수신 비중은 전국의 5.6%, 수신비중은 6.6% 수준으로 인구대비 7.6%보다도 낮은 실정이다. 또한 금융기관 점포수는 총 1,115개로 전국 18,648개의 5.2%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부산은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의 25%을 차지하는 동남경제권을 배경에 두고 있으므로 서울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제2금융도시로서 성장할 잠재력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1999년 4월 개장한 한국선물거래소는 부산을 국제금융·무역도시로 육성하기 위해서이다. 부합된다. 2004년 1월부터 한국증권거래소에서 KOSPI200 주가지수선물·옵션상품 및 개별주식옵션 상품이 한국선물거래소로 이관되었고, 2005년 1월 27일 한국증권 선물거래소 본사 설립으로 증권선물시장을 동북아 특화금융시장으로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부산의 금융산업이 크게 발전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지 10년이 되는 해인 2018년 9월 우리 시는 동북아 금융허브도시 실현을 위한 새로운 10년 금융중심지 추진계획을 발표하였다.
4대 추진 방향으로 ①시민이 행복한 해양수도 실현 ②관련 금융기관과 공동으로 ③부산의 대형투자산업과 연계한 ④부산형 금융모델 개발이다.
부산의 무역은 천혜의 항만을 갖춘 대륙의 관문으로서 예로부터 우리나라 무역의 전진기지이다.
1948년 부산의 수출총계가 3,817백만원으로서 수입총액 1,209백만원 보다 크다는 특징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수출의 경우 기타 어패류가 가장 많아 전체의 48.5%를 점하였다. 따라서 당시에 있어서 부산항을 통해서 수출되는 주요품목은 모두가 농수산물 및 광산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수입품목을 살펴보면, 생고무가 가장 많아 전체의 29.7%로 이것은 부산에 고무공장이 많았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모직물, 합성염료, 소면 등의 순으로 되어있다. 그밖에 식염, 빨래비누 등 생필품이 10대 품목에 들어있고, 인장용지 6.1% 및 신문용지 6.5%와 합하면 종이류의 수입이 12.6%로 비중이 높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입의 주요품목을 모두 공산품이라 할 수 있다. 전쟁기의 수출입구조는 군수물자 및 외국원조의 도입으로 항구의 기능이 크게 증대하여 부산항을 통한 무역액을 크게 팽창하였다.
1960년대의 경제개발정책은 우리나라 공업발전을 주도하는 국내 대기업의 발상지로서, 1970년대까지 가장 활력이 넘치는 산업도시였다.
당시 우리나라 수출주도산업인 합판, 섬유, 신발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부산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1973년도 부산의 수출은 7억9천만$로서 전국 32억3천만$의 24.5%에 이르는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이후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으로 울산·창원·거제 등 동남공업벨트를 중심으로 석유·화학·기계공업과 조선 등의 중화학공업이 발전하게 되어 부산은 상대적으로 입지가 위축되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부산·서울 등 대도시가 성장관리도시로 지정되어 기존산업 중심의 생산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였고..
1989년 이후 매년 100여개의 중소업체가 역외로 이전하였다. 1997년말 부산의 수출액(59억5천만$)은 전국의 4.4%에 불과하다. 주요 수출품은 신발, 섬유, 철강, 조선, 고무, 화학제품 등이다. 부산의 2005년말 수출액은 77억6천600만$이며, 주력산업인 선박, 철강, 기계류 등 준공업분야의 수출액은 46억3천600만$과 신발, 섬유, 직물 등 경공업 분야의 수출액 31억3천만$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출의 양극화 심화는 중국 내 중공업 제품에 대한 수요증가와 부산산업의 기반 약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부산국제금융센터는 남구 문현금융로 40 일대에 부산도시공사에서 사업 수요에 따라 단계적 개발계획을 추진 중이다.
부산국제금융센터 1단계 복합개발 및 개별 개발사업은 지하 4층 지상 63층 규모로 2008년 4월에 착수하여 2014년 6월 완공되었으며, 30여개 금융기관 등이 입주하여 3,8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2단계 복합개발사업은 지하 7층 지상 36·49층 규모로 금융과 문화가 융합된 복합개발 방향에 따라 2018년 11월에 준공하였다. 도입시설은 1단계 랜드마크 건물 부대지원센터, 업무용시설, 문화시설이며, 문화시설은 구내 최대규모 뮤지컬전용극장(드림씨터어)와 세계 최대규모 한국예탁결제원 증권박물관이 입점한다. 3단계 복합개발사업은 2020년 착공을 목표로 핀테크·블록체인 등 금융기술 생태계 구축을 위한 금융기술타운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자료관리 담당자

문화유산과
이연심 (051-888-5058)
최근 업데이트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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