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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보도자료(~'19.03.26)

 

- 1919.3.1.자 지하신문 2종 원본, 시립박물관에 기증 - 사료로 만나보는 그 날의 기억!

부서명
시립박물관
작성자
임수진
작성일
2019-02-26
조회수
760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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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 시립박물관, 3.1.자 지하신문 『조선독립신문』, 『국민회보』희귀사료 2점을 부산 남구 거주 김 석동 씨로부터 기증 받아 ◈ 『조선독립신문』은 3·1운동 기록한 활판인쇄로 발행된 창간호 ◈ 『국민회보』는 필사본으로 일본에 의한 고종황제 독살설 주장
첨부파일
내용

부산시(시장 오거돈) 시립박물관은 부산 남구에 거주하는 김 석동 씨로부터 부친(김 장오(1896년생) )이 귀중하게 보관해 온 지하신문* 2점을 올 21일자로 기증받았다. 기증 유물은 191931일 발행한 조선독립신문창간호와 191931일 손으로 직접 써서 배포된 발행자 미상의국민회보이다.

 

*지하신문: 정상적으로 발간되지 못하고 암암리에 발간되어 단속을 피해 배포되는 신문

 

조선독립신문(신문사장 윤익선)191931일 서울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普成社)에서 이종일, 이종린, 윤익선이 주도하여 창간하였으며, 당시 독립선언서와 함께 인쇄되어 31일 전격적으로 배포한 지하신문이다. 손병희, 김병조 등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泰和館)에서 31일 하오(오후) 2시에 독립 선언한 사실과 민족대표 33인의 체포사실(종로경찰서 연행), 독립운동을 촉구하는 내용(비폭력운동 방침 포함)을 담고 있다.

 

시립박물관에 기증된 조선독립신문은 활판인쇄 10,000(윤익선의 경찰 신문(訊問)에서 10,000부 발행 진술) 중의 한 점으로 추정된다. 규격은 가로 19.4cm, 세로 22.5cm으로 A4크기보다 조금 작은 크기이다.

 

국민회보191931일로 적혀있는 필사본으로 발행처 미상의 지하신문이다. “아대행태상황제폐하(我大行太上皇帝陛下) 붕어(崩御)에 원인(原因)” 이라는 제하에 일본에 의한 고종의 독살설을 제기하고 가칭선일동화(假称鮮日同和)함을 증명(證明)한 역적(逆賊)로 귀족대표 이완용 등 6인을 지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회보는 실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간접적인 기록으로만(극비문서, ‘독립운동에 관한 건’, 7,1919.3.6, ‘독립운동에 관한 건, 43,4.10,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ⅩⅩⅤ): 日本篇(7) 3.1運動 獨立宣言書檄文) 확인되고 있었는데, 이번에 실제로 그 존재를 확인하였다. 31일로 날짜는 표기되어 있으나, 지하신문들은 대부분 3.1일 이후 발행되었기 때문에 이후에 발행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규격은 가로 38.2cm, 세로27.2cm 크기이다.

 

경술국치 이후 총독부는 한국인이 발행하는 일간지를 모두 폐간하여 1910년대에는 한국인은 신문을 발행할 수 없었다. 19193·1일 이후의 지하신문 발행은 대안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독립운동의 실상을 알리고 독립사상을 고취시켜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부산시 관계자는 이번에 기증받은 사료들은 올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더욱 큰 의미를 가지는 사료로서 향후 독립운동사료 전문가들과 협의하여 그 가치를 명확히 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 자료들은 오는 31일부터 69일까지 부산근대역사관(중구 대청동)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되는 3·1운동 100주년기념 특별기획전 저항×2 3·1운동과 명정학교전시를 통해 일반시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