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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공지사항

학대아동서 첫 英흑인 판사로

부서명
보호담당
작성자
보호담당
작성일
2010-01-21
조회수
806
내용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를 겪은 학대피해아동은 5년후 절반이 중증 후유증을 앓는다고 합니다. 학대 후유증을 딛고 판사로 성장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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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첫 번째 흑인여성 판사인 콘스턴스 브리스코가 어린시절 학대를 극복하고 우뚝 선 이야기를 자전적 형식의 소설로 펴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브리스코가 어린 시절 가족들에게 불린 이름은 ‘클레어’. 어머니는 클레어에게 잠옷을 입히지 않고 시트도 없는 맨 매트리스에 재웠다.

야뇨증이 심해지자 클레어는 매일 저녁 어머니에게 맞았다.
밤에 오줌을 싸면 어떤 일을 당할지에 대한 경고였다.

클레어는 밤에 오줌을 싸는 것이 무서워서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지쳐 잠에 떨어지고 야뇨증 경보기 소리를 듣지 못했다.
경보기가 울리면 어머니가 달려와 젖은 옷과 시트를 모두 벗겨 내고 등을 마구 때렸다.

콘스턴스 브리스코의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오픈하우스)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도 모른 채 ‘클레어(clear)’라고 불리며 가족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저자가 영국 최초의 흑인 여성판사가 된 과정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클레어를 학대한 어머니는 계모가 아니라 그를 낳은 친모였다.
어머니는 손찌검에 그치지 않고 신발로, 벨트로, 회초리로 그를 때리기 시작했다.
오줌을 싸게 된다며 밥도, 마실 음료수도 주지 않는 일도 있었다.

그가 학교에서 찍은 사진의 구매용 견본을 보여주면 어머니는 “너는 정말 못 생겼으니 이런 사진을 돈 주고 사라고 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았고 심지어는 닭털 뽑는 일을 제대로 못 했다고 칼로 손목을 베기도 했다.

어머니뿐이 아니었다.
의붓아버지도 그를 추행하거나 폭행했다.
그때마다 그는 혼자서 사회복지국이나 법원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13살 때는 그만 남겨놓고 온 가족이 이사하기까지 했다.
그는 혼자서 돈을 벌어 갖가지 생필품을 사야 했다.

진학 과정에서도 어머니는 그에게 잔인했다.
대학까지 갈 생각이던 그는 어머니의 반대로 고교입학자격시험도 치르지 못했고 그가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했을 때조차 어머니는 장학금 신청 양식을 찢어버렸다.
“대학은 머리 좋은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가 자신의 출생증명서에 적힌 본명이 ‘클레어 브리스코’가 아니라 ‘콘스턴스 베벌리 브리스코’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대학에 진학하면서였다.

그런 그에게 희망이 돼준 사람은 그가 ‘K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코르힌스키 선생님이었다.
K선생님은 “이 세상에 너를 가로막을 사람은 단 한 명, 너뿐”이라고 얘기해주며 그를 격려했다.

이후 그는 법정변호사를 꿈꾸며 노력했고 결국 대학에 진학해 영국 최초의 흑인 여성판사가 됐다.

영국에서 이 책이 출간되고 베스트셀러에 오르자 저자의 어머니는 자신이 딸을 학대한 적이 없고 이 책은 순전히 지어낸 얘기라고 주장하면서 저자와 출판사를 비방죄로 고소했다.

하지만 재판은 저자의 승리로 끝났고 저자는 재판 이후에도 인터뷰를 통해 “절대로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