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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매 (3)

내용
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주 제 : 식품 안전

제 목 : 돌팔매 (3)


- 안중근의 외손녀, 황은주님 -

돌팔매란 무엇을 맞히려고 멀리 던지는 돌멩이를 뜻한다.
대학 철학을 공무하면서 중국의 현인인 공자의 후손에 대해서 전하는 바가 없다고 한다. 맞나 ?
여기는 한국이지 중국이 아니라서 상세하게 모르겠다고요 ?


안중근은 1879년 황해도 해주부에서 태어났다. 본은 순흥안씨.
안중근 의사(처 : 김아려) 의 유일한 생존 외손녀인 황은주님 (87세),
이화여대 기악과를 전공하고 미국에 있는 자식들과 떨어져 한국에 살고 있다.


안중근(처 : 김아려) 의 아버지는 안태훈씨, 안태훈씨는 부친 안인수씨의 삼남으로 부친이 공부를 시켜 안태훈씨를 진사에 합격을 시켰다. 안태훈씨의 처는 조마리아, 즉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다.
안중근은 안태훈씨의 장남으로 종교는 캐톨릭 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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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아래 안정근, 안공근의 동생이 있었다. 두 동생인 안정근과 안공근은
김구를 도와 독립운동의 최일선에서 활동했다.
김구의 장남인 김인과 안중근의 동생 안정근의 딸 안미생이 결혼하면서
두 집안은 더 돈독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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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2남 1녀를 두었으나 큰 아들은 6세때 의문사했다.
들째 아들 안준생이 친일파로 불리우는 안준생씨. 안중근이 죽인 이등박문의 아들에게 ‘ 망부를 대신해 속죄한다 ’ 고 사과를 하여 안준생씨는 평생 ‘ 변절자’ 의 시비에 말렸다.
안중근의 맏딸이 황은주님의 어머니, 안현생씨다.
* 안현생씨는 아버지 안중근의 하얼삔 의거로 서울 명동 수녀원에서 프랑스 신부의 보호 아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가족과 합류를 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황일청과 만나 결혼을 한다.

황일청은 안중근의 유일한 사위이며 황은주님의 아버지다. 안중근 의사의 유일한 생존의 외손녀(황은주님)가 ‘ 연금을 받지 않느냐 ’에서
아버지(황일청씨)에 대한 연금을 신청했더니 ‘독립운동 이후 행적이 불분명하다’ 며 기각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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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생씨 .................대구 효성여대 (현 카톨릭대)에서 불문학 교수로 지내다가 57세 고혈압으로 사망
임시정부에서 있던 이범석 장군 (초대 국무총리)이 황일청씨의 친구였다. 이범석 장군은 황일청씨가 죽은 소식을 듣고 부인을 보내어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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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주씨의 아버지인 황일청씨는 비명에 갔다. 해방 후(1945년 12월 3일) 광복군의 총에 맞아 죽었는데 범인은 중국 공안(=한국의 경찰과 같음)에 잡히면서 드러났다.
황일청씨는 신흥무관 학교(당시 이시영이 설립한 독립군 양성기관)를 나와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군무부 참사를 지냈다. 상해(상하이)의 임시정부가
- 상해(=상하이) 홍구공원(=홍커우 공원)에서의 윤봉길 의사의 의거(일본인에 폭탄투척)로 -
항주(= 항저우)로 옮기고 다시 중경(충칭)으로 옮겼다. 그러나 황일청씨 가족은 그곳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상해는 일본이 점령하고) 황일청씨는 일제에 체포되어 평양으로 압송이 되어 5년간 연금생활을 했다.
그런데 일제는 일본의 담당자를 중국 장쑤성 쉬저우 (강소성, 여주)에서의 거류민 단장으로 발령을 내자 황일청씨를 ‘ 조선인 교민회장’ 으로 데려갔다. 따라서 황은주님 가족도 쉬저우(서주)로 옮겨 갔다. 이들 가족은 1945년 8월 해방을 이곳에서 맞았다. 해방이 되자 일본에서 벗어난 조선 학병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귀국선을 기다리는 6개월 동안 황일청은 집 아래층에 교민 자녀를 위한 ‘ 서주 한국 중학교’를 열었으며 조선 학병들로 교사진을 꾸렸다.
한편 해방된 한국으로의 귀국선(귀국하는 배)을 서주 (쉬저우)에서 타기 위해 중경(충칭)에서 상해로 내려오던 40여명의 광복군과 조선학병이
이곳 서주(쉬저우)에서 만났다. 광복군은 자기 말을 따르라며 점령군처럼 행세를 하면서 황일청씨와 학병을 일본의 앞잡이로 보았다.
1945년 12월 3일 밤 10시 쯤, 황일청이 있는 방에서 ‘꽝’ 하는 굉음이 울렸다. 황일청의 머리에다 쏜 것이다. 황은주님이 1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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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1. 안중근 평전, 김삼웅 저, 시대의창, 2009년 1쪽 ∼79쪽
2. 안중근 불멸의 기억, 이수광 저, 추수밭, 2009년, 314쪽, 안중근 연보
3. 조선일보, 2015. 11. 23일(월), A31면, 최보식이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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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 11. 23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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