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시민게시판

시민게시판

보안과 관련되어, 홈페이지에 접속하신 후 화면이동없이 30분이 경과되면 자동으로 로그아웃되오니 작업시간에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게시판 글쓰기를 하실때, 세션 종료로 작성하신 글이 모두 삭제 될 수 있으니 반드시 다른곳에서 먼저 글을 작성 하신 후 복사 하여 붙여넣기 해서 글쓰기를 완료 하시기 바랍니다.

  • 이 게시판은 자유롭게 의견을 게시 할 수 있는 열린공간이며, 자율과 책임이 공존하는 사이버문화 정착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120-통합민원신청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상업성 광고,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 반복적 게시물, 개인정보 등은 관리자에 의해 통보 없이 삭제 될 수 있으며, 특히, 게시물을 통한 명예훼손 및 주민등록번호, 계좌번호,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유출은 법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으며, 불법유해정보를 게시하거나 배포하면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벌칙(징역 또는 벌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3월은 항일운동의 달

내용
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주 제 : 식품 안전

제 목 : 3월은 항일운동의 달


3월은 1919년 한국이 일제치하에서 항일 운동을 한 날이다.
3.1 운동이 그것이다.
이를 계기로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고 한다.

................................................................,,,,,,....
유관순賞위원회 (위원장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015. 3. 20일 유관순 열사의 모교인 서울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제14회 유관순상 시상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 2015. 3. 21(토), 충남도청 홈페이지 -
...........................................................................

기성회비의 합법화와 관련하여 제안자의 학력도 살펴본다.

첨부
1. 3. 26일은 안중근 순국일
2. 제안자 학력


------------------ [ 첨부 1 ] ----------------------

제 목 : 오늘 3월 26일은 안중근 순국일


10월 26일은 안중근이 일본 이토오히로부미(이등박문)를 총살하여 죽게 만든 날이다. 장소는 하얼삔.

안중근은 이유없이 일본인의 간부급을 죽인 것인가 ? 아니다. 세계의 추세(제국주의)에 따라 일본이 호시탐탐 조선을 넘보았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명성왕후(민왕후)를 죽인 것이 그 대표적인 하나이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일본의 이등박문(이토오히로부미)을 죽이고
이듬해인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
1910년 3월 26일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이후 10년 후인 1919년 1. 21일에는 또 고종황제가 승하했다.
자살이라고요?
갑작스런 죽음으로 독살설이 퍼졌고 이것은 3.1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 강점기 36년 동안
우리민족은 갖은 압박을 받았지만 해방이 되었다.
주위에서 살펴보면 윤씨 성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는 풍이라는 유전성이 있는 병이 있는가 하면 본태성 고혈압(이씨)이란 병도 있고
또 액취증, 언챙이도 있었다. 본태성 고혈압과 언챙이는 유전성의 병이라고 하나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일점 강점기가 낳은 병이라고 보여진다.

안중근 의사의 글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은
一日不讀書 口中生 荊棘 (1일 불독서 구중생 형극) 이란 글귀이다.
그 뜻은 하루라도 독서를 않으면 입에 가시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제안자는 상기의 글은 인간과 동물은 구분되어져야 함을 의미하는 글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동물은 자기의 자식을 잡아먹고 또 어미를 잡아먹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는 근년 안중근이 순국한 날(3월 26일)에 서해안에서 천안함 폭침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다고 했다 ( 이명박 정부 - 김관진 국방부 장관 )
안중근의 거룩한 그런 정신이 한국민의 가슴에 살아있었으므로 한국은 독립이 되고 건국이 된 것이었다. 제 2건국(김대중 정부에서 사용)은
남북이 통일이 되면 완전한 건국이 될 것이란 의미로 들린다.
국민교육헌장에도 통일조국의 앞날을 내다본다고 하였는데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에는 ‘통일기반 조성’ 이 마지막에 들어 있었다.

제안자가 중국 연변에서 조선족 등이 지은 참깨로써 참기름을 짜서 한국민도 먹고 북한 주민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보안법에 위반이 되는 것인지. 외교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므로.....
근년 보안법은 페지해서는 안된다 는 소리가 자주 들리어서 어떤 법인지 법령집에서 꼭 읽어 보려고 했으나 아직 보지를 못했다
상기의 이런 교육도 전직의 국정책임자들이 민주시민교육으로 확실하게 국민들에게 교육을 시켜주고 주지시켜 주어야 한다.

제 2건국, 참기름 나누어 먹기는 사치스런 꿈에 불과한 것이 될런지........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하던데. 제안자가 너무 생각이 많은 것 같다.

-- 2013. 3. 26(화), 2013. 6. 8(토)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1999. 10. 20, 제안서 [한국전통식품 및 전통양념 제조와 유통에 다른 정부 규제에 관한 고찰과 그 발전방향- 부산광역시를 중심으로 ] , 민주시민교육 282쪽,
- 2009. 10. 22일, 조선일보, 구태훈 성균관대 교수, 허얼삔의 총성
- 2009. 10. 23일, 한겨레, 노형석 기자, 서예, 안중근 특별전
- 2009. 10. 24, 조선일보, 전봉관 KAIST 교수,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
- 2009. 10. 26, 조선일보, 이위재 기자, 안중근의 후손이란 것에 긍지, 책임감 느껴
- 2009. 10. 27, 조선일보,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 안중근 영웅의 왕관을 손에 들고.....
- 2009. 11. 9,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다른 평화론의 차이 ?
- 2013. 6. 7(금), 조선일보, 이태훈 기자
.
.
.
.
.
.

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제 목 : 식품안전 시기 상조인가 ?

태화가 뜸뜸이 보인다.
부산의 향토백화점인 이전의 태화백화점 ,
울산의 태화강
태화고무장갑 등등


1919. 1. 21, 덕수궁 함녕전에서 고종황제가 승하했다. 갑작스런 죽음,
독살설은 전국으로 퍼졌고 이는 곧 3. 1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는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모였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들은 * 태화관에서 비밀리에 독립선언식(민족대표 29명 참석)을 가진 뒤 일제 당국에 자수하여 구금되었다.
3월 1일 탑골공원 독립선언서 낭독이 끝나자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시내를 행진했다. 시위운동은 전국에서 일어났으며 해외동포들도 참여했다.

-- 송찬섭, 김남윤, 윤대원 공저 「한국사의 이해」, 한국통신대학교 출판부, 2008년 333쪽 --

-- 2009. 8. 15(토), 조선일보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태화관 - 서울 종로 인사동 소재의 ‘태화관’ 이라는 음식점에서
하루 전인 2월 28일 저녁, 비밀리에 독립선언식(33인 중 29인 참석)을
가진 뒤 일제 당국에 자수하여 구금되었다. 즉 탑골공원에서는 불참.


1919년 3.1 독립 운동
==================

1919년 2. 8일 일본 동경(=도쿄)의 조선 YMCA 강단에서 일본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대한독립선언서를 채택했다 (2.8 독립선언)
민족자결주의와 파리 강화 회의에 고무된 이들은 여러차례 비밀회의를 거쳐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한 뒤 민족대회소집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이날 유학생 총회를 열고 독립선언식을 가졌던 것이다.
같은 무렵 나라 안에서도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 나라 안팎에 독립을 선언하여 독립을 이루려는 움직임이 은밀히 진행되었다.
1919년 1월부터 천도교, 기독교, 불교 그리고 학생 대표들이 비밀리에 모임을 가지고 3.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과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약속했다.
3.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함께 하기로 한 민족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학생 등 시민들이 중심이 되었다.
( 중간 줄임 )
1919. 3. 22일 철도 기관수 차금봉은 잡역 노동자와 부근의 전차차장, 공장 직공 등 700 ~800여명을 이끌고 만리동에서 독립문까지 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그는 27일에도 만철 경성관리국 조선인 노동자의 시위를 조직하고 서울역 앞에서 조선노동대회 조선독립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파업시위를 주도했다.
( 이하 줄임 )

-- 송찬섭, 김남윤, 윤대원 공저 [ 한국사의 이해]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부, 2008년 333쪽 ~335쪽 --
.
.
.
.
---------------- [ 첨 부 2 ] ----------------------

제안자 학력
==========

0. 학력. 경력

1966. 2. 28. 청룡국민학교 6년 졸업 (35회)
1966. 2. 28. 청룡국민학교 6년 정근
1966. 2. 28. 청룡국민학교 우등상 수상
...................................
1966. 2. 28. 청룡국민학교 기성회장상 수상
.........................................


1969. 2. 24. 동래여자중학교 3년 졸업
1969. 2. 24. 동래여자중학교 3년 개근상 수상

1969 3. 1.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입학
1972. 2. 25.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3년 졸업 (18회)
1972. 2. 25.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3년 개근상 수상

1980. 3. 20 ~ 1982. 2. 27.
서울대학교 부설, 한국방송통신대학 가정학과 2년 전문과정 졸업(9회)
1982. 3. 2. 한국방송통신대학 4년과정 가정학과 편입
1985. 2. 28. 한국방송통신대학 가정학과 4년 졸업 (가정학사 1회)

1987. 3. 2 ~ 1989. 8. 26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수료
1990. 2. 24.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15회)

1999. 3. 2 ~ 2003. 8. 22.
경성대학교 대학원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8. 3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과 2학년 편입
2012. 2. 22.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과(식품영양학전공 : 식품영양학사)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