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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공이 미술에서 세종대왕이라면 안차홍은 임꺽정 혹은 홍길동이다

내용
과공이 미술에서 세종대왕이라면 안차홍은 임꺽정 혹은 홍길동이다

자료제공 : 미래연구소 소장 그리스 정 평론 글 옮김

사실 안차홍 미술수준은 민중미술이 아닌 깡패미술 비스무래하다.
사실 한국의 대부분 미술기자들이 미술서계에 대해 뭘 제대로 아나?
미술기자란 게 도우미로 그저 농부노릇처럼 살갑고 아름다운 건 사실이지만 선견지명에 좀 눈이 어두워.
원래 개가 되면 눈이 좀 멍충하지.
어떤 그림이나 어떤 퍼프먼스를 해도 안차홍은 미술의 서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안차홍 宗의 뿌리는 동아고등이 최종학력이다.
외국의 이름난 미술대학에 유학생이 콩나물시루의 콩나물처럼 많고, 서울대 출신의 교수와 작가가 도로의 가로수처럼 많고, 중공국의 인해전술의 6.25시절처럼 많고많은 홍익대를 위시하여 그 밀림에서 애개개 부산자갈치 시장을 헤매는 안차홍의 학력의 전부는 부산 동아고등이다.
하긴 뭐 외국에서 대사나 영사의 자식으로 3년을 채우면 예비고사 340점 만점에 체력 18점 맞는 것 기본에다 200점의 가산점이 더해져 국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진골의 자식은 몰라도 안차홍은 성골도 진골도 아니다.
그야말로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그림을 팔 수 있는 비즈니스의 자본주의 베일을 아는 자다.
비즈니스란 그렇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을 바치라가 비즈니스다.
사실 안차홍의 흔적은 너무 상처 투성이다.
과향은 지뿔도 몰라서 내가 왕이다하는 교만으로 인해 문학이 상처투성이로 비쳐져 염홍경(영남대교수. 창비사 사장 그리고 이사겸 편집위원.문학이사 등 )께 1993년도에 과향의 저서를 바쳤을 때 다음날에 마주한 자리에서 “옹이가 너무 많아”
딱 이 한 말씀처럼
안차홍은 정말 미술에서 옹이가 민중미술 그 아래로 너무 많다. 그러나 이 하나는 있다.
정말 절실한 삶을 살아온 게 미술에서 그의 가치다.
과향이 미술인 회의를 무장해제하였던 적이 어린 날에 있었다.
거기에는 멍멍 또랭이로 최지욱(추계대 서양화 교수)이라는 풍경짜집기하는 그림을 그리는 자가 부엌칼로 과성의 등어리를 쪼우려는 언어를 쓴 적이 있었다.
하여간에 미술멍멍은 손이 있으면 큰 일 나겠어.
사실 한국 현대미술에서 안차홍은 한국미술의 유물은 사실이다.
안차홍의 그림 특징을 하나로 말하라면 ‘복수에 찬 그림이 80% 이상이다’라고 할 수 있다.
부산미술이라는 자체가 바닷바람 미술이다.
풍랑의 미술이다.
미술은 천상의 마음이요 소리인 만치 그 본질은 너무도 고귀하다. 그런데 서푼어치 미술을 알면 고마 멍멍미술이 되는 수가 흔하다.
그 원인은 인문학에 너무 무지막지한 사막의 메마른 보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차홍은 인덕이 있는 조상덕을 톡톡히 보고 있음을 알 수 있ㄷ가.
그는 촌에서 바닷바람 쏘이며 확실히 미술에서 프로는 프로다.
안차홍은 신돈처럼 현장을 문화로 살아오지 못하고 현장을 몰랐던 그 매너 없는 게 미술문화에서 미술멍멍으로는 너무 잘 소통되더라는 거다.
이제 안차홍은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방법을 과향 빰치게 잘 알고 그것을 현실화했다.
서울에서 문화운동을 주도하다 책임형사들의 감시에 어린 몸인 23살에 대구까지 피신했다. 감히 과공이 머무는 대구에까지 와서 초정전시를 하게 된 것이다.
안차홍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홍길동처럼 미술에서 서출의 신분을 벗어날 수가 없다.
육손이 위대한 것은 천기를 알기 때문이다.
육손은 ‘과장의 말을 듣지 않으면 처형한다’는 천도를 잠시 쓸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었다. 시퍼런 단두대 앞에서 어느 누가 감히 거역을 한다는 말인가.


계속 글 더 두고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