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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충환(미술평론가.영남대 미대 서양 생)의 미술평론 글을 논할까한다 이스탄불 소장 그리스 정

내용
고충환(미술평론가.영남대 미대 서양 생)의 미술평론 글을 논할까한다 이스탄불 소장 그리스 정

미술연구소 이스탄불 소장 : 그리스 정

미술에서도 Fine art 는 천상의 언어다. 천상의 언어에서 언어는 천상을 윤회한다.


고충환(미술평론가. 영남대 미술대 서양화 생)의 미술평론 글을 논할까한다.
고창환의 미술평론이 왜 서울거리에서 잘 소통될 수 있었는가를 짚어본다.
과향은 고창환이 미술평론에서 아기일적에 1990년대에 이미 서울미술문화를 정리하였다.
풍경짜집기의 최 ㅁ 욱(신촌 옆 추계대 미대 서양화 전공교수)은 아주 교활한 주방칼 언어로 과공의 등을 쪼우려했다.
하여간 미술 멍멍은 다스리지 않으면 천상도 안심할 수 없다함이 참말임을 갔다 오니 알겠다.

고창환(미술평론가)의 미술평론 글을 논할까한다. 고창환은 참 훌륭하다.
문제는 영남대 미술의 멍멍들이 꿈틀거린다는 것이다.
하기사 두더지가 아무리 땅을 파도 농본사회에서는 문제였지만
문제 될 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고창환이 미술 평 중에 장ㅁ일(영남대 미술대교수. 한국화)의 그림에 대해 쓴 ‘땅에서 놀자’ 미술 평 글을 보면 고창환이 아직도 미술평에 얼마나 젖비린내가 가지지 않은가를 잘 알 수 가 있다.
한국에서 내가낸데하는 서울대학교에서 서울대학 미술대학을 나온 거대한 마패들이 미술평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는 것은 미술이라는 밀림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 그렇다.
서울대학에서 파인아트를 전공해도 감히 미술평론에는 밀림을 들어가듯이 조심이 되는 판에 고창환은 뭘 그리 제대로 알아서 일까.
거기에는 문학이라는 분지가 동산처럼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이자 허상의 세계도 벗겨지면 유리의 투명성이 존재하게 된다.

미술멍멍이 끙끙거리는 것도 짖는 거다.
언제나 호기가 닥쳐오기만 오면 그 끙끙거림의 짖음이 콱 물어뜯게 된다.
고창환은 영남대 미술대 서양화를 졸업한 만치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언제나 가제는 게편이다.
또 게는 개 편이다.
끼리끼리 놀기 작난인 게 인생의 삶이다.
게는 옆으로 긴다.
미술멍멍 언어도 바람을 빼면 피식피식 옆으로 센다.
무지개는 옆으로 둥글게 뻗어서 참 아름답다.
하늘의 별도 인간의 가슴에 둥글게 찾아와서 영혼스러운 것이다.
대구chon무느학에서 ‘미래에 대한 기억’이란 걸 타이틀로 한 적을 본 적이 있다.
‘색칠과 먹칠’전 처럼 언어와 색이 만나 히히거리면 언제나 색은 합칠수록 검게 되고 빛은 합칠수록 투명해진다처럼이 된다.
촌언어가 문학적으로 은근히 미술멍멍에 창과 화살을 주지만 현대사회에선 원시인이 창과 방패 든 꼴 이상은 아니다.

고창환(미술평론가)의 미술평론 글을 논할까한다.
정리란 것은 반듯해야 띠바리가 난다.
사실 어린 양들을 다스림은 부드러움을 따라갈 향기는 없다. 오랜 세월 참 다행이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다는 구절처럼
아들을 아들이라 부를 수 없고 동생을 동생이라 부를 수 없는 게 천상의 언어이다.

정리란 것은 반듯해야 띠바리가 난다.
띠바리를 나도록 해도 그리 죄 될 것이 없다는 그 말을 가슴에 새기되
섣부르게는 길을 가면 아니 된다.

꽃은 바람에 피는 것이다.
미술의 길은 천 년은 가야 보인다는 말이 참말인 것 같다.

발등에 불을 떨어지게 할려면 본드로 접착하되 손등에도 놓고 개 뒷구멍에도 놓아야 하는 법이다.


의견
미술연구소 이스탄불 자료3실 제공

고충환은 영남대 미대 서양화 생이다.
고충환의 부인은 시인이다.

(2014
네덜란드에가면 물위에 집이 많다.
물에 말뚝을 박은 게 아니라
물위를 떠 다느는 집이다.
고충환의 미술평론은 인문학이 지지갈갈 너무 얕은 뿌리가 너무 얕은 히말리야시다의 뿌리다.

(2014-
뿌리가 너무 얕은 히말리야시다의 뿌리다.
마치 인문학에 너무 무지한 김ㅁ득(영남대 미대 교수.동양화. 서울대 미대 출산)이라는 과공의 칼럼처럼.
그렇다.

(2014
미술연구소 이스탄불 자료3실 제공

벌집을 건들면 벌통의 벌이 다 공격자세를 취한다.
미술 멍멍들의 엉성스러운 늪지대에 들어간다는 것은

(2014
사막의 횡단과 정글에 간 것이나 갔다.파나마 운하는 황열을 옮기는 모기를 몽조리 잡아서 성공했다.

미술멍멍에 레이저 메스를 사용하는 것은 하늘의 허락이 두 번 있어야 한다.
하상의 허락을 거역하다 하에까지 갔다 왔다.
3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