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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역사

내용

작성자 : 안정은

제 목 : 거꾸로 읽는 역사


21세기 단상(短想)
~~~~~~~~~~~~~~~~~~~
경남 거창군 탐방
거창군에는 양민학살이 있었다고 한다.

부산시 공직자로 근무하면서 같은 배경에서
호남사람이 불평등의 조건에서 파면되어 나가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 부산 동래구 청룡동 사무소, 주민등록증 분실사고, 호남이 고향인 김영구씨 - 박영수 부산시장, 옥성선 동래구청장 당시(1976년),
이후 박영수 시장님 부인이 돌아가셔서
동래구청 여직원들이 온천1동 시장관사에 문상을 간 기억이 난다 >

해경함장으로 1974년(5월 28일), 육영수 여사께서 돌아가신 해,
동해안(속초 부근)에서 실종된 나의 아저씨, * 안정열씨.
가족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용감하셨다.
조달청에 다니는 여직원과 결혼 후 자녀 둘을 낳고 화목하게 지내시다가 근무 중 바다에서 실종된 것이었다.
“금강산도 가고 이산가족도 만나는데 영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아마 그 때 죽었는가 보다...” 고 1년 전에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이었다.
당시에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신문에 대문짝 같이 나왔었다.

- 내가 한국방송통신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간부로 일하고 졸업하기 한해 전(1983년 10월), 해외연수로 동남아시아에 나가기 전,
아웅산 폭발사건으로 한국의 각료가 대부분 죽었다. 홍콩의 잡지와 한국 국내의 신문기사가 이 사건을 대서특필 하였다 (정부 제안서 42쪽 ~ 43쪽 언급)

“골든 카드가 비싸다”했지만 제안자는 그리하지를 못하고 있다.
제안자는 제안과 관련하여
각시도의 자유 게시판의 글을 올릴 때,
특히 광주, 제주의 게시판이 열리지를 않으면 용서하지 않는다.
문민정부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하고 나서야 통일을 할 수 있다”고 귓전을 스치던 그 말의 의미가 요즈음 어렴풋하게 이해가 된다.

-- 중간 생략 --

문세광이 일본의 조총련계로 1974년 광복절 식상에서 육여사를 쏘았다.
그래서 이후 1988년 금정구청 가정복지과장인 박재춘과장이 금청구청 개청식 날, 자신이 모셔 온 꽃선생(문00)이 꽃꽂이한 공금 30만원을 중간에서 잘라 먹은 것일까?
나의 이종언니들 중에서 문씨 집안에 시집 간 이종언니(김00)가 가장 먼저 죽었다(부산 부민 병원에서). 2008년, 65세도 넘기지 못하고.
또 나의 초등교 동기생 문영애에게 최근에 비만이 와서 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는 제국주의를 편들지 않는다. 그 당시 그것이 대세였다고 하더라도...
영국에 유학가는 사람보다 미국에 유학가는 사람이 많다.
인간은 정의를 택한다. 공직자들도 인간으로서 행정의 운영에서 정의를 택했지만 택한 사람들은 퇴직을 하고 선택받은 남은 사람들이 멋모르고 희생이 되었으니 요즈음 “공직자들은 인간을 도구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경상도에서는 하수 도랑을 청소하는 것을 “도구 친다”고 했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저 무례한 망나니들은 두고만 볼 것인가 ?

“골든 카드”를 버린 제안자는
원고료도 없는 전자게시판에서
회한 (回恨)의 편지를 적는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안정열씨 ------ 해양경찰관으로 근무한 나의 오촌 아저씨다.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동해안(속초부근)........ 나의 친척 아저씨, 안동해씨에게 (젊은 나이에) 직장암이 와서 수술하고 항문을 밖으로 내었다. 나의 어머니가 직장암으로 진단 받기 이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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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무부 장관,

홍성철씨, 서울대 출신 (1973년 12월 - 1974년 8월)
→ 장관 박경원 (전남 영광 출신) : 1974년 8월 -1975년 12월

1974. 5. 28일 : 해경함장, 안정열씨 근무 중 동해 속초 부근에서 함포 사격으로 실종

1974. 8. 15일 광복절 식장에서 영부인 육여사, 일본 조총련계 문세광의 총에 의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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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안정은 (제안자)

제 목 : 제안자는 팔방미인(?) 아니다.


글쓴이는 1등할 생각은 않고 산다. 그래서 경쟁에서는 편하다.
왜냐 ?
다음에서 그러하다

< 다 음 >
국립대학도 순위가 있는 한국에선
정상궤도를 걷는 사람이라면
인생의 힘든 시기가 고삼(고등학교 3학년 시기)이다.

본인이 자란 시기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
중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및 대학에 입시로 입학한 시기이다. 학생 때에는 공부밖에 모르고 자랐다.
초등학교 때 동생 둘과 함께 홍역을 앓아 어머니가 “학교에 가면 죽는다”(홍역은 전염병?)고 하여 하루를 결석하는 날, 옆집에 사는 소꿉동무이고 같은 반이었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 올 때까지 돌담으로 쌓은 그녀의 문 앞에서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따뜻한 햇살이 내려쪼이던 3,4월쯤 되었는가 ?
그녀의 대문에는 큰 가죽나무가 서 있었다. (제안서 내용 - 이로써 여동생 1명이 죽었다)

동래여자중학교(이사장 : 오**)에 진학하고 나서 당해 학교의 음악선생님 한테 각암이 와서 앓고 있는데 (학생들은 전혀 모르고)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학교 우등생 몇몇을 데리고 과외수업(영어, 수학 지도)을 하였다. 그 학생들이 이후 성적이 잘 나왔던지 시험을 치고 영화관에 함께 가서 당해 학교의 규율 선생님한테 (체육 선생님- 남, 이**)걸리었다.
모두 한반에서 2,3등하는 학생들이 말이다. 그에다 - 나처럼- 성실하고 착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여학생들이었다. (자기 자랑해서 미안합니다)
본인은 과외수업을 받지 않았다. 과외수업을 권한 친구도 없었지만.......
그런데 그 수학선생님(배**)은 당시 수업시간만 되면 화를 잔뜩 내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큰 눈을 번뜩이면서......( 졸업하고서 김봉진 음악선생님이 돌아가시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이해가 되었지만....)


그리해서인지 학교 당국에서 3학년 때 모의 고사(전과목을 시험 범위 없이 배운 범위에서 시험을 출제) 를 한번 실시하였다. 그리고 나서 시험결과는 당사자 학생에게만 알려 주었다. 7등(총 480여명),
이후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박**)도 선생님이 가르친 곳에서만 시험을 내고 시험 결과를 가르쳐 주었다. 국어점수가 전교에서 1등,
그 국어선생님은 부산의 모 사립대학교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는 말을 10여년 전쯤에 들었다.
(참! 초등국교에서는 나는 반에서 1등을 하였다 -- 담임 선생님 : 오만수)

이후 치루어진 예비고사는
대학을 줄 세우고 또 그 학교나 학과를 지망한 학생들이 서로 몰려 억울하게 낙방하여 허송세월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였을 것이다.

재학생들을 1년에 한번쯤
전국에서 같은 시험을 출제하여 모의고사를 치면
학교와의 성적차이(당해 학교의 평균점수)를 가늠해 볼 수 있고
당해 학교 학생들과의 성적 순위는
당해 학년의 학생 전체에서 자신의 성적을 비교하여 가늠해 볼 수 있어서 좋다. (평균 등은 당해 학교에서 산출 )

그리고 대학은 계열학과별로 지난해에 입학한 학생들의 점수를 입시 전에 공개하면 학생들이 재수 등으로 허송세월하는 것도 줄일 수 있지만
긴 인생의 여정(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므로)에서 보면 재수, 삼수가 나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대학교 서울대학교, 한국대학교 부산대학교, 한국대학교 강원대학교.....라고 개칭하여도 죽기 살기로 서울대학교에만 가려고 할 것인가 ?
그리하자면 대학교별 지원도 공평해야 한다. 그리해야 부산사람이 서울의 대학에 유학(?)을 가는 학생이 줄어들 것이다.

제안자는 집안에서 커오는 학생들에게 이른다.
- 사람이 살아가면서 질병, 경제난 등으로 뜻밖의 고통(불가항력)도 없지 않지만 -
자신이 노력할 수 있는 공부 등에서는 고삼이 가장 힘든 시기라고 이른다.
아니고 결혼이라고요? 출산이라고요? 자신의 임종이라고요 ?

스님들은 임종이라고 말한다.



학교 우등생이 사회에서 열등생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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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1973년 초 부산시 지방행정직 9급공무원 공개경쟁시험에 응시 합격하여 당해연도인 1973년 6. 5일자 발령을 받아 공직에 들어와서 (100명쯤 중 여성이 6명) 고향의 동사무소인 청룡동 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2,3년 후 부산시 지방 공무원 교육원에 <신규 실무자반> 교육을 받았다.
영어, 수학의 공부가 아니다.
수교 후, 시험에서 100명 쯤의 교육원생 중 3등을 수상하였다.
이후 2년 후, <행정 실무자반>에서 수교 후, 시험에서 300명쯤에서 성적이 8등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고향인 금정구청이 동래구청에서 분구되어 금정구청에서 부녀복지계장(직무대리)을 하였다. 최연소 계장이였다. (전문직인 건축직 공무원인 건축계장 제외)


진실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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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삼은 인생에서 자신을 이겨야 하는 가장 어려운 시기이다.

2. 공부하기 싫지 않다면 대입에서 삼수, 사수도 말리지 마라 !

3. 부지런하지 않고서 얻을 생각을 말아라 ! (= 그래야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건전한 사회가 된다)

4. 임종이 가장 어려운 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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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문헌 >

제안서 「한국 전통식품 및 전통양념(조미료)제조와 유통에 따른 정부 규제에 관한 고찰과 그 발전 방향- 부산광역시를 중심으로 」

- 서문 (1쪽),
- 제안서 ( 5쪽 - 이론적 배경),
- 제안서 ( 274쪽 - 식품전문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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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 7. 17(화) , 2013. 2. 12(화)

보건복지부(장관 : 임채민 ) > 참여 > 자유 게시판
식품의약품 안전처 (장관 : 이희성) > 국민 광장 > 여론 광장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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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장 박영수 : 1971. 6. 12 ~ 1977. 7. 6

1973년 6. 5일 : 청룡동 사무소 채용 근무

1974. 5. 28일 : 오촌 아저씨, 해경 함장 안정열씨, 동해안 속초에서 근무 중 함포사격으로 실종

1974. 8. 15일 :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광복절 시장에서 총포 사망

1979년 10. 26일 : 박정희 대통령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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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보건복지부(장관 : 문형표) > 참여 > 자유 게시판
부산시청(시장 : 허남식) > 시민참여 > 시민 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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