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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느창홍 기교의 늪에서 파닥거리다 소림문학연구소 소장 : 그리스 정

내용
아느창홍 기교의 늪에서 파닥거리다 소림문학연구소 소장 : 그리스 정

소림문학연구소 소장 : 그리스 정

<얼굴>이란 주제로 개인전 23회를 맞는 화가 앤층홍의 이번 전시는
앤층홍의 교만을 더욱 배부르게 할 수도 있는 자리다.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문제로 반전될 소지가 있는 것이면 그건 전투다.
전투에 임하기 전에 한 번도 긴장을 느끼지 않은 적은 없다.
적을 앞에 두고 히히거릴 만큼의 큰 그릇이 되지 못함을 나 자신은 잘 안다.
그러나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 나는 늘 아무런 감정도 느끼질 못한다.
그냥 단칼에 승부는 결정 나고 만다.
열에 아홉은 진검승부로 생사를 내 손에서 결정지어 버린다.
그 중에 열에 하나 혹은 서른에 한 번쯤은 나의 분신이 돌부처처럼 시시비비 없이
깨끗이 그 상태에 승복하고 만다.
나는 이기지 말아야 할 곳은 절대로 승리하지 않는다.
즉 어리석게 교만하지 않는다.
나보다 잘 났고 못 났음에 대하여 우열을 가리려 한 적은 없다.
내가 남보다 잘 나야 얼마나 잘 났으며,내가 남보다 못 하다고 한들 얼마나 차이 나게 못 할까?
흔히 오십보백보라고, 끝없이 너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이라면,
어차피 욕망과 허구의 굴레를 벗어나 맑은 영혼으로 존재하기에는 다 거짓인 것을
나는 때로 그 어떤 인간의 영혼도 내 저울로 근량을 측정할 수 있다.
미술이란 깃발아래 작그라는 인간들의 영혼을 내 저울에 올려 본다.
한국 땅에서 한국작그-
여기서는 미술인-라는 값들의 영혼이 내 저울에서 추하지 않은 모습이 몇이나 되었던가?
물질을 잉태시키는 이상, 속물적 인간의 본성을 과연 깨치고 초탈할 자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웬만한 미술작그(작그라고 쓰고 싶어 안달하니까)들은 내 손에 잡으면 한줌의 모래이상은 아니다.
어쨌거나 미술은 욕망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 욕망을 넘어 초자연이 될 수도, 초인 류가 될 수도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안다. 낙락장송 큰 나무도 깎아야만 동양되네, 라는
국민가사처럼 자연과 인간의 심성을 인간의 힘으로 옮아 놓는 일이 인간의 위대한 의지임도 알고 있다.
앤층홍의 <얼굴>이란 미술전시회는 일종의 소적인 맛이 남는다.
우리 일상에서 이미 너무도 속물적 영화물이나 만화물로 홍수를 이룬 작업에 불과한
그 작업들은 앤층홍의 사회 배반적인 교만을 여지없이 들어낸 전시가 아닐 수 없다.
앤층홍의 초기그림들을 몹시도 고뇌적인 체 하지만 사실은 너무 매란스럽다.
즉 앤층홍은 이미 인품으로 예술을 말할 수준과는 거리가 먼 너무도 배타적인 독한 사고를 연결하게 된다.
여기서 앤층홍은 따스함이란 전혀 없는 너무 차갑기만 한 사회를 희롱하는 자세를 갖는다.
앤층홍은 이것이다 하는 문제의식이 없다.
수백 년을 쌓고 지키고 더욱 튼튼히 한 성벽도 칭기즈 칸 말발굽아래 순식간에 적의 수중에 넘어가듯이
앤층홍의 미술이 뭐 대단할 것 같지만 전혀 그러하질 못하다.
국내용으로 어느 정도 먹힐지는 몰라도 앤층홍의 미술이 세계적으로 뻗어 나갈 수준은 어림도 없다.
그 정도의 상식적 그림만들기로 세계에서 이름을 얻는 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스포츠얘기는 질색이지만 한 가지 하고 넘어가자.
히들그라는 유명축구감독이 월드컵 대표 팀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4강 신화를 이루었다. 이 때 이등국이란 초일류선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등국은 자기 잘난 맛에 히들그감독에게 밉게 보인 죄로 올림픽에 출천 할 수 없었다.
내가 알기로 그 당시 한국에서 제일 뛰어난 축구선수가 이등국으로 알았는데 결국 그는 국내용으로 전락하고 만다.
다시 2006년, 이등국은 다리수술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는 운명이 된다나 .
히들그에 있어서 이등국은 그리 아쉽지를 않다.
그의 능력으론 웬만한 수준의 선수면 이등국 이상으로 실력을 키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등국은 올챙이라면 히들그는 고양이다.
올챙이 알이 맛있으면 후루룩 삼키면 된다.
정감가와 미술과의 관계는 희딩크와 이등국의 관계를 넘어선다.
정감가는 미술에 그 어떤 인간에게도 그리 아쉬울 필요가 없다.
물론 그의 주위에 포진한 우정과 혹은 스승과 제자사이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감가는 절대로 미술 하는 씨들 혹은 양들에 대해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다.
언제나 관계는 아름답고 잘 정돈되어 있다.
정감가는 예의에 어긋난 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잘 가질 않으며
천바그하고 멍지하며 교활한 것을 질색으로 알며 살아온 것이다.
앤층홍의 미술은 진정한 진실이 없다. 전부 속임수에 불과한 일상이 나열되어 있다.
도대체 앤층홍 수준의 미술이 뭐 그리 대단할 수 있을까?
텅의 작그로 통하는 앤층홍이 하도 텅을 말하니까 필자도 텅 얘기를 잠시 해 보자.
텅을 설명하면 너무 길다.
모든 음식이 섭취되어 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그 과정은 참으로 신비롭기 그지없다.
음식물 섭취 속에는 온갖 미네랄과 비타민 단백질 탄수화물 무기물 영양소가 얼마나 그득한가?
그 영양소가 식도로부터 위와 창자를 거쳐 가는 동안 수많은 공장에서 분리되고 배출되어
그리고 그 영양소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된다.
텅 하나를 설명하는데 책 열다섯 권을 만들 수 있음은 당연하듯이
흔히 그 어떤 미술, 별 거도 아닌 그림들 가지고 말 만들려고 하면 그야 당연하게 책 몇 권을 만들지 않겠나?
앤층홍은 잘 안다. 즉 자신의 미술도 일명 텅 수준을 비하함을
그는 그것 하나만 봐도 미술을 꿰뚫어 보는 눈이 보통 아니다.
과거 경제성장에 허덕이는 시대에는 미술이 신비스런 세계임은 사실이었다.
인간은 물질에 몹시 약하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 자가용을 타고 다닐 때만 하여도 그랬다. 사람들은 그리 자가용을 부러워하였다.
그림이란 물질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별로인 화가들이 그림 몇 점 그리는데도 원시적인 방법으로 끙끙거리며 허덕이다 보니,
그림 생산이 엉금엉금 기어가는 상황이었다.
그 중에서 머리가 약간 잘 돌아가는 몇 몇은 인기를 타고 그림을 쉽게 쉽게 그리는 방법을 찾아
그림을 잘 풀어 제법 돈을 거금으로 움켜쥐었다.
앤층홍의 그림이 탄력 있는 노력의 대가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큰 생각으로 본다면 앤층홍의 그림이 뭘 대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앤층홍은 하나의 그저 생각이 조금 깊고 무자비한 모순의 일상을 엄청 예리하게 현실로 그린 화가일 따름이다.
어떤 멍청한 낙지인간이 말하더군. "앤층홍화백이 민중미술 화가가 아님은 누구나 안다"고,
꼴에 앤층홍 편을 든다고 회칼 한번 휘둘렀는데
그래 앤층홍이 80년대 화가라면서 민중미술을 피해 갔다. 그 얼마나 치욕적인 말인 줄 아니?
그렇다고 백남주처럼 서구 인간들의 합리적인 머리 위에 둥지를 트고 새집을 만들 형편도 되지 못하는 앤층홍은
만화가 이광수와 흡사한 만화수준을 넘어서질 못하는 그림들이 많다.
한국의 문화대중들이 원체 예술을 즐기는 수준이 미술인처럼 질이 높질 못하다 보니
앤층홍 그림에 뭐가 있는가 싶어 눈알 굴린 게 사실이다.
솔직히 한국의 미술평론가들이 미술에 대해 뭘 그리 아는가?
미술 언저리에 어찌어찌 살다 보니, 미술평론가의 딱지도 하나씩 가질 수 있었고,
그걸 마패처럼 활용 잘 했다는 의미지.
미술기자들 수준이나 미술평론가들의 수준이 엇 비슷해왔음은 바로 그 얘기가 아닌가?
미술기자들이 미술을 뭐 그리 원심에 다가가서 미술에 대한 글을 씨부렸나.
미술기자 딱지가 미술 글을 쓰는 자격을 만들었듯이 미술평론가들이란 게 거기서 거기 수준이지.
앤층홍미술은 박쥐처럼 양다리 걸치기에 딱 좋은 세월을 기텅차게 맞아 떨어졌었다.
스포츠심판의 판정처럼 미술평론가란 자들의 주둥아리도
한번 뱉어 버리면(평론 글) 죽을 때까지도 꾸역꾸역 옳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부관참시가 필요한 거야.
앤층홍에 대한 재평가는 시기가 아주 적절하다 본다.
대통령도 평생 대통령이 없듯이, 정말 인간적인 작품이 아니라도
정말 황홀한 작품자들 몇을 빼고 모든 미술은 정감가 품안으로 따스하게 잠을 자게 해야 하질 않을까?
앤층홍은 세상을 한껏 조롱하고 비웃으며 미술을 하였다.
그가 쓴 일기나 그의 홈피의 잡글을 보면 잘 알 것이다.
늦은 나이에 와서 사회를 부정하는 척 하는 입에 꿀 먹은 글 토해 봐야 씨알도 먹히질 않는다.
어쩌던 그는 문제의식이 없는 화가이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피해의식을 예술적 고뇌인체 표현함으로 하여 투자 몫을 확실히 챙겼다.
23회의 개인전을 거치면서 그의 작품들은 진정한 변화는 없다.
사회에 대하여 크게 말 하는 체 하지만 그는 계속적으로 유아기적인 사고에 머물고
한 걸음도 제대로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앤층홍 미술을 잘 팔아먹은 미술평론가들의 혀를 보자.
신맛과 매운맛을 적당히 잘 골라내며 적당히 곰삭아 가는 것을 잘도 먹는다.
필자가 왜 앤층홍에 대해 말을 빌빌 돌려야 하느냐?
그가 쌓은 공덕이 있는데 차마 한마디로 끝낼 수 있겠는가?
그냥 알아 듣도록만할려고 하니까 그게 잘 안되더라는 것이다.
필자는 티끌 같은 생명에도 이유 없이 생명을 건들이질 않는다. 아주 합당한 이유가 없는 이상 참는다.
벗의 말이 떠오른다.
모기가 팔등을 물고 피를 빨아도 절대 모기를 죽이질 않는다.
망할 따끔거리지만 않으면 피 좀 나눠 줘도 뭐 그리 아쉬울 게 없는데, 라면서 타산지석이라
미술 하는 자들이 하도 텅 먹는 개처럼 해후세가 기*차서 본의 아니게 앤층홍을 한번 논해 보는 것이다.
씹어 봐야 씹을 것도 없는 미술인지라
한 줌의 모래처럼 뭘 더 바랄 것인가
창덕동 궁궐에서 밤이 으슥하도록 문학예술 전반에 담론이 오갔다.
한국에 무슨 세계적 작그가 있겠어. ?
백남주은요.
그의 미술은 너무 황폐화되어 있어.
모래사막처럼 광활한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이 너무 강하게 노출되고 있어.
그건 미술공간에 넣어 둘 물건이라 보다는 영상 품으로 돌리는 게 좋겠어.
사실 럭비공과 같은 그 괴물의 정체에 인간은 몹시 당황하고 있어.
어쩌면 아주 잘된 일인지도 몰라. 한국의 꼬무작 거리는 미술세계가 큰 눈을 뜬 계기가 되었고
대중은 기계문명을 미술로 실험하는 걸 가소롭게 볼 수도 있으니까
한편으론 미술인간들이 더욱 교만해 질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괴물이 걸어 나오니까. 예술에 껄덕이는 대중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는 게
미술인들로는 얼마나 다행이겠어. 가뜩이나 머리가 텅 빈 기교의 늪에 파닥이는 꼬라지 들이...
아침 약속은 없었는데 뜻밖에 약속이 들어왔다.
그 분이 잠시 뵈었으면 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정 선생님! 어떡할까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즐겁다. 물론 마주치거나 일상사에서 흔히 보는 사람이 아닌,
아주 귀한 사람을 말이다.
시간에 대해 철두철미하지 않은 필자에게 있어 어제는 식은땀이 났었다.
박성순 여사의 전시회 오픈이 어제였으니 말이다.
문호 이문호의 부인으로 문호를 찾은 수많은 문화지식인을 접대한 분이 아니시던가.
인고(忍苦)의 세월을 두고 침묵을 삼키어 온 오랜 시간을 수를 놓으며 마음을 비워 오질 않았던가.
박성순 여사의 자수(刺繡)전
필자는 일반인은 광산문원과 부악문원에 들린다고 하여도 구경하기 힘든 그 분의 자수를 감상했었다.
8폭 병풍인 <일월도(日月圖>대작을 바라보며 넋이 나갔었다.
다른 작품도 함께 했었지만 <일월도> 한 작품의 완성에 8년 쯤 시간이 걸리었다는 말에 멍할 수밖에 없었다.
바다의 모래를 헤아리는 정성이 아니라면 차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인사동의 노른자위 인사아트센타 3층의 넓은 공간에서 전시된 박성순 여사의 자수 전
불현듯 나는 90년대가 떠오른다.
성격미술 <가나아트>란 계간지가 발행되고,
자그마치 6년의 세월이 오는데도 아직 서울은 가나아트의 불모지였다.
대학생들은 기교의 연습에만 벌레처럼 열심히 하였지 한국의 최고수준의 미술책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미술언간들이 소수 몇을 빼고는 가나아트를 알 리가 있나?
미술대학 교수들은 지레 겁을 먹고 가나아트를 불온서적으로 단정지었(웠)다.
필자는 지금의 가나아트센타 건물이 세워지기 이전에 그 곳 한옥에서 독거(獨居)하고 있었다.
아내가 가끔 오지만 인사동 한 복판에서 석양과 어둠을 함께 맞는다는 것은 참으로 고혹했었다.
그 때의 인사동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늦은 저녁이 오면 참으로 한산한 것이
고급한 문화의 내음과 함께 문학의 향기가 퍼져 났었다.
지금의 초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는 기분은 볼 때마다 묘하다.
서울대학 미술대. 홍익대학 미술대, 이화여대 미술대, 등등에 참으로 많은 가나아트 묶음을 공급해 주었다.
필자로 인하여 미술학생들이 엄청 똑똑하고 세상 이치를 깨달아 오늘날 한국의 미술에 이르게 되었다.
어제는 정말 바쁜 하루였다.
늦게 서울에 도착하여 두 사람과의 약속을 펑크 낼 수밖에 없었다.
오후에 전시장에 들려 자수전 전시를 꼼꼼히 다시 보았다.
넓은 전관에 전시한 많은 작품에서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어제는 몹시 긴장되고 피곤하였을 꺼다.
전시주인공인 박성순 여사가 전시장에 모습을 들어내었다.
20년 세월이 넘도록 바쳐 온 자수의 땀을 바깥에 보인다는 게 참으로 피곤하였을 것이다.
곧 미국의 유명박물관에서 전시 일정이 잡힌 마당에
"이문호 선생님의 사모님이 전시한다면서요."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연세 지긋한 어머니들이 줄을 이어 들어오며 즐거워한다.
오후 3시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화가 주경의 100주기 기념행사가 있다.
주경작품이 전시된 3층에서 간단히 다과를 하고 다음 약속장소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대구에서 몇 사람이 올라왔었다.
한국화랑 협회장 김타수씨, 주경의 글을 쓴 미술평론 김영등 씨는 몸이 갑자기 불편해서 오질 못했다.
그 외 몇 사람
앤층홍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사비나 갤러리. 관람료 1000원.
안의 전시장에 들려 <얼굴>전을 보고 나왔으면서 내가 뭘 보았던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눈 수술을 위해 눈을 크게 떠 있는 그 모습 그리고 공상영화에 나오는 인간
갑자기 앤층홍의 옛 그림과 요즘에 코 묻은 아이들이 그리도 좋아하는 일본만화 <..는 9살>프로그램이 겹친다.
거기 만화의 모습과 앤층홍의 옛 그림들이 너무 닮았다.
앤층홍에게 민중의식이 없다는 것을 뭘 뜻할까?
즉 앤층홍의 한계다.
그는 그냥 그런 대로 살만하게 화가로 성공한 한 사람일 따름이다. 봉급 잘 타는 공무원처럼
그의 그림에서 이상을 찾기에는 앤층홍이 원래부터 너무 삭아 있었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너무 일찍 경험하여 버렸다.
그가 부조화의 이 세상을 향해 진실을 외치고 투사로 나서기에는 기는 너무 무기력하다.
그에게는 진리의 뼈대가 없다.
때로는 투쟁의 편린이 남은 것 같지만 자세히 검토하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앤층홍의 그림들은 고만고만한 일상의 사고에서 절대 멀리 갈 수 없다.
그는 해골의 정체로 득도나 경지를 꿈꾸는지 모르지만 전혀 그럴 수준의 형편이 아니다.
화가 앤층홍에 대해 글을 좀 쓰겠다니까 개 입이 거품을 무는 걸 보았다.
하여간 정신머리 썩은 미술종자들은 버러지보다 못할 때가 너무 많다.
농사를 지으려면 어쩔 수 없이 농약을 살포해야 하는 농부처럼
버러지를 제거 안 할 수 없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