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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와 10. 26

내용

< 탈렌트 김성원씨의 부인이 안**씨다 . 김성원씨는 30세경에 당뇨가 왔다고 한다. 김성원씨는 당뇨지(한국 당뇨협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등에서 당뇨를 잘 관리하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


옮긴이 : 안정은 (제안자)


안중근 의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
생전에 두사람은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 공통점도 없다.
안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910년 3. 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생을 마쳤고 (31세경) 박전대통령은 1917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1979년 10. 26일 서울 궁정동에서 숨졌다(62세경). 이들은 오히려 정반대편에 섰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안의사가 ‘항일운동의 화신’인 반면 박전대통령은 일제하 만주군관학교인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만주군에서 장교(중위)로 근무한 친일파였기 때문이다. 두사람은 만주에서 활동한 적은 있지만 시기상으로 엇갈린다. 굳이 두사람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10.26이라는 날짜인데 이 날 한사람은 총을 쏘았고 다른 한사람은 총을 맞았다.
우선 1909년 10. 26은 안의사가 하얼삔에서 이토히로부미(이등박문)를 ‘ 총을 쏘아’ 처단한 날이다. 그로부터 70년 뒤인 1979년 10.26 때 박전대통령은 부하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 총을 맞고’ 절명했는데 햇수로 치면 안의사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남산 중턱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박전대통령이 1970년 10. 26 에 안의사 의거 61주년을 맞아 건립한 것이다. 박전 대통령은 이로부터 9년 뒤 생을 마쳤다.
10.26을 기억한다면 1979년 10.26보다 1909년 10.26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마땅치 않을까 싶다.

-- 1999년 9. 10(금) 대한매일, 정운현 기자 --





“ 운현궁의 봄 ” (저자가 정비석씨 ? ) 이란 글은
대원군 이하응의 일대기를 그린 글이다.
본인도 읽었다.
뒤(조선 말)에 아들이 임금이 되었으니..... 전주 이씨였던지........
대원군은 어려서 가족들과 주위에서는 “개똥이” 라고 불리었다고 했다
후일 대원군은 죽은이 들의 집, 즉 남의 상갓집에 많이 다녔던지 대원군을 “상갓집 개”라고 불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제안서를 제출한 후에는 제안자의 주위에서는 사람이 죽거나 병으로 수술을 하여도 제안자에게는 즉시 연락을 않고 후에 소식을 듣는 일이 많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많이 불렀던 “개똥 벌레”(사자용어) 라는 노래를 기억하십니까 ?

요즈음 '' 꽃보다 할매'' , '' 꽃보다 할배'' 란 밀들이 흘러나온다. 제안자도 육십을 넘었으니 ‘ 할매’ 라면 억울할까 ?
할매, 할배는 매(=회초리)를 나누고 “배” 가 나누어지는 것을 뜻함일까?
모범 여성 공무원(6급)을
김영삼 정부에서 부산 금정구청 박종식 구청장이 제안 건의자를 (내용 : 교육세 징수 체계 개선 - 총무처 제출) 보직없는 발령을 1년간 내었다. 이에 본인이 직접 구청장실을 찾아가서 보직없는 발령을 낸 사유를 물었는데 당시 그 항의(6급을 보직없이 발령을 낸 사유)에서 박종식 구청장은 오히려 나에게 질문을 하였는데 그 질문이 엉터리였으며 적반하장이였다.

이후 민선1기 금정구청장(윤석천 구청장)이 부임하면서 본인을 사회복지과에서 의료보장계장으로 발령하여 그곳에서 단체급식소에서의 배식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자율배식토록 해야 한다는 제안서를 문정수 부산시장께 제출했던 것인데 직장에서 제안서를 정서하는 당일 지역의 석간신문(부산일보로 추정) 에 정부에 식품의약품관리청을 신설하여 식품 화학 전문가를 채용한다는 기사가 얼핏 보였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탄생이 그것이다. 초대 청장이 박00 ,
*이 후 (근년) 김영삼 대통령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잘못 설립된 것이라 하셨고, 노무현 대통령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미국 꽁무니를 따라 간 것’ 이라고 폄하했다. 당시 약품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은 잘한 것이었다. 그러나 식품을 두고 약품의 안전장치만을 마련하는 것이 미안하였음인지 식품도 같이 붙여서 식품과 약품을 구분이 없이 화학 첨가제를 사용토록 유지하고
이에 불만을 가진 식품생산업계에서는 식품에 인공 조미료를 넣지 않으면서도 일부러 표기를 한다는 말도 들리어 왔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식약청의 설립에 대해 상기와 같이 언급을 하자 박00 라는 분은 궐석 발언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제안자는 역대 대통령을 민주 시민 교육에서 강사로 초청하여 국민들 앞에 세워서 여성들에게 갑상선 암이 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이후에도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정치권의 박연차 구속 사건(?)은 식품의약품 안전청의 탄생이 급조로 심사숙고하지 못한 체 또 식품전문가들의 뜻을 반영하지 못하고 설립(≒발의)했음을 뜻하는 소통극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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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근년) 김영삼 대통령은 ......................제안자가 신안소금의 수급이 동읍면 사무소의 미개소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국민들에게 편두통이 왔으므로 신안소금만이라도 동읍면 사무소에 사회복지사로 하여금 판매토록 하는 ‘간단 계획서’ 를 작성하여 각 시도청 자유 게시판에 등재할 당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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