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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를 찾아서 (2-2)

내용

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제목 : 상해를 찾아서 (2-2)


제안자는 부산의 변두리에
전용 면적 8평이 못되는 작은 점포를 하나 가지고 있다.
추석 밑이라 점포가 조용하리라 싶어 중국 상해를 가는 여행 상품이 있어 몸을 실었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여행 상품이라 선택한 것이었다.
김해 국제공항에서의 미팅(meeting) 시간은 06: 40분경,
비행기는 오전 8시 45분 탑승의 대한 항공이다.

부산 지하철 첫차 1호선 (노포동에서 05: 10분 출발)에 탑승하여 연산역에서 내려 → 지하철 3호선(강서구 대저행)을 갈아 타고 대저역의 종점에 내려 (06:00 경) → 김해 경전철에 환승하였다.
김해 국제 공항은 김해 경전철을 바꾸어 타고 10분 내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서의 기내식은 샌드위치였다.


중국 상해를 생각하면서 예전 일제 치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생각하는 것은 사치스런 낭만이리라 싶었지만 역시 그러했다. 상해는 홍콩을 뒤쫓는 거대한 상업 도시였다. 한국의 이마트가 상해의 “한국의 거리” 에 오래전 들어섰으며 또 그곳, 한국의 거리는 땅값이 많이 올랐다고 *가이드는 말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에 도착하고 하루가 지나니 일행 중에서 감기가 걸린
일행(여- 이**)이 있었다. 두통과 콧물을 동반하는 감기인 듯 싶었다.

나는 상해 거리를 걸어서 완주하였다.
중국에서 깨를 받아 올 한국이
다른 곳은 무시하더라도 상해 한곳이라도
당장 줄 수 있는 선물은 없을까 ?

하나는 있다고 생각했다.
고려인삼의 명성을 걸고 상해에 정관장이 나가있다고 하므로
현재 한국담배 인삼공사에서 제조하는 기초 화장품은 선물로 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정관장(=한국담배인삼공사)이 내어 놓는 화장품을 국민들이나 상해의 시민들이 사용하던 아니하던 그것은 자유의사이지만...... (山寺의 스님들과 성당의 수녀님들도 기초 화장은 한다고 한다 )
상해에도 중국 정부의 동인당(≒중국 정부의 한의원)이 진출해 있었다.
몇 년 전 북경(=뻬이징) 올림픽 개최 당시 중국 정부는 동인당을 북경에서 점차 타지역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하더니....

상해시와 멀지 않은 항주(이전 남송의 수도)에서 연극 공연을 밤에 보았다.
공연은 서커스와 겸한 공연이었는데
연극의 주제는 한국의 식품안전 정책의 추진에 대한 “ 우려섞인 풍자” 가
그 주제인듯 하였다.
항주라는 도시는 작은 강(江)들이 많은 도시로서 나무도 울창한 아름다운 도시였다. 중국 문명의 발상지가 황하강 유역이라는 것이 다시 생각이 났다.
상해를 벗어난 근교의 농촌에는 벽돌로 지은 2층의 건물들이 뜸뜸이 지어져 있었는데 대부분 태양광을 이용하는 주택들이었다.

귀국하면서 상해 근교의 실크공장에서 실크 목도리 1개와 깨(5kg)를 사왔다.
실크는 중국에서 중요시하는 상품인 듯 했다(명주 솜 이불, 실크 목도리 등). 실크 로드(silk road)의 역사와 함께.
깨는 중국 연변의 깨보다 가격이 더 높았지만 귀국하여 풀어보니 깨끗하게 씻어진 깨였다.

귀국 후 며칠을 지나니 언론에서는
“ 마트에서 감기약을 팔 것” 이라는 소리가 얼핏 들리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가이드(가이드 1명과 가이드 수습생 1명) ---- 대졸 출신의 중국 조선족이었다. 가이드 수습생과 함께 안내하였다. 몇 년 전(북경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던 해),
중국 연변에는 젊은이가 남아있지 않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면 중국 연변에서 깨를 재배할 인력이 달리 필요하다. 이 인력은 나이가 많은 것은 관계가 없을 것이다. 작업을 할 때에는 돋보기나 확대경을 사용하면 된다.
깨의 재배에는 깨의 선별, 깨의 세척 등에서는 여성 인력이 필요하므로 남녀 인력이 참여해야 하며 국내인이 중국 연변으로 일부러 나간다면 거주할 주거시설(아파트 등)의 건립이 요청된다. 진도개와 태양광 보안등은 해결이 되었다.


-- 2012. 10.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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