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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부산요(釜山窯)

내용
일본 큐슈(九州) 남단 금강만(錦江灣) 언저리의 나에시로가와(苗代川)란 작은 마을에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인 도공(陶工) 심당길로부터 400년을 이어내린 사쓰마야끼(薩摩燒)와 이삼평을 도조(陶祖)로 추종해 1916년 기념비를 세우고 그를 기리는 행사를 매년 열고 있는 아리타야끼(有田燒)는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도자기로 자리 잡았다.
1995년 부산에 편입된 기장군은 예로부터 도자기 제작이 활발했던 곳으로 옛가마터가 많이 발견되었고 자신의窯(요 : 기와나 자기를 굽는 가마)를 가지고 작업 중인 곳만 40여 곳에 이른다. 부산의 도심에서도 도자기를 만들었다. 조선 속의 일본인 마을 초량왜관에서 만들었고 그 이름은 부산요(釜山窯)다. 조선은 원료인 백토와 도공, 목재를 지원해 조선다기를 생산하도록 하였다. 부산요는 화관다완요(和館茶碗窯) 또는 고혼자완(御本茶碗)이라 불리우며 주문을 의뢰했던 쓰시마(對馬島)에서 조차 단 한 점도 팔지 않고 일본의 최고 권력자들에게 오직 선물용으로만 제작했을 정도로 유명했다.
광복동에 자리 잡은 구미화당 건물 뒤쪽에 주차 빌딩을 짓기 위해 창고를 허물자 일제강점기 때 만들었던 석축이 드러났다. 부산요가 있었던 곳이다. 로얄호텔에서부터 고갈비골목의 식당을 사들여 용두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만들고 부산요를 판매하는 카페와 부산요와 함께 초량왜관의 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을 때 이 땅이야 말로 부산의 역사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초량왜관의 시작이요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다 살려야 한다며 모일간지신문 기자에게 현장을 보여주며 부산시나 중구청이 이 땅을 살 수 있도록 보도 해달라고 매달렸다. 사유지에 대한 권리 때문에 문제화 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기사를 쓰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했다. 백만평 공원 만들기 시민모금 때처럼 부산시민이 동참하여 이 땅을 살 수 있도록 한번 더 고려해보라고 다시한번 매달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하여 광복로에 차 없는 거리를 만들어 예술인들이 머무를 수 있는 장터를 만들어 서울의 인사동처럼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번번히 광복로상가번영회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이번에도 역시 주차빌딩이 필요하다는 강박관념을 떨쳐버리지 못한 광복로상가번영회는 주차빌딩을 올리겠다는 사업주의 의견에 대부분이 찬성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이야기가 있는 곳을 발굴해내고 탐방로를 만들기 위해 나서고 있는 마당에 이 부지를 사들일수 없었던 부산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땅을 치고 통곡해 본들 소용없고 이미 날아가버린 새를 바라보는 꼴이 되었다. 통탄할 일이다.
일본인을 가둬두기 위해 조선정부가 설치한 초량왜관의 상징성을 띤 관수가나 사신을 맞았던 객사라도 만들자며 시작 된 용두산주변 부지 매입에 대한 피맺힌 절규는 이제 공염불이 되었다. 1950년대 후반 현대적 도시 건설로 베이징(北京) 고성의 성곽과 성문을 철거할 때 당시 칭화대(淸華大) 교수였던 양사성(梁思成)은 외곽에 정치행정 중심의 신도시를 건설하고 베이징은 원형 그대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묵살되었고 양사성은 파괴된 성벽의 잔해를 끌어안고 “당신들은 50년 후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라며 울부짖었다. 그의 주장은 맞았다.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의 옛것을 살리는데 천문학적인 돈이 투자되었다. 느리지만 제대로 된 청사진으로 초량왜관을 복원하자는 뜻있는 향토사학자들의 주장과 언론의 문제제기 역시 이제 소용없음을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일본 나가사끼(長崎)현도 네덜란드 상관 데지마(出島) 복원 부지를 사들이는데 50년의 세월을 보냈다. 역사적 유적은 역사의 현장에 있어야만 한다. 부산 최고의 명품도자기 “부산요”를 재현하고 그 터에 부산요의 역사를 남겨야 한다.
대륙항공여행사 대표
박물관을찾는사람들 문화유적답사대장
부산초량왜관연구회 홍보위원장 장순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