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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신문의 시민의 참여’ 당부하고 하늘로 떠난 김근태

내용

오늘신문의 시민의 참여’ 당부하고 하늘로 떠난 김근태

한 사람의 생애에는 어쩔 수 없이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가 아로새겨지게 마련이다. 어제 새벽 64세의 이른 나이에 별세한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삶에서도 우리는 그가 감당해야 했던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모순을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두 번의 투옥,

5년6개월의 수형생활, 26번의 체포, 육체와 영혼을 동시에 파괴한 고문 등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자행한 온갖 야수적 탄압에

도 그는 무릎꿇지 않고 희망을 노래했다. 또한 그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꿨으며, 사람이 사람에게 연민을 느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곤 했다.

재야운동권의 지도자이자 ‘민주화의 대부’로 불리던 김근태가 1996년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총재로 있던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의

초선의원이 되어 독일을 방문한 적이 있다.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의 재외공관 국정감사를 위해서였다. 그는 “보수정객이라고 비판하

던 DJ의 당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이냐”는 주독특파원들의 질문에 “DJ에 연민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연민론(論)’은 묘

하게도 민주개혁론이나 수평적 정권교체론과 같은 거창한 담론을 압도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그가 연민을 느꼈던 대상은

DJ만이 아니었다. 이 땅의 모든 사회적 약자에게 그는 연민의 마음을 품었고, 이를 민주화 운동과 현실정치활동의 동력으로 삼았다.

그는 냉철한 이론가·전략가이기 전에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1965년 대학 입학과 동시에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이래 평생을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했던 김근태의 빈자리가 더

욱 커보이는 까닭은 그가 목숨을 걸면서 일군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눈에 띄게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당했던 참혹

한 고문은 없다고 하더라도 정치인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감시·사찰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민주주

의의 기틀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제도가 ‘선관위 디도스 테러’라는 형태로 집권여당 구성원들에게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맥

락에서 1985년 서울 남영동 경찰 대공분실에서 그를 23일 동안 물고문·전기고문했던 이근안 전 경감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했다는

“당시 상황에서 고문은 애국” “고문은 예술” 운운의 발언은 결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피해자인 김근태는 그때의 고문으로 오랫

동안 후유증을 앓았으며, 결국 그것이 죽음에 이르게 한 요인이 됐는데도 가해자인 이근안이 반성은커녕 이런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 역주행의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김근태가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사력을 다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은 대중들에게 남긴 유언이자 과제

로 읽힐 만하다. 그는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썼다. 그가 당부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더 많은 관심과 열의, 더 치열한 고민으로 내년의 총선·대선에 참여해 세상을 바꾸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

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된 김근태의 전 생애에 보답하는 길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