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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측 인물에 의해 야기된 암살미수사건에 대해(그 종결을 위한 분석)

내용
민족문제연구소측 인물에 의해 야기된 암살미수사건에 대해(그 종결을 위한 분석)

-민족문제연구소, 천정배, 국가보훈처, 청와대 이상목 비서관 등은 우리측과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라-



1. 들어가며

2. 암살미수사건과 전체 사건일지

3. 민족문제연구소측의 투서음해와 암살미수사건

4. 천정배와 매국노 이해승후손은 거래내용에 대해 국민앞에 밝히라

5. 국가보훈처와 매국노이해승 후손이 가담한 친일재산조사위에서의 해촉

6. 글을 맺으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그 위에 단군하늘이 굽어 살피고 계시니라





1. 들어가며



소도청입니다.

우리측이 2006년 연초 친일재산조사위원회 구성을 둘러싸고 발생했던 ''청와대 투서'' 사건과 연이어 발생한 2007년 6월 발생한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이 저지른 ''암살미수사건''등을 두고 오랜 기간 그 실체와 진상을 규명해왔습니다.



이처럼 실체와 진상규명작업이 오랜 기간을 경과할 수 밖에 없었던 근원적 이유는 해당사건이 1) 6년 연초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조세열, 이준식이 자행한 음해투서사건, 2) 2007년 6월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연구실장이 기도한 해괴한 암살미수행각, 3) 2009년 8월 국가보훈처와 청와대 민원제도비서관 이상목 비서관까지 가세한 친일재산조사위원회에서의 해촉 등 지속적인 공격과 여러 세력의 공격이 진행되었기에 복잡한 만큼 그 본질을 이해하는데 매우 오랜 기간이 소요된 것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적어도 ''암살미수행각''과 ''친일재산조사위원회에서의 해촉과정''에는 다름아닌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업무를 통해 ''막대한 규모의 친일재산을 국가귀속에 의해 국가에 넘겨야 하는 입장''에 있었던 매국형 친일파 이해승후손측이 가담한 형적이 확인됨에 따라, 비로소 사안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 것이며, 관련사실을 우리측이 파악한 대로 서술하여 대외에 내보냅니다.





2. 암살미수사건과 전체 사건일지



우선 암살미수사건이라 총칭하여 사안을 내보내는 1) 2006년 연초 청와대 음해투서사건 2) 2007년 6월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연구실장에 의해 야기된 해괴한 암살기도행각 3) 2007년 6월의 ''암살기도''가 실패 한 후 친일재산조사위에서 배제하기 위해 진행되었던 2009년 8월 친일재산조사위에서의 해촉행위등의 일련의 사건과 우리측이 진상규명활동을 진행하던 중 ''신변안전의 문제''로 인해 선포했던 ''소도구역'' 선포(2010.11.20.)까지의 일련의 사건 일지를 정리합니다.



<암살미수사건 관련 일지>

-2004.8-2006.1.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재직

친일파 재산환수법 제정 관련 업무 추진

-2005.5. ''한반도 유사시 시나리오'' 문건 작성, 당시 재야단체 홈페이지에 게시

당시 사건은 수업중 학생의 우연한 얘기로부터 한반도에 조성된 ''전쟁정세''를 막기 위한 노력이었으며, 이 건이 ''암살미수사건''이 발생한 근원적 배경으로 파악중입니다.

자료보기: 그 참, 철부지 없는 학생녀석!(민주주의 민족회의)

-2005.12. 초순 친일파 재산환수법 국회 법통과

-2005.12. 연말 봉선사앞 다원모임, 민족기금법(세가지용도론) 논의 도출

친일파 재산환수법 제정을 위해 함께 노력해왔던 조계종 혜문스님, 문만기교수등과 민족기금법 논의 도출, 자료보기:봉선사 앞 다원모임과 ''민족자산론'' 그리고 ''세가지 용도론''

-2006.1. 초 참여정부 청와대 면담과 그 직후 민족문제연구소측의 음해투서 제출 및 연구소 해직

-2006.9. 친일재산조사위 전문위원 취직

-2006.9. 모친의 급거(2005년 11월 암수술 후 회복치료 중 급거)

-2007.6. 치루 3차 수술 직후 천정배측에 의한 ''암살미수사건'' 발생

(2007년 1월 발병하여, 1월 1차수술, 4월 재발수술, 6월 3차수술, 8월 4차수술로 회복됨)

암살미수사건임을 인지하기 전 정리했던 자료:원본공개 7차분: 민족문제연구소측 인물의 살인멸구기도행각

-2008.5. 민족기금법과 관련하여 시민사회의 합의물 수용 요청(첫 공론화)

-2008.10. 시민사회의 합의안의 실현을 위해 다음 카페 ''민주주의 민족회의'' 개설,

관련자료보기: 민주주의 민족회의(카페) 탄생에 부쳐

-2009.7. 시민사회쪽과 논의 도중 ''한민족 민족회의'' 개설

-2009.8. 친일재산조사위 종료 1년 앞두고 전문위원 해촉됨(이른바 ''2차 복마전'' 발생)

-2009.9. 안산 상록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참여, 예비후보로 활동 마감

재보궐선거 참여 동기 또한 ''민족기금법'' 제정이라는 시민사회 합의물의 실현을 목적으로 참여했으며, 선거를 통한 실현이 좌절된 이후 진상규명작업과 매듭요구에 묵살되면서 ''사법처리''로 가닥을 잡음

-2010.3. 천정배, 조세열, 박한용 등 5인에 대해 ''살인죄 및 명예훼손죄''로 1차 고소조치 취함

(2011.1. 검찰측의 기각에 이어, 최종적으로 고등법원측에서 재정신청 기각)

-2010.7-8. 한달여간 ''민족기금법 제정''을 위한 전국 ''평화의 투어''(거리서명) 진행

-2010.10월말 서프라이즈의 소통 도중 2007년 6월의 위해미수사건이 단순한 범죄사실 은폐를 위한 ''살인미수범죄''가 아닌 ''암살미수사건''임을 인지하게 됨

-2010.11월초 2005년 5월 유관관계자측(북,미,한,일 4개국 정보관계자)에 관련사안에 대해 문의중 11월 8일 ''LA앞바다 미사일 발사사건'' 발생

당시 사건 며칠후 긴장완화를 위해 내보냈던 자료:LA미사일 발사는 ''민족대표자회의 창준위'' 출범을 축하하는 축포입니다 (2010.11.12. 한민족 민족회의)

-2010.11.20. 위 사건을 지켜보며 한반도 긴장고조와 신변안전등을 고려하여 ''소도구역'' 선포



3. 민족문제연구소측의 투서음해와 암살미수사건

1) 2006년 연초 청와대 음해투서사건

민족문제연구소측 인물들(조세열, 박한용, 이준식등)은 2005년 12월 ''친일파 재산환수법 제정''이 이루어진 이후 2006년 연초 청와대측과의 면담을 앞두고, ''친일재산조사위'' 구성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본인에 대해 업무에서 배제하려는 의도하에 2006년 연초 청와대 면담 직후 위 조세열, 박한용, 이준식 3인의 주도하에 청와대측에 음해 투서를 제기한 것입니다.



당시의 음해투서는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던 천정배측의 비호하에 투서의 목적대로 ''친일재산조사위'' 구성이 진행되었으며, 음해투서의 주체이기도 했던 이준식은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을 장악하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측이 파악한 바로는 최용규의원실의 양광혁보좌관이 민족문제연구소측 투서를 청와대측에 전달했으며, 이 과정에는 법무부장관 천정배의 비호하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또한 해당 내용에 대해서는 2006년 1월 3일 청와대 면담 당시 접촉했던 사회수석실의 김현기 전 청와대행정관이 2006년 2월초 통화내용을 통해 본인에게 전달했기에, "최용규의원실의 보좌관이 투서를 넣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며, 당시의 상황으로 위 양광혁보좌관을 투서전달 당사자로 지목하는 것입니다.



2) 2007년 6월 치루 3차수술 당시 박한용 연구실장의 암살기도행각

이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위 2006년 연초 청와대 투서행위의 주체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이해를 하고 있었던 바, 문제는 민족문제연구소측의 음해가 본인이 치루수술로 ''3차 수술''까지 받던 상황하에서 ''살인기도행위''까지 자행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에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며, 이 사건을 겪으면서 ''사법처리''가 불가피하지 않나 하는 결심을 처음 하게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이 왜 ''살인미수'' 즉 ''암살미수사건''이 되는가하면 다름 아니라 본인의 모친께서 2005년 11월 무렵 ''암수술 후 회복치료를 하시던 중'' 본인에 대한 음해과정에 ''평온한 치료가 안되고 잘못되셔서'' 2006년 여름 ''장폐색''이 발생하여 2006년 9월 친일재산조사위 업무 시작 직후 급거하신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일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측에서도 조세열 사무총장, 방학진국장등 여러 인물이 조문을 왔기에, 저들 또한 본인의 모친의 사망이 연구소측의 음해과정과 관련됨을 알고 있던 사안입니다. 즉 박한용 연구실장이 2007년 6월 본인의 3차 수술직후 벌인 짓은 다름 아닌 ''본인의 모친의 상황이 본인에게도 발생하리라''는 망상을 품은 명백한 ''살인의도를 지닌 살인미수행각''인 것입니다.



이 사건 직후에는 단순히 ''범죄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악랄한 짓까지 한다''고 생각했지, 그것이 매국노 후손의 요청등을 받은 천정배에 의해 야기된 ''암살미수사건''이라고까지는 생각지 못했기에, 진상규명작업이 오랜 기간이 걸린 것입니다.



또한 중간과정(2010년 가을부터 2011년 5월초까지)에도 이 사안이 ''암살미수사안''임을 안 상황에서도 이를 ''2005년 5월의 국제관계 속에서 발생한 사안''으로 이해했던 바, 최종적으로는 올해 5월 중순무렵에야 이를 ''친일후손을 배후로 한 암살미수사건''으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측이 제출한 투서내용''을 확인해 보면 ''국제관계''도 조금은 관련이 있을지 없을지 여부가 보다 분명해지리라 예상하지만 우리측은 투서의 내용 중 ''2005년 5월 사건''에 대한 언급은 분명 있으리라 보며, 이를 근거로 하여 ''북한간첩'' 또는 지하당 인물등으로 악랄한 투서를 진행했던 것으로 추정 중입니다.



4. 천정배와 매국노 이해승후손은 거래내용에 대해 국민앞에 밝히라



一.민족문제연구소의 투서제출과정을 비호하고 암살미수행각을 지시한 천정배측은 우리와 국민앞에 그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석고대죄하라.



一. 또한 매국노(매국형 친일파) 이해승 후손측은 암살미수사건은 물론 친일재산조사위에서의 해촉과정에 대해 그 진상을 낱낱이 밝히라.



一. 더불어 우리측이 이해승 후손측으로부터 사죄받고자 한 시점이 경료하였기에, 우리측은 귀측으로부터 사죄받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국가귀속재산을 제외한 재산을 정리하여 그만 한반도를 떠나기를 촉구하는 바다.



관련자료



매국노 이해승후손은 그만 한반도를 떠나라 [1]





가. 이해승가 관련 국가귀속 업무과정과 그 내용에 대해



이해승가와 친일재산환수법(1): 재산반환소송의 원조 이해승가 (자료)

이해승가와 친일파 재산환수법(2): 이해승가의 사패지와 그 내용에 대해 (자료)

이해승가와 재산환수법(3) 친일재산조사위원회에서의 조사개시결정 대상 토지 현황(자료)



나. 2007년 6월 암살미수사건 및 2009년 8월 발생한 2차 복마전관련등 의혹자료



암살청부 폭란세력(민족문제연구소)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라

국가보훈처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차 복마전의 진상을 ..

천정배는 암살을 요청한 곳이 일본 또는 친일후손 여부에 대해

친일파 후손이 친일재산조사위원회를 좌지우지했다





5. 국가보훈처와 매국노 이해승 후손이 가담한 친일재산조사위에서의 해촉



2009년 8월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전문계약직(5급상당)으로 재직할 당시 위원회 업무 종료 1년을 앞두고 발생한 ''친일재산조사위에서의 해촉과정''은 표면상으로는 ''위원회 쇄신론 제기''등에 대한 앙심을 품고 발생한 합법적 해촉과정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이후 일련의 사태의 전개과정(이해승 후손의 대법원 승소, 2010.11.)은 이 또한 ''암살미수행각''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친일재산조사위원회로부터 본인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해촉과정에 친일후손의 작용이 이루어진 사건이라 파악중입니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에서의 해촉과정에는 ''이해승측''의 요청을 받은 청와대 이상목 비서관과 국가보훈처, 그리고 친일재산조사위에 있던 이준식상임위원등이 연결하여 진행한 ''국가적 업무에 대한 훼방행위''이며 그 배후가 ''친일후손''인 점에서 ''국체(國體)부정범죄사건''이라 규정합니다.





6. 글을 맺으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그 위에 단군하늘이 굽어 살피고 계시니라



현재도 투서음해는 물론 암살미수행각까지 진행한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박한용, 이준식등은 물론 암살미수행각의 지시자인 전 법무부장관 천정배의 기만행각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간단하게 해당사안을 바라보는 우리측 입장을 간단하게 밝힙니다.



애초 친일파 재산환수법 제정이후 어려운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업무를 앞두고 ''제식구 감싸기''를 해도 모자랄 민족문제연구소측은 업무주도권 및 자리문제로 소속인사를 음해투서짓 및 해직을 강행한 바, 귀측이 기만으로 국민을 속이고자 나섰으나 귀측을 기만하려는 ''천정배''에 의해 놀아난 것이며, 더욱 놀랍게도 천정배의 배후에는 ''친일후손의 검은 손''이 작용한 것이 사안의 본질인 것이다.



친일후손의 ''검은손''이 투서과정부터 관여했던 것인지 아니면 ''암살미수행각''부터 관여했던 것인지 우리로서는 잘 알길이 없으나, 간단한 세속의 속담으로 역사적 교훈을 대신합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그 위에 단군하늘이 굽어 살피고 계시니라"



2011.6.1.

고려대 강사 백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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