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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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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베트남)戰에 참전한 동기

내용
1961년 미국의 J.F케네디 대통령은 (남)베트남의 공산화는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초래 한다는 우려 때문에 (남)베트남에
미 정규군을 파병함으로서 군사적 원조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64년 통킹만사건이 발생하여 Johson정부는 미군을
직접 전투에 참가시키게 되었고 1965년 (북)베트남에 폭격을
시작하게 되면서 전쟁은 본격화 되었습니다.

이때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25개국에 참전 요청을 했고
그 중 7개국이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1964.7.18 비전투부대인 의료지원단과 태권도 교관단 파병을 시작으로
1965년10월에는 전투부대인 청룡(해병대)부대 와 맹호사단을
1966년에 백마사단과 주월한국군사령부 예하 지원부대를 파병
하였으며 베트남에서 철수하던 1973.3.23까지 8년 8개월간 연인원
32만명이 참전하여 5,000여명의 전사자와 16,000여명의 전상자
50,000여명의 고엽제피해자를 발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964년 5월 9일 미국정부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베트남전 파병을
요청했고 뒤이어 1964년 7월 15일 베트남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지원 요청이 있어 대한민국 국회는 1964.7.31 제44회 임시국회를
열어 베트남참전안을 가결 통과시켰습니다. 이로서 우리나라는
근대역사 상 처음으로 해외파병이 시작되였습니다.

우리국군이 참전하게된 동기와 명분을 여러 가지로 설명이 가능
하겠습니다 만, 정치적으로는 (남)베트남이 공산화 되는 것을 막고
자유를 수호하려는 공동방위체로서의 신의를 준수함은 물론

우리나라가 1950년 6.25전쟁 당시 공산화를 막기 위하여 우리나라에
참전해 준 16개국에 대한 보답일 뿐 아니라, 국제적인 지위향상에도
일조가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 상태는 세계 최하위 빈곤국가로서 기업의 해외
진출은 생각지도 못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참전 기간 중 약 10억불 이란 당시로는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정부는 개발도상국 대열에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한편 군사적으로는 방위산업 육성과 장비근대화를 이루었고 우리
군의 국제적 지위향상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많은 전투 경험자를 배출할 수 있었고, 독자적인 전술개발과
병법, 전술을 습득하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1966년 3월 4일 발표되었던 Brown각서에서

첫째 : 군사원조로서는
1. 한국군의 현대화 장비지급
2. 참전 한국군의 일체의 경비부담
3. 해외참전 전투 수당지급

둘째 : 경제적으로는
1. 베트남에 건설사업 참여
2. 수출장려 및 기술원조 증가
3. 경제개발 차관 제공
4. 경부고속도로 건설지원 등을 미국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습니다.

종전 후 베트남전에서 철수한 국내의 각 건설업체들은 베트남에서의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때마침 석유파동으로 급격히 성장하는
중동지역에 진출함으로서 오늘의 경제기반을 조성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32만 베트남참전 용사들은 국가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었으며
세계평화의 수호군으로서 소임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大韓海外參戰戰友會 鎭海市支會
및 鎭海海軍戰友會 홍보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