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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이 싼 똥 윤석열이 똥 싼다 3/6부

내용
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81/240

`97년 5월경에 내가 발표했고 첨부에 당시의 모형 사진이 있다. 그런데 친구들은 이도 어디서 참고 했냐고 묻는다.
이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기말고사는 몰(Mall)에 대한 시험을 예고 했고 난 남대문 시장에 각 몰의 특징을 접목시켜 개선 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동기들은 책에 있는 각 종 몰을 암기하여 시험 시작하자 달달달달 그대로 적었다. 난 무슨 벌레가 지나가는 줄 알았다. 달달달달달 다르르르르 진짜 신기하다. 난 손 글씨를 그렇게 빨리 적지 못한다.
처음에는 너무 신기하여 두리번 거리며 둘러 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서울대생의 시험치는 소리 진짜 재미난다. 달달달달 보다 다르르르가 맞나? 이들은 항상 듣는 소리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특이했다. 지순아! 너희는 너무도 당연한 그 소리가 나에게는 정말 이상했다. 솔직히 태어나서 그런 소리 처음 들었다.
아무래도 나와 너희들은 뇌 구조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난 김박사님 말씀을 듣는 순간부터 그것을 달달달 외워 적는 것은 생각 자체를 해 본적이 없다. 처음 부터 각 몰을 어떻게 응용 발전 시킬까만 생각했다. 또 하나 있다면 시험 시작 전에 ‘나는 관련 책을 볼 시간이 없었어’ 하는 거다.
그런 말은 왜 하니? 물론 그렇게 많이 외워 적는 것도 대단하다. 하지만 김박사는 내 손을 들어 주어 그냥 A+가 아니라 100점 만점 A+를 주었다. 아마도 김박사님은 이런 서울대생들이 답답했던 것 같다. 여기 용산까지 올라와서 보니 내가 100점 만점 받은 보행자 중심의 교차로(동배보도)가 생각보다 많이 적용되어 있다.
사실 김박사가 아니었으면 난 수석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나 김박사 좋아(존경)하게 생겼다. 여성가족부 홍보 동영상 봤나? 여성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그 세명의 여성 중 가운데 계신 분이다. 교차로에서 대각선으로 건너는 행단보도 있지? 그것 내가 수업시간에 제안 한 것이다.
남대문 시장도 가 보았는데 이는 적용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적용 됐을 수도 있지만 지보는 못했다. 이번에도 친구들은 어느 논문을 참고 했냐고 묻는다. 동기들이 즐겨 찾는 외국의 저명인도 그 껍질을 벗기고 보면 별 다를 것이 없다. 서울대생들이 그런 저명인의 책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껍질을 벗기는 것도 배워야 한다.
난 주로 껍질부터 벗기고 본다. 그러면 말 그래도 상아탑일 뿐이다. 내가 앞에서 에디슨 까는 것 봤지? 차라리 우리나라 정주영이나 이건희를 배워라. 이분들은 벗길 껍질이 별로 없다. 이들은 스스로 뭘 하기 보다 오랜 교육 효과로 항상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참고해야 잘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 얼마나 쉬운 상대인가?
논문에서는 바닥을 들어올려 말리는 형태로 설계했다. 동기 한 명은 어디 책에서 같은 것을 봤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며 그 책을 말해 달라고 졸랐다. 그냥 대지디자인이니 그렇게 했다고 했으나 아직도 그 친구는 나를 믿지 않는다. 이들의 방법이 틀렸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나에겐 그냥 쉬운 상대일 뿐이다.
참고를 했으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안을 기준으로 하고 아니면 최고의 창의력으로 제도와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각기 다른 점들을 연결시키는 추론 능력이다. 난 서울법대 건물에서 4년을 서당개로 보냈다. 2년은 학생으로 1년은 연구원으로 1년은 강사로 있었다.
바로 이 법이라는 것은 기능과 유사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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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면, 기능올림픽에 출전하는 것과 서울법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보는 것은 공통점이 매우 많다.
법조인은 상황을 판단하여 법이라는 점에 연결 시키는 것이고, 기능올림픽 출신들은 기술을 규정이라는 점에 연결시킨다. 이 점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가능성이 적은 반면, 기술을 연마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다. 이를 각 점에 연결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골수 중에는 법을 권력이나 밥 그릇으로만 생각하니 이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진짜 무식한 것이 맞다. 무식한 놈! 감성을 주장하는 사람들 다툼의 끝은 결국 이성의 힘에 의해 아무 것도 못하고 주저 앉는다. 반면 이성만으로 사는 사람들은 감성을 모르니 항상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를 듣기 싫어 알지도 못하는 음악 감상이나 공연장, 박물관, 전시장 등을 찾는다. 그동안의 경험을 종합하면, 감성은 이성을 이기기 쉽지만 이성은 절대로 감성을 이기지 못한다. 이성이 감성을 이길 때면 왠지 독재 비슷하고 권력 남용 같고 그렇다. 그래서 감성 보다는 이성이 더 혼란스럽다.
이러니 여차하면 좀팽이 된다. 감성은 일종의 아날로그라 할 수 있는데 아날로그를 암기로 치면 그 분량이 무궁무진하여 잘 하기 어렵지만 이성은 디지털이기 때문에 나름 쉽게 암기가 가능하지만 전체를 보는 눈은 확실이 떨어진다. 그래서 이들은 아는 척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들은 틀을 살짝만 돌려도 우왕좌왕 장난이 아니다.
그러니 이들의 눈에는 무식한 놈들이 그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낀다. 무엇보다 이제 암기의 시대는 끝났다. 참고로, 옳고 그름은 이성이나 감성과 전혀 무관하다. 황교수님 심부름으로 서울시정개발연구소로 갔다. 남산 순환로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차를 세우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봤다.
경비원이 오더니 “어디서 오셨습니까?”, “서울대학교에서 개똥이 박사 만나러 왔습니다.” 대답 하고도 계속 밖을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야! 오랜만에 여기서 보니 감회가 새롭내요”, “여기 자주 오셨습니까?”, “예! 옛날에 여기 앞을 뛰어다니곤 했죠. 그런데 여기서 보니 완전히 새롭내요?”,
“여기 오시는 분들이 그런 말씀 자주 하십니다. 데모 많이 하셨나봐요?”, “데모는요? 그냥 저 길로 뛰어 다녔죠”, “예, 힘든 시간을 보내셨내요” 서울시정개발연구소는 얼마 전까지 안기부 자리다. 그 유명한 남산, 알지? 난 서울 처음 올라왔을 때 안기부 앞을 조깅하곤 했다.
그래서 진짜 뛰어 다녔다. 지금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으로 말을 하는데 왠지 대화가 잘 된다.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개명하고 양재동으로 옮기면서 그곳이 서울시정개발연구소로 바뀌었다. 1층에서 학생증을 제출하고 선배가 있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안기부 건물은 유명세 보다 건물이 작다. 뭐 나를 닮았는지 코딱지만 하다.
선배님은 매우 반기며 도면 등을 전달해 주고는 옆의 다른 분과 인사도 시켜주면서 그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동배씨! 여기 안기부 자리였던거 아나?.”, “예”, “지하실 구경 시켜줄 테니 따라와! 우리는 아직도 여기 가기가 무서워” 하시더니 가면서 다른 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했다.
“우리는 무서워서 오후에 일을 빨리 끝내”, “왜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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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생각을 해봐. 여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그러니 안 무섭겠어?”, “그래도 이해를 못하겠네요? 그럼 선배님은 그 때 군인이었습니까?” “무슨 소리야?”,
“여기서 다들 민주화 운동하며 고문 받다 죽었고 이제 민주화도 됐고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들어 왔는데 그들을 무서워 하는게 말이 됩니까? 내가 선배님 같으면 저녘에 술도 한 잔 갔다 놓고 영혼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할 것 같은데 무섭다는게 이해가 안 되네요”, “그런가?”
“그럼요. 그들이 억울했다면 이제 그 뜻을 이루었으니 무서운 것이 아니라 반가워야죠?” 난 확실히 뇌 구조가 좀 다른 것 같다. 계단을 함께 내려 가던 선배는 잠시 발을 멈추더니 동행 했던 사람과 같이 가라 하고는 사무실로 돌아 갔다. 다음에 다시 방문 할 기회가 생겼다.
무슨 일인지 그 사이 난 전)안기부 건물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선배님이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 내 말을 사람들에게 했고 모두들 그동안 생각이 잘못 됐음을 알고 돼지머리 사다가 고사도 지내주고 한 모양이다. 나 때문에 이젠 밤 늦게까지 일도 한단다. 암튼 잘 대우받고 입구까지 데려다 주었다.
다음에 또 가자 경비가 여전히 입구에서 “충성” 했다. “아니 나한테 무슨 충성입니까?” 그러면서 그 경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분은 원래 경비가 아니고 안기부 때 육군 중사였단다. 그곳에 배치되어 항상 ‘충성’만 했고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 벌써 몇십 년째 저러고 있다.
안기부가 양재동 국정원으로 가면서 혼자 두고 가는 바람에 육군 중사가 졸지에 경비가 되어 버렸는데 아무도 아무런 지침이 없어 저러고 있단다. 그러니까 그 분만 여전히 여기가 안기부 직원 겸 경비인 셈이다. 나가면 탈영이 되고 그냥 있자니 경비가 되고 뭐 그런 모양이다. “에이, 그럼 이제 충성하지 마셔요. 나 같은 놈한테 무슨 충성입니까?”
얼마 전까지는 육사생도들이 오면 ‘충성’을 했고 이제 여기가 대부분 서울대 출신으로 바뀌어 나한테 충성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몇 년생이셔요?” 그러자 나보다 나이가 몇 살 위였다. “저 보다 형님이시내요. 그러면 저 보고 ‘동배야!’ 이렇게 부르십시오. 앞으로 제가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했더니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 왜 그러시는데요?” 이 분은 19살 경부터 군인이었고 군인은 누군가 ‘쉬어’를 해줘야 그 동작이 멈추는데 아직 아무도 자기한테 말을 걸어 주는 사람이 없었단다. 야! 안기부가 대단한 거야? 이 사람이 대단한 거야? 그러는 사이 결혼도 하고 애도 있는데 여전히 거기서 ‘충성’만 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형! 이렇게 합시다. 이제 여기가 서울대판이 되지 않았습니까? 형은 나를 옛날 육사생도 처럼 대했고…, 그러니 내가 쉬어 해드릴께요. 어떻게하면 됩니까?”, “저기 서 있어! 충성! 육군 중사 뭐 어쩌고 저쩌고” 하기에 내가 경례를 받아 주고 “육군 중사 소똥이 쉬어!”했다.
그러자 그분은 눈물을 보였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게 우리는 친해졌다. 아무래도 내가 또 한 건 한 것 같지 않나? 대통령들이 싼 똥 내가 다 치우고 다닌다고 바쁘다. 물론 그때는 대통령들이 싼 똥인지 몰랐다. 아마 서울대생, 여기서 서울대생은 학부 서울대생을 말한다.
그러니까 적어도 난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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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에게 이런 상황이 닥쳤으면 그들은 도서관에서 답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온갖 군사 관련 책이나 법전을 찾아 보고는 결국 이 가여운 중사를 피해 다녔겠지?
하지만 난 그냥 행동하는 양심이다. 그것도 행동을 아주 잘 하는 옳바른 양심이다. 다른 말로 많이 단순하다. 결국 민주화 된 후, 운동권 모두 국민들 혈세로 봉급 올리는데만 골똘하고 있을 때 그 무시무시한 안기부의 마지막 정리는 내가 다 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노태우 정부 때 부터다. 군인도 국민이다. 그러니까 민주화는 36년 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어차피 가는 정보화 시대 이끈 것 외에 운동권이랍시고 36년간 봉급 올린 것 빼면 뭘 한게 있나?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계셨으면 봉급만 올리는 정치인들 가만 뒀겠느냐? 차라리 깨끗하게라도 살았으면 후광이라도 있지. 민주화 운동했다고 혈세로 봉급만 올리는 것이 정의냐? 민주주의 국가가 운동권 배부르게 한다고 국민만 고달파야 되냐? 국회의원 봉급 1,400만원, 이는 국민들이 전체를 지보 못하고 하는 소리다.
운동권이 공기관으로 들어가 받아 먹는 국민 혈세는 인당 수억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살기 좋다면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박정희는 대통령으로서 경제 등도 잘 했지만 공무원 단속도 잘 했다. 지금처럼 고삐풀린 망아지들만 정치하게 두지는 않았다.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정치인은 청렴하고 청렴하고 또 청렴해야 한다. 이는 운동권 모두 지금 나의 지난 20년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너희들 민주화 운동 몇 년 했냐? 너희 중에 20살에 시작하여 40살까지 민주화 운동 한 놈 있냐?
너희들이 내 인생 20년을 갉아 먹어 놓고 지금은 모든 명분 마저 내려 놓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가보안법은 후처벌인 대신에 절대로 되돌리지 못한다. 명분도 놓치고 법도 놓치고 깨끗하지도 못하다. 누가 너희들에게 백옥같이 깨끗하라고 하더냐? 기본만 하자 기본만…, 군사정부와 비교하면 당시 군인들은 충이였다. 물론 일부 돈에 눈먼자도 있었다.
대략 열 손가락을 빼면 나머지는 다들 충으로 권력 행사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그마치 20만 명이 난수표까지 강제로 뽑아 먹고 있다. 여럿이 나누어 먹어 티가 잘 안나지만 결론은 국민이 고달프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빛으로 버티지만 무너지면 사실상 회복 불가능이다. 너희들의 주장대로 무서운 권력을 무너트렸으면 너희는 절제하고 절제된 삶이 그 명분이다. 지금은 배가 불러 군사정부 때 보다 더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
배부런 돼지로 그렇게 받아 처먹고만 살면 나 같은 놈은 뭐냐? 조선도 이러지는 않았다. 헬조선도 선비들이 지켰는지는 몰라도 절제는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절제 자체를 아예 모른다. 2021년 12월 02일 오후 01시 05분 01초 문제인 대통령은 나를 버렸다. 2024년 08월 19일 오전 12시 59분 다수당이 또 나를 버렸다. 이는 결코 돌이킬 수가 없다.
고로 이들은 김대중과 노무현을 버렸다. 이는 불변의 진리다. 그러니 앞으로는 김대중과 노무현 누구도 너희들과 연결시키지 마라. 돼지 끼새들! 누가 뭐래도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잘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처음 부터 국가보안법으로 가려고 이 일을 시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안보, 안전, 평등, 평화, 공정, 권리 등 모든 것이 이 속에 있다. 아마 균형발전도 이 속에 있었는데 촌놈들의 욕심이 이를 망쳤다. 쉽게 말해 김대중 85년이 모두 이 속에 있다. 이는 김대중 정신이고 삶이고 모든 것이다. 그런데 운동권에서 이를 절대적 국가보안법으로 돌려 버렸고 또한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 법은 살아 숨 쉬는 움직이는 법이고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085/240 국가보안법으로 만들어 상대당에 넘기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무사안일 주의다. 나라의 가장 중대한 법을 아니면 말고? 김대중도 아니면 말고? 그럼 국민도 아니면 말고? 노무현은?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 계셨으면 박지원과 문제인을 불러다가 귀싸데기를 날렸을 것이다. 대통령이라고 다 같은 급이 아니다.
적어도 군사 정부는 그 속에 국민과 잘 살아 보겠다는 염원이 있었다. 너희들은 민주화 운동할 때 밥만 잘 먹고 뛰어 다니더라. 어차피 민주화 운동하지 않았으면 삼끼새 밥도 못 처먹었을 놈들이란 소리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하루 쌀죽 3끼로 10만 운동권과 싸우게 하냐? 이게 공정이야? 어이! 대장 끼새가 누구야?
대패로 둥주아리를 팍 밀어버리기 전에 가대리를 내밀어라. 김대중, 노무현까지 개무시하며 딸랑 운동권 10만여 명이 영원하리라 생각 하느냐?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운동권 10만여 명만 한 것이 아니다. 박정희도 임기 내내 내려갈 타이밍을 생각했고, 전두환은 임기 끝이 군사 정부의 끝임을 확실히 알았다. 이는 내가 보증한다.
또한 지나가는 개도 다 안다. 이 나라가 민주주의로 가는 것은 박정희, 전두환 뿐만 아니라 농민, 교수, 지식인, 보바, 멍청이, 회사원, 학생, 근로자, 공무원 등 이 나라에 사는 모두가 알았다. 또한 815 해방이 그랬고, 625 전쟁이 그랬듯이 우리 국민 모두의 뜻과 아무 상관 없이 이 나라는 민주주의로 갈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적어도 5천만은 다 안다.
소통이 불가하니 그냥 한 번 믿어 본 것 뿐이다. 그럼 잘 해야지. 그런데 국민을 개무시하며 지 봉급만 챙겨? 귀에도, 눈꺼풀에도 살이 덕지덕지 붙어 이제 아무 것도 듣지도 지보도 못하는가? 그래 숨은 쉬고…, 목멍구에 기름칠만 잘하여 둥주이만 멀쩡한가?
대학원 다니는 동안 집에는 서울의대 다니는 전)처남이나 서울사범대 다니는 전)처제가 자주 방문했고 전)처제는 우리집에서 머물기로 했지만 뒤에 ‘남도의 집’이라는 데로 갔다. 전)처가 쪽은 대부분 서울대 출신이다. 난 대학원 다니면서 친척이나 후배, 동기 등이 각 전공에 여럿 있어 마치 관악산이 물 만난 개구리 같았다.
가끔은 중학교 동기인 한의사 강세팔, 서울시청 7급 공무원, 흥구생명 직원 등과 만나 친목도 했다. 하루는 세팔이가 강보성이라는 동생을 데려왔다. 사천에서 공부를 제일 잘해 서울대 경영대학에 들어왔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애는 똘망똘망한데 대학생이라기 보다 꼭 중고등학생 같다.
서울법대생도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신입 들어올 때 보면 얼굴이 무슨 귀신처럼 허옇고 좀 ‘멍~’해 보인다. 보성이도 비슷하다. “보성아! 넌 졸업 후 뭐 할 거야?”, 돌이켜 보면 이런 질문은 윗사람이 흔히 하는 소리 같다. 노소영도 나 보고 이런 질문을 했는데 나도 같은 것을 물었다.
“형, 저는 돈을 많이 벌 겁니다” 이런!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답을 했다. 사천에서 제일 똑똑한 놈이 기껏 돈을 많이 버는게 꿈이란다. 민주화 운동권도 모두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뛰어다녔다. 순간이지만 그냥 화가 났다. “이 끼새봐라. 넌 공부도 잘 한다는 놈이 돈을 많이 버는게 꿈이야?”, “형님!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암튼 대화가 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했던 서울대 출신의 가장 실망스러운 답 같았으나 돌이켜보면 이 놈이 더 똑똑한 것 맞다. 하지만 당시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뒤에도 세팔이 병원이나 밖에서 자주 만났다. “넌 아직도 돈 많이 버는게 꿈이냐?”, “예, 형님 저는 돈을 많이 버는게 꿈입니다.” 친미! 국민들도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보바처럼 일하지 말고 데모하고 화염병을 던져라.
“야! 넌 머리도 좋다며 그럼 사법고시나 준비해라. 새파란 너 같은 놈이 돈만 쫒는다는게 말이 되냐?” 솔직히 이놈을 만나면 해 주는 것도 없이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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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못해도 나처럼 국가대표가 되겠다거나 뭐 이러면 폼도 나잖아! 그런데 호동이처럼 그냥 돈을 많이 벌겠단다.
세팔이 보고 사법고시 시켜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뒤에 세팔이한테 들었는데 보성이는 사천에서 참 어려운 시절을 보냈단다. 이렇게나 저렇게나 서울대 출신과 사천은 상극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힘든 시간을 보내 지금 저렇게 돈에 눈이 멀었다. 뭐 따지고 보면 나도 사천에서의 생활이 가장 힘들었다.
공부 잘한 놈도 사천에서는 어렵기 마찬가지다. 못해도 내가 서울법대 건물에서 공부하는 서당개인데 사법고시 정도는 치게 해야 겨우 체면 유지 하는 것 아니겠어? 이제 사법고시 준비 할 것 아니면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야! 너 경영대 졸업하고 삼성이나 G전자에 들어갔다고 치자. 내가 G전자 있다가 나왔어.
니가 서울대 나왔다고 월급 더 받을 것 같냐? G전자에 있는 서울대 출신들도 다 나보다 월급 적게 받았어! 알아. 아니면 길거리에서 골라골라부터 할 거야? 서울대 졸업장 빼고 뭘로 돈 벌건데…, 까불지 말고 사법고시 준비해! 그러면 니가 G전자나 다른 데로 가더라도 변호사 자격증 있는 놈이 돈도 더 받지 않겠냐?
니가 경영학과에서 뭘 배우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배우는 경영은 전부 사기다. 사기 잘 친다고 돈 많이 버냐?” 암튼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를 주었다. 고향 동생 교육 시킨다고 한 말이니 경영대 교수님들은 이해해 주시길.., 뭐 그런다고 내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님. 관계를 끊어버리려 했더니 어느 날 세팔이가 함께 식사를 하자고 불렀다.
아마 보성이 2학년 쯤 됐을 꺼다. “동배야! 보성이가 사법고시 준비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보성이 법조인 만들기에 돌입했다. 암튼 이런 일도 재미난다. 물론 공부는 보성이가 했지만 우리는 응원을 열심히 했다. 신림동 고시촌도 찾아가고 서울대 경영대 졸업장은 못 받아도 사법고시는 합격하라고 푸시도 했다.
나 보다는 세팔가 신경 많이 썼다. 한의원에서 거꾸로 매달아 놓고 피가 머리로 가야 공부를 잘 한다나? 몇 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고생하여 보성이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암튼 이 강변은 서울에서 꼴통 같은 삼촌 2명 만나 개고생 했다. 솔까 지가 뭘 알고 그 고생 했겠어?
삼촌들이 막무가내로 시키니 방법이 있나? 보성이는 윤석열 대통령 보다는 확실히 똑똑하다. 난 현직 대통령하고 농담 해도 되는 사람이다. 그러니 경호실에서 설치지 마라. 내가 소송으로 한참 고생할 때 보성이가 사법연수원에서 나왔다. 이제 곧 변호사가 되겠지만 같이 식사하는데 ‘아이코! 이놈이 뭘 알겠어?’
하는 생각이 들어 내 사건은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보성이는 내 사건을 대충 안다. ‘보성 변호사! 이 형님 개고생 하고 있다’ 첨부의 사진 중 대학원 졸업 때 황교수님과 한의사 한 놈과 같이 찍은 사진이 이 강변이다.
세팔이는 내 친구라는 이유로 MBC 특집 ‘침’으로도 방영되고 황교수님과 서울법대 교수님들 침도 놔주며 서울대 15동 주치의 비슷했다. 소송 중 가장 가슴 속 깊이 와 닿은 법조인은 이용훈 대법원장이다. ‘경찰, 검찰의 밀실에서 조작된 수사 기록이 아니라 법원에서 구술로 진실을 가리자’고 강조한 말이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도 이용훈 대법원장이다. 바로 몇일 후 이를 사과했다.

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87/240
세상을 바로 봤는데 사과를 그렇게 쉽게 하나? 스스로의 입에서 얼마나 훌륭한 말을 했는지도 모르나? 법은 한 걸음 나가기가 이렇게 어렵나?
물론 간단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진짜 진실은 재심과 소송법으로 가려진다. 이는 단지 검찰이나 법원의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궁극적으로는 재심 혹은 여기에 준하는 결정이다. 즉, 검사나 판사가 하급 결정에 대한 다른 확정적 증거로 결정을 바꾸는 것이다. 아니면 확정적 증거가 없는 결정에 대한 결정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은 서울법대 중심으로 세상이 흘러가다 보니 잘못된 결정을 잘 알면서도 이를 바꾸지 못하고 그 속에서 사건이 흘러가는 것이 마치 자연스러운 것 처럼 서로 인식 시키며 살아왔다.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여러 이유와 명분이 있겠지만 잘못은 잘못일 뿐이다. 결국 이는 상고나 재심 등에서 결정을 바꾸어야 한다.
원심 결정을 내린 검사나 판사가 그 책임을 져야하는데 우리나라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 책임을 덮어 주려고 수십 명이 매달려 모든 과실을 숨겨주면서 서로 이를 공(功)으로 만들어 이 또한 실적으로 잡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가장 잘 알았다.
2003년 검사와의 대화가 실패하고 2005년 같은 일이 발생했다. 그러니 법원 뿐만 아니라 경찰의 재수사, 검찰의 항고, 재항고, 법원 1,2,3심 모두 모든 원심 결정을 무시하고 피고와 원고의 주장으로 판단 해야한다. 국민들이 지금 알고 있는 상식대로…, 지금은 경찰에서 사건을 접수하여 일개 형사가 기록을 살짝 조작하면 이것이 공신력 있는 공문서가 되어 대법원까지 사건번호만 7개가 자동으로 생성된다. 자판기처럼…, 그동안 그 사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검사나 판사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자리만 지킨다.
알고 보면 전혀 빛나지 않는 자리다. 어차피 경찰은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기 때문에 경찰의 결정 역시 검사의 결정이니 아무도 그 결정을 바꾸지 못한다. 국민들이나 일선의 변호사도 이를 잘못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는 아주 잘못됐다.
그래 놓고는 형식만 상고니 항고니 등등 많이 만들어 놓는다. 그래서 로스쿨이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로스쿨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누군가 이 사건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각하가 맞겠지만 당시 상황으로 볼때 징역형을 바로 때렸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운동권은 이를 살짝 살짝 정동배가 전혀 눈치 못채게 비켜가서 나중에 짠 하고 말하려 했을 수 있다.
그런데 세상이 어디 운동권만 사나? 그렇다 보니 엉망 진창이 되어 버렸다. 물론 여기서 엄망 치창은 정치적 노림수를 노린 사람들의 기준이다. 나의 기준에서 보면 너무 명백하다. 나는 노총리 직인을 위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런 직인이 있는 줄도 모른다.
최근까지 내가 지보 못한 것은 바로 진리를 연결하는 능력인데 이는 위의 주장을 모두 엎을 수도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도 알고 또한 각 개별 사건의 부당함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주장하고 또 곧 사과하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그래서 어느 방법이 옳다고 보기는 무리다. 한쪽을 편들면 반드시 한쪽이 무너지게 된다.
그렇다고 진리의 연결이 개인의 억울함을 묵살시켜서는 안된다. 세상은 법을 배운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이쯤 되야 내도 겨우 둘의 중요성을 알기 시작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이를 아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조인이 개입 된 사건의 경우 진리의 연결 논리는 많이 배제 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법으로 장난을 칠 수 있지만 모든 국민이 이런 법만 배우며 사는 것이 아니다. 다들 법을 안 배워도 못지 않게 바쁘게 산다. 그렇게 보면 또 이 사건이 모두 마고 그런다. 다 맞는데 괜한 소리했나? 내가 20년을 주장해 왔는데 결론은 다 맞나?
088/240 이용훈, 양승태, 한덕수 같은 분들은 그냥 언론에 아무 말도 안 해야 하나? 무슨 말을 하든 국민들은 반드시 오해를 하게 된다. 이 나라 국민들은 참으로 특이하다. 사이비 종교나 진짜 말도 안 되는 사기꾼 앞에서는 얌전히 청강도 잘 하는데 진짜 삶에 중요한 분들의 중요한 말들은 전부 무시해 버린다. 결국 나처럼 20년을 돌아야 자리를 찾나?
아마도 이렇게 된 것은 바로 진리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그동안 국민을 기만한 법조인들 때문이지 않나 생각한다. 모든 논리가 맞다 하더라도 사람을 20년간 이지경으로 끌고가는 법은 없어야 한다. 그럼 김대중이 틀린 것이가? 암튼 이는 모르겠다. 그냥 현상만 보면, 대통령도 서울대 박사들이 이정도 밖에 안 되냐며 의아해 할 것이다. 난 진작에 알았다.
이 일은 단순한 투쟁의 길이 아니다. 알면 모두 확신한다. 얼핏보면 마치 사회의 틀이 깨어지는 줄 알고 마냥 기다리면 될 것 같은 착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는 먹물이 똥물이 된 어리석은 자들의 생각이다. 세상이 깨지는 것은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자리만 지키는 자들 때문이다. 이를 바로 잡은 것 뿐이니 이런 싸움에서 교도소에 간다면 감사히 처박혀 살아라.
바로 네가 인간 쓰레기니…, 한 마디로 행동하는 양심이다. 이제 퍼포먼스가 왜 필요하고 빠꾸가 왜 필요하며 왜 구술로 진실을 가려야 되는지도 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이를 이해시키는 것은 어렵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그래서 지켜만 봤다. 그 양심의 여정은 많이 고단하다. 앞으로는 윗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밥그릇 챙기는 시대는 끝났다.
내가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이 끝냈다. 김대통령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다. 그냥 상식이 통하는 기본 세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운동권이 여기에 반항한다. 아무래도 권력 맛에 많이 취한 것 같다. 이 사건이 처음 시작 될 때 난 언론 등에 글을 기고하면서 학교가 교육은 뒷전이고 밥그릇만 챙긴다고 분노했다. 돌이켜 보면, 그 밥그릇도 교육이다.
상아탑 최고의 자리에서 밥그릇을 가르치지 않으면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상아탑이 모래성이 되면 안 된다. 우리는 공자왈 명자왈 하다가 신학문을 보고는 바로 헌짚신처럼 유학을 버렸다. 신학문도 당시는 별로 배울 것이 없던 시기의 학문이다. 당시는 땅에서 나오는 소출로 먹거리를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그 신학문을 휠씬 뛰어 넘고 있다. 이제는 진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따라서 상아탑이 현실을 적시하는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 되야 한다. 아니면 똥멍구 된다. 나 또한 서울대 교수들 만큼 똑똑하지는 못했지만 마찬가지로 허공에 있는 이상만으로 세상을 살았다. 하지만 누구 보다 현실을 깨닫는 데는 내가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누차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는 것이 내 시작의 미천함이다.
나의 고향 마을은 그 지역을 벗어나 대학을 간 사람은 전부 서울법대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서울의대나 경영대, 연고대 등에 합격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내가 태어난 조장 양달 마을은 바로 옆집 한 살 위 하행구는 서울법대 수석으로 들어갔고, 5살쯤 위의 두집 건너 김기태 형도 서울법대, 바로 위 원전 마을은 박근혜 정부 때의 검찰총장으로 서울법대, 바로 아래 신산 마을은 지금 진주지청 검사로 서울법대 출신이다.
그러니까 태어날 때부터 주변에서 서울로 간 사람들은 전부 서울법대에 들어갔고 그 외 나머지는 기술자가 되거나 경상대 등 주변의 대학을 갔다. 난 중학생이나 고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서울에는 서울법대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서울대는 몰라도 서울법대는 알았다.
부산기공에서는 순이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으나 우리가 사용하는 도면은 서울미대 김교만 교수의 작품들이다. 첨부의 위쪽은 전부 김교만 교수의 작품이다. 초기 미술도장이 시작될 때는 서울대 김교만 교수가 부산기공에 내려와 모든 기틀을 다듬고 선수들 지도를 했다. 참으로 오래 됐지만 김교만 교수 이후의 도면 등은 그 만큼 완성도가 깊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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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뒤에 문제를 여러 차례 출제 했지만 그렇게 정교하지 못했다. Sophisticate 알지? 아마도 당시 서울대 응용미술학과 교수였을 것으로 추정 되는데 요즘은 우니나라에 이런 교수가 없다. 전부 입만 살아있다. 학생들도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입만 좋아한다.
산업디자인, 건축, 공학, 조경 등의 마무리는 도면을 완성하는 것이고, 시각디자인 등 그래픽은 시방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교수가 거의 없다. 학생들도 별로 배우고 싶지 않다. 그냥 그림이나 그리고 논문 흉내나 내는 것을 좋아하지 도면 배우는 것을 귀찮아 한다.
그러니 기업에서도 대충하고 결국 현실은 설계 따로 디자인 따로 간다. 사실 디자이너들이 하는 렌더링, 스케치, 뎃생 등은 최종 디자인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디자인 과정에서 아주 좋아 보이는 모델들이 완성품으로 보면 항상 별로인 것이다. 계속 반복 되는 데도 모두 모른 척 한다.
어쩌면 구자경 회장은 오히려 이런 것을 잘 알았을 수도 있다. 의외로 경영자들은 보는 눈이 매우 정확하다. 그렇게 나를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있지도 않는 장인 정신이나 예술 비슷한 흉내로 이를 강하게 배척한다. 초창기 디자인이 우리나라에 상륙하여 미대에 정착해 오면서 중요한 것들은 전부 빼고, 과정에서 편리한 것들만 살아 남았다?
나도 정착이 잘못 된 것으로 알았으나 지금 김교만 교수의 작품들을 생각해 보니 오히려 처음에는 이런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솔까 고등학교 디자인 전공자와 학사, 석사, 박사가 무슨 차이야? 학위만 가졌지 뭐를 더 배운 것이냐고? 모두 도면하나 완성하지 못하는데 무슨 공부를 얼만큼 더 했냐고? 제발 우기지만 말고…,
우리나라 디자인과 석박사나 교수들 중에 도면이나 시방서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있나? 아니면 이게 뭔지는 아나? 도대체 당신들과 고졸 디자인 전공자와 무슨 차이냐고? 그렇다고 관련 법을 아나? 제도를 아나? 나라가 어떻게 돌아 가는지를 아나? 왜 초창기의 모든 것을 놓쳐 버렸는지 모르겠다. 그럼 목소리라도 줄이자.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학과장이니 학장이니 하며 자리만 꿰차고 거들먹거리는 자들이 많다. 나라가 한 마디로 골 때린다. 학생들도 입만 살아 움직이는 놈들만 따라 다니지 마라. 교수님! 교수님! 하지만 그 교수가 니 인생 갈아 먹고 있다. 차라리 학생들 인생 농락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놈은 좀 나은 편이다.
그냥 학벌만 있고 자기가 하는 짓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놈들이 많다. 무조건적인 스승은 더 이상 이 나라에서 없어야 한다. 세상은 잘 찾아보면 진짜 존경 받을 만한 사람들이 많다.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정이니 유행, 대중심리, 매체 등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는 소리다. 대부분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 멘탈 갑이 되라.
교수들은 정신 차릴 일이 전혀 없으니 학생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우선 학생들은 동정심이나 유교사상, 학벌, 막연한 존경 이런 것들을 버리고 냉철해지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좋은 것이 좋다는 놈들은 전부 뒷통수 치는 놈들이다. 좋게 가자고 하면 무조건 궁디부터 주 차버려라.
난 김교만 교수가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서울미대 나온 따님은 한 번 만났다. 이분의 도면은 모든 형식을 잘 갖추고 있고 세부적인 부분과 설명도 놓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렇다. 나도 설계자격증이 있고 상구형이나 현선이 형도 모두 자격증을 가져 있지만 김교만 교수의 도면 만큼 정교하지는 못했다. 김교만 교수는 좀 교만해도 된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이는 내가 반성하고 있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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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초창기 김종필 안기부장이 한국선수단을 꾸릴 때 기능대회 준비를 한 김교만 교수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물론 진짜 초기 미술도장 지도교수는 다른 분이다.
이제와 돌이켜 보니 왜 난 그렇게 못했나 하는 후회도 된다. 일제 때 측량 등을 통해 그만큼 잘 정비된 행정이 지금 엉망이 된 것처럼 미술도장도 마찬가지다. 부산기공 출신이 왜 갑자기 서울대 교수를 들먹이냐 싶겠지만 초창기 부산기공 대부분의 전공은 서울대 교수 중에서도 실력 있는 분들이 내려와 그 틀을 잡았다. 내가 알기로 그 2번째가 김교만 교수다.
부산기공 미술도장은 서울대 김교만 교수가 준비했고 난 기능대회 시작하면서 같은 도면으로 연습했다. G전자에 파견되서는 212코리아라는 디자인전문회사 서울대 출신 은병순 사장의 팀장 석준이가 내 코치였다. 그뒤 줄 곳 서울대 출신들과 G전자에서 매우 가깝게 지냈다. 난 G전자에서 서울대 경영대 출신과도 알고 지냈다.
이후 주변에 친척 등 대부분이 서울대 출신이다.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냐가 이렇게 중요하다. 주변 사람들이 이 만큼 중요하니 전국 꼴지가 전국 수석을 할 수 있지 않았겠나? 우리 또래가 100만 명이니 100만 등이 1등 한 꼴이다. 그러니까 여유 시간에 커피를 한 잔 마셔도 서울대 출신들과 대화했다.
소송 등 포함하면 내 인생은 서울대 출신과 함께 하거나 최병렬이나 나경원도 서울대 출신이니 이들과 싸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나지 않나? 전국 꼴찌가 전국 1등들과 소송이라니…, 암튼 내가 여기서 최종 승리하여 그 이유를 묻는다면 난 처음 부터 서울대 출신들과 친했다. 그리고 전공을 가리지 않았다. 뭐 열린 사람 비슷하다.
기초 단어를 배워도 서울대 출신들에게 배웠고 이를 부꾸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서울대 출신들은 아주 쉬운 것을 물어 봐도 무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마 처음 부터 이들이 나를 무시하거나 귀찮아 했으면 어쩜 중간에 포기 했을 것이다. 보통의 경우 무시부터 하고 시작하지만 서울대 출신들은 아주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준다.
거의 중학교 1학년 수준을 물어보는 데도 이들은 아주 진지하게 가르쳐 준다. 주변에 서울대 출신이 있으면 가서 아무거나 한 번 물어봐라. 진짜다. 뭔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왕이면 서울대 출신한테 물어봐라 그래야 지식도 구하고 마음이 편하다. 우선 마음이 편한게 너무 좋다. 그래야 계속 항문을 닦을 수가 있다.
그가 친구든 후배든 스승이든 난 서울대 하면 한 번 더 쳐다봤고 항상 ‘와~’ 해주었다. 그렇다 보니 나이 60이 다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닮아 있다. 서울대 출신들이 길거리서 코를 찐하게 파고 있으면 난 욕을 안하고 따라 팠다. 미술학원을 처음 갔을 때도 홍대앞 학원에 서울대 출신이 자주 놀러왔고, 목동 미술학원도 원장이 서울대 출신이다.
그렇게 이 나이 되고 나니 내가 서울대 동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서울대 출신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암튼 나와 서울대 하고 무슨 관계인지 잘 모르겠다. 영어 공부를 하다가 막히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주변의 서울대 출신을 찾아 물었다.
황교수님도 영어 논문 해석을 하여 물어보면 ‘내가 물어 보라고 했다고 진짜 영어를 물어보는 놈이 있나?’ 하시는 눈으로 쳐다 보며 영어를 가르쳐 주셨다. 그러니까 난 영어도 하버드 출신 서울대 교수님께 배웠다. 전공이 아니라 그냥 영어를 배웠다.
난 수출을 오래하여 각국의 바이어들도 많이 안다. 이들과도 일하다가 시간나면 영어를 물어봤다. 그러면 놈양들도 잘 가르쳐 주며 기쁘하더라. 그래도 아직 영어를 잘 하지는 못한다. 내가 필요한 영어는 적기에 적정의 실력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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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난 통역 할 것도 아니고 그렇게 줄줄줄 잘 할 필요가 없다. 영어를 잘 해도 그런 일은 성격에 안 맞다. 난 12년을 200여 명의 학벌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냈으나 나와는 나이 차이가 좀 있다. 학벌 좋고 무식한 놈한테 물어보면 항상 화를 냈던 것 같다.
황교수님 수업 시간은 서울대 여러 전공에서 오는 석박사 과정생들이 수두룩하여 항상 강의실이 꽉 찬다. 동기들과 좀 친해지려면 좋은 점수를 받으면 안 되지만 황교수님 수업은 별개다. 우선은 지도 교수님이고 공부해도 어차피 황교수님은 나에게 넘사벽이지만 그래도 흉내는 내어 보고 싶은 분이다. 참고로 황교수님은 강남 설계 하신 분이다.
뭐 솔까 그냥 잘 보이고 싶다. 왠지 황교수님께 조금만 인정 받아도 그냥 내가 좀 잘난 것 같은 느낌…, 교수님 수업은 몇 개의 팀으로 나누어 진행됐고 우리팀은 대략 7-8명 정도 됐다. 교수님께서 주제를 주셨고, ‘남산과 서울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하라고 지시하셨다.
대충 기억하는 팀원들은 지금 서울대 교수로 있는 성종산 박사, 동기 지순, 서울과고 출신 도시공학과 잘 생긴 석박사과정 두명, 지리학과 이옥준 박사 등이다. 교수님께서 직접 남산에 올라 설명도 해주시는 등 분위기가 좋았다.
종산 선배는 그 중 가장 어른이며 잘난 사람으로 선유도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많이 하신 분이라 후배들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가는 인물이다. 참고로 정확치는 않지만 도시공학과 두 명 중, 한 명은 서울과고생 때 G전자 연구소 우리팀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서울과고생들이 다 잘 생겼을 수도 있고…, 그냥 온실 안에서 잘 자란 화초 같다.
종산 선배는 회의를 진행하며 도시공학과 잘 생긴 친구들이 진행과 발표를 하면 좋겠다고 하자 다들 별 말이 없다. 그러자 탄력이 붙은 종산 선배는 누구는 자료조사 누구는 뭐뭐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선배님! 이 친구들이 발표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친구야! 얘네들이 똑똑하잖아”,
“뭘 기준으로 이 친구들이 똑똑하다는 겁니까?” 지순이는 그동안 보편적으로 내편을 잘 들어 주었지만 지금은 나를 매우 의심하는 눈빛으로 바라 봤다. “아니 동배! 이 친구들은 수능 만점 맞은 사람들이잖아”,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지순이도 고등학교까지 전교 1등을 몇 번 했니 어쩌니 하더니 수능 만점은 못 받았나 보다.
“그러니까 그게 왜 이 친구들이 나보다 잘 한다고 생각하냐고?”, “허! 이 친구 좀 보세. 너 좀 편하라고 그러는데 뭐가 문제야!”, “그래도 자료 분석해서 PT준비하고 발표하는 것은 이 수업의 핵심인데 각자 의견을 더 들어 봐야죠?”, “그럼 누가 팀장이 되어 끌고 갈 사람?” 하며 손을 들어 지리학과 이옥준 박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뇨, 저는 상관없어요”, “봐! 이 친구야 아무도 없지?”, “제가 하겠습니다.”, “허, 참! 그럼 이 친구들하고 정동배하고 투표로 결정하지”, “아닙니다. 선배님! 동배 형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난 진짜 억지로 팀장이 됐다. 종산 선배님은 그동안 나에 대한 좋은 인상이 많았다.
내가 종산 선배 설계 사무실까지 찾아 갈 정도로 가까웠는데 그 날 완전히 찍혔다. 지순이도 나를 매우 염려하는 눈으로 본다. 그렇게 종산 선배는 나머지 자료를 수집하여 나에게 보내라 지시하고는 사실상 빠졌다. 나 역시 좀 심했나 생각했고 막연하기도 했다.
특히 종산 선배한테 대든 것이 영 마음이 불편했다. 자료를 수집하여 교수님 마음에 들게 발표하는 것이 중요 포인터다. 종산 선배는 그래도 내가 많이 밉지는 않았는지 꾸준히 자료를 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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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공학과 석박사 이 친구들도 “동배형! 우리가 준비한 자료입니다” 하며 내밀었는데 내가 준비하는 PT와 방향이 좀 달랐다.
서울가고 출신 후배들! 지순이가 너희들 편든 것은 너희가 딸랑 수능 만점 맞았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잘 생겨서 그랬을 것이다. 내가 키만 조금 더 켰으면 전국 꼴찌였던 내편 들어 줬을 것이다. 지순이 저놈은 그냥 눈만 높아가지고…,
종산 선배는 “동배야! 그래도 이 친구들이 똑똑한 것은 사실이니 이들의 자료를 많이 참고해서 발표 준비를 하도록 해라” 종산 선배도 황교수님을 많이 의식하는 것 같다. 아니면 나 때문에 이 과목은 망쳤구나 하며 포기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친구들 자료는 아무리 봐도 우리 주제와 맞지 않았다. 관계라는 것은 상관관계를 말한다.
자료가 많고 정리 되어 있는 것이 아무래도 도시공학과 다른 수업 시간에서 발표한 자료를 나에게 넘겨 준 것 같다. 이들 자료는 거리 교차로 및 주요 시설들을 연결하여 사람들의 이동 동선을 빅데이터화한 자료인데 이것은 남산과 서울의 관계에 크게 상관이 없다. 물론 서울만 놓고 보면 일리가 있으나 남산을 포함하면 우리 주제에서 좀 벗어났다.
종산 선배 주문도 있고 팀원들의 염려도 있어 참고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너무 맞지 않았다.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냥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사실 종산 선배한테 혼날 것도 감안했다. 난 서울가고나 수능 만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항상 현실주의다. 서울가고든 수능만점이든 그만큼 잘 났으면 잘 하면 된다.
그래서 쓰레기를 재활용 할 생각이 없다. 언제 종산 선배가 찾아올지 몰라 눈치 본다고 쓰레기통에서 살짝 서랍으로 이동은 시켰다. 난 기껏해야 전국 꼴찌다. 발표 전날부터 시작하여 밤을 꼬박 세워 준비한 ‘남산과 서울과의 관계’ 라는 주제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 했다. 프리젠테이션은 2주에 걸쳐 했는데 우리팀이 첫날이다.
교수님과 팀원들 모두 만족하는 것 같다. 팀이 여럿이었는데 내가 발표하고 나서는 다른 팀의 발표에 대해 좀 따분한 표정을 짓기도 하셨다. 팀원들 역시 기대 이상이라 생각했는지 도시공학과 친구들도 자기들 방향이 잘못 됐음을 인정했다. 뒤에 교수님은 프리젠테이션을 소모임에서도 발표 시키자 모두들 환경대학원이 많이 발전했다며 칭찬 일색이다.
년말 송년회도 학교에서 했다. 선배님들이 교실로 들어오면서 ‘아니 송년회를 학교에서 하냐’며 의아해 했다. 교수님은 나의 발표를 한 번 더 보여 주라고 했다. 프리젠테이션은 시각적 효과를 높였고, 남산과 서울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하기에 충분했다. 선배님들 역시 환경대학원이 많이 발전했다며 좋아했다.
대부분 대학 교수님들이데 보람찬 송년회라 했다. 수업시간 발표를 보여주기 위해 송년회까지 선배님들을 학교로 불렀다. 물론 내 것만 한 것이 아니라 혁준이 것과 함께 했다. 이 사건이 터지고 동계 올림픽 유치에 스필버그가 등장하는 등 여기 저기서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기사 등이 많이 있는 것이 마치 내가 시각적 효과를 높여 PT를 잘 하는 것으로 묘사했는데, 사실은 그 내용이 좋았다고 본다.
양교수님 수업을 빼면 거의 모든 수업에서 PT를 잘 했다면 나쁘지 않는 것 아닌가? 난 내용이 좋았다고 확신한다. 이는 황교수님은 아실 것이다. 황교수님은 내용이 잘 표현되어 칭찬하셨지 시각적 효과만 가지고 평가하실 분이 아니다. 이제 졸업시험도 치르야 하고 논문도 준비해야 했다. 황교수님은 나를 잘 안다.
나의 부족한 부분과 장기(長技)가 무엇인지도 잘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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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황교수님 제자 중에도 교수님께 직접 영어를 배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워낙 잘난 사람들이니 아마도 전혀 없을 것이다.
교수님은 졸업 시험을 위해 나에게 직접 영어도 지도해 주셨다. 난 이에 보답 하고자 진짜 열심히 논문 발표를 준비했다. 유교수님, 황교수님, 미대 권교수님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했고 대기 학생들이 같이 참관했다. 논문 발표가 끝나자 논문 심사위원장이신 유교수님께서 벌떡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다. 첨부에 논문 발표 자료 일부가 있다.
“바로 저거야! 앞으로 우리 대학원이 가야 할 방향이 이거야!” 하시면서 박수를 치며 좋아하셨다. 권교수님은 “야! 환경대학원이 많이 변했네” 했다. 서울미대 권학장님은 환경대학원 출신이다. 그래서 환경대학원을 잘 안다며 당신이 다닐 때와 확연히 달랐졌다며 놀라워했다. 황교수님은 그날 나를 뿌듯해 하셨다.
아직도 그날 발표한 자료가 어딘가 있지 않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 날 내 발표 보다 잘 하고 있는 후배는 그 이후로 별로 없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25년이면 나보다 뛰어난 후배가 있기는 하겠지만 나를 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잘난 선배 둔 후배들이 걱정이다.
황교수님께서 이 글을 읽으면 저놈 저렇게 안 봤는데 많이 거만해졌다며 혼내시겠지만 교수님! 세상은 이렇게 안 하면 안 되겠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왜 그런지는 차차 말씀 드리겠습니다. 난 G전자에서 강정화와 가까운 편이다. 물론 정화 생각은 다를 수도 있다. 난 정화를 좋아했고 이것이 이성인지는 모른다. 그냥 정화의 여러 가지가 좋았다.
정화는 서울미대를 나왔는데 영어도 곧 잘 했다. 어느 날 일본어를 배우는 것 같아 “너는 영어를 하지 일어는 왜 해?” 물었더니 그냥 일어를 한 번 배워 보고 싶다고 했다. 당시는 진급을 위해 외국어를 어느 정도 해야 했는데, 계속 올라 가려면 상당한 실력이 돼야 했다. 영어를 계속해도 쉬운 일이 아닌데 일어를 처음 부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대학 때 일어를 조금 배웠다고는 했다. 주말이며 회사에 나가 공부를 하곤 했는데 연구원 200여명 중,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충 정해져 있다. 그 때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은 이후 전부 대학 교수로 갔다. 그래서인지 난 각 대학의 교수들을 많이 안다.
아마도 서울대 출신들 중에서도 내가 서울대 출신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 중의 한 명일 것이다. 전 직원 외국어 시험을 치러야 된다는 지시가 내려왔고 디자인을 직접하는 유일한 고졸인 난 대졸 그것도 서울대, 홍대, 카이스트, 유학파 동료들이 대부분인 연구원 200여명 중에서 상당한 성적을 받았다.
요즘으로 치면 형편 없는 점수지만 순위로는 어느 정도에 들었다. 그 소문이 정화에게도 들어 갔고 그래서인지 정화도 나를 좋아했다. 가끔은 내가 영어를 물어 보기도 했다. 정화는 성격도 좋고, 인품이 최고다. 난 여기 저기서 일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정화만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절대로 내색하거나 거만하지 않는다. 서울대 출신 중에서도 최고에 속한다. 착한 성품 등을 봤을 대 아마도 지금쯤 어렵게 살고 있지 않을까? 남편이 카이스트 출신이라 했는데 좀 독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착하면 어렵게 산다. 화염병도 막 던지고 해야 월급도 몇 천씩 가져간다. 이런 정화가 JPT를 쳤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G전자 본사는 수출 영업팀도 있다. 이들은 보통 외국어 몇 개는 네이티브다. 그러니까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나하고는 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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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항상 향수를 뿌리고 머리에는 번쩍번쩍 돼지 기름도 바르고 말의 반은 영어를 섞어 쓰는 깔끔한 엘리트들이다. 이들 중에는 로열패밀리도 몇이 있다.
배우 허성태도 있었다. 수출 영업팀 직원이 “저 친구는 영화 배우 한다고 일에는 별 관심이 없어“, 하자 내가 ”저 못생긴 사람이 영화 배우를 한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난 9년을 이들과 일했다. 그런데 정화가 외국어 시험에서 본사 전체 1등을 했다. 저게 사람인가 싶다. 뭐 JPT 만점을 받았다나…, 이러니 내가 정화를 싫어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정화와 뽀뽀를 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아니 할 수가 없다. 더 많이 좋아해도 방법이 없다. 정화는 스스로 키가 172Cm라고 했지만 주변에서는 175는 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항상 단화, 일종의 실내화 같은 것만 신고 다녔다. 그래도 160 정확히 158밖에 되지 않는 나하고는 너무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이다.
대학원 다닐 때 정화 가족을 만난 적이 있다. 미대와 음대 사이에서 인사를 했다. “엄마, 정동배씨야! G전자 같은 팀에 있다가 이번에 환경대학원에 왔어”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만 큰 장벽에 갇힌 것 같다. 아버지는 190이 넘어 보였고, 엄마도 180정도에 동생도 190은 되는 것 같았다.
내가 가운데서 인사를 했는데 아무도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그들의 얼굴은 모른다. 정화는 집에서 키가 제일 작단다. 뭐 집안에서 별명이 꼬맹이라나? 거인국에 난쟁이가 갑자기 쏙 들어 갔다가 나온 느낌이다. 하지만 정화도 환경대학원 수업에 오고 나도 미대에서 정화와 같이 수업을 듣는 등 학교에서도 가깝게 지냈다.
환경대학원은 수업을 듣기 전에 강의계획서를 읽고 참고 서적들을 미리 공부하여 그 수업을 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방학 때도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대학원이지만 참으로 정신이 없다. 겨우 강의 계획서를 찾아 들고 복사를 해야 하는데 어디서 복사 하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아무나 잡고 물어 보려고 계단을 올라 가는데 순간 정화를 보는 줄 알았다.
법대 2층 계단 쯤 되는데 소인들 속에서 진격의 여성 거인이 내려오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그냥 반가웠다. “저기 이것 복사 좀 하려는데 어디서 합니까?”, “너 신입이구나? 복사 할 줄도 몰라. 따라와” 처음 부터 반말을 찍찍 갈겼지만 정화 생각에 그냥 좋게 받아 들였다. 정화도 언제부터인지 나하고 서로 반말했다.
그녀는 나를 행정실로 데려가더니 “여기야” 했지만 난 가만히 서 있었다. 일반 사람들은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난 지금까지 내가 복사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G전자에서는 많은 시방서를 보냈지만 모두 총무실에서 복사를 해주어 총무과 직원들 하고도 가깝게 지냈다.
그래서 행정실에 가면 복사를 해주는 줄 알고 서 있었다. “뭐하니? 가서 카드사야지” 카드를 사라니, 난 카드하면 비자나 마스터 카드만 안다. 그래야 외국에서도 쓸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 카드를 돈을 주고 사라해서 다시 얼굴을 쳐다봤다. “얘가 왜 이리 멍해. 3천원 짜리와 5천원 짜리가 있으니 하나 구입 해” 참으로 어이가 없다.
복사하러 왔는데 카드를 구입하라고 한다. 그래서 강의계획서를 내밀며 “복사…,” 했더니 “너 복사 처음이구나” 하더니 카드를 구입해 복사를 하면 돈이 자동 계산 된단다. 그러면서 복사하는 것을 가르쳐 주며 엄청 거만하게 굴었다. 뒤에 알았고 한 참을 만나도 그때 그녀가 누군지 몰랐는데 돌이켜 보니 바로 노소영 같다. 사천 내려와서 생각이 나더라.
물론 아니라고 우기면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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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것은 환경대학원에 그렇게 키 큰 여자는 노소영 밖에 없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은 회사에 감사해야 한다. 직장을 벗어나면 모든 게 돈이다. 난 그때까지 돈 내고 복사하는 것을 몰랐다.
서울대학교에서 그 몇 푼이나 한다고 코 묻은 돈을 받는단 말인가? 재벌 사모님은 쉽게 돈 내고 하는 복사였지만 G전자 기능공 출신인 난 시방서 복사를 그렇게 많이 했지만 직접 복사하지도 않았고 또, 돈 내고 복사하는 것도 몰랐다. 서울대학교 총장님! 복사 정도는 무료로 할 수 있게 하시지요? 서울대생이 대기업 기능공 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애들을 그렇게 소심하게 키우면 쪼잔해집니다. 디테일을 볼 수는 있겠지만 좀팽이로 키우면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리만 차지하고 올라가면 뭐합니까? 큰 일을 해야지…, ‘경관의 해석’ 수업은 참으로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교재의 대부분이 한자다.
다들 그냥 대충 읽은 한자지만 난 전날 옥편을 찾아 한자 한자 우리말로 작게 적어야 들을 수 있는 수업이다. 이번 일로 공무원들과 일하며 또 하나 특이 한 것을 알았는데, 난 공무원들은 다들 한자를 잘 아는 줄 알았다. 그런데 기본이 안 된 것 같더라.
나의 한자 실력은 황교수님에 비하면 그 자체가 비교 대상이 아니고 동기들과도 상대가 안 되는 것이지 그래도 한자 기본 실력 정도는 된다. 일개 하급 공무원 따위가 논할 수준은 아니란 소리다. 나 원 창피해서 이 일은 접기로 한다.
또한 황교수님은 내가 범접 할 수 없는 진짜 기라성이다. 수업을 듣고 나면 살이 진짜 1Kg 이상 빠지는 느낌이다. 학생들도 대략 50여 명이 넘는다. 교실이 꽉차서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도 긴장하며 서로 말을 조심한다. 특히 황교수님 명성에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다. 딱 한 명만 빼고…,
“복잡해지는 인구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도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꼭 신도시가 최선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신도시가 최선은 아닐지 몰라도 그렇다고 신도시 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아무튼 미워 죽겠다. 우리 황교수님 수업에 꼬박꼬박 반박이다.
쉬는 시간에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노소영이 황교수님한테 너무하는 것 아냐?”, “노소영이 누군데…,” 난 노소영이 누군지도 몰랐다. “저기 오네” 우리 동기들 중에 말이 가장 많은 혁준이가 바로 꼬리를 내리며 “안녕하셔요. 누님!” 했다.
서로 수업 이야기를 좀 하다가 노소영이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아니?”, “누구신데요?” 다른 동기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눈치다. “야아! 이 학교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도 있어?”, “난 모르는데요!”, “형, 이분이 노태우 대통령 따님 노소영씨 잖아” 이렇게 황교수님께 덤벼드는 멀대가 노소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뒤로 자주 만나 커피도 마시며 내가 기능올림픽 끝나고 노태우 대통령 훈장 받은 이야기도 해주었다. 잔디 밭에서 친구들과 토론하고 있는데 노소영이 오더니 커피를 사겠다며 동원으로 데려갔다. 커피를 마시고 오면서 졸업 후, 뭘 할 것인지 물었다.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 해봤다고 했더니 워크힐 뒤편의 설계를 부탁했다.
워크힐과 레스토랑 등 많은 제안을 했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뒤로도 여러 가지 사업 제안을 했다. 졸업 후에도 SK 나비에서 여러 사업 이야기도 하고, 학교로 오고 나서는 노총리께서 오셨으니 인사라도 와야 되는 것 아니냐 했더니 바로 왔다. 노총리와 많은 대화를 했는데 솔직히 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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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대학원 입학도 노소영은 1등으로 만점 받았고 아마도 난 기본 점수로 꼴지 120등 턱걸이다. 물론 학번은 서로 다르다.
경제 이야기를 하다가 두 분이 다투 듯이 토론을 하는데 참 잘난 사람들이라는 것 외는 별 생각이 없다. 우리말도 영어도 아닌 대화를 하는데 암튼 엄청났다. 학생들과 영화를 볼 때는 최태원 회장을 소개 시켜주며 가족과 함께 영화도 보고, 민정이 학원을 내가 데려 가기도 했다. 등 이렇게 SK 준페밀리에 들었다. 혁준이 이 놈도 참 재미난 친구다.
난 본능적으로 말 많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 10명이 모이면 그중에 한 명은 말이 많다. 말 많은 놈의 99.99%는 쓸모가 없다. 같이 있으면 시간 낭비다. 그래서 난 이들 대부분을 싫어한다. 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정치는 못한다. 내가 만난 그 말 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을 고르라면 혁준이다.
이 친구는 말이 많치만 빠질 때는 확실히 빠진다. 보통의 경우 상대가 싫고, 싫고, 싫어해도 계속 말이 많다면 이 친구는 어느 선에서는 항상 빠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에 진심이다. 와이프도 인터넷 음악 동아리서 만나 결혼 할 정도다.
한 번은 답사 지역의 한 카페에서 피아노가 있는 것을 보고 교수님이 분위기 좋으니 누가 가서 한 곡 해라고 하자 혁준이가 두 말 않고 가더니 스티비 원더 곡을 불렀는데 참으로 잘했다. 피아노를 다룰 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프로다. 난 이날 혁준이한테 감명 받았다. 황교수님 사모님께서 고양꽃박람회 설계를 같이 하자고 했다.
난 대학원 마치고도 황교수님 댁을 자주 방문했다. 뭐랄까? 교수님을 모시고 가면 왠지 내가 자랑스러웠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들도 전부 가깝게 지냈다. 다른 제자들과 달리 난 거의 황교수님 준페밀리다. 물론 이는 내 혼자 생각일 수도 있다. 또한 이는 약간 위험한 말이다.
그만큼 황교수님 제자들은 진심이다. 내 제자들과는 급이 다르다. 그래서 사모님과 가깝게 지냈고 함께 일도하고 대화도 자주했다. 고양꽃박람회 고양관이 가장 중심인데 둘이서 그 설계를 맡았다. 난 입구의 안내판, 영상, 팻말 등을 맡았지만 공사 등 대부분을 같이 했다.
설계 도면을 가지고 사모님과 논의하러 갔더니 디자인은 전혀 언급이 없으시고 나보고 제작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난 기능올림픽 출신이지만 내가 직접 제작해야 되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했다. 정확히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G전자에서는 도면을 그리면 목업은 협력업체에서 만든다. 그러면 ‘이렇게 좀 바꾸고 여기는 좀 다듬어 주셔요’ 하면 업체의 숙련된 기술자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준다. 필름, 인쇄. 목업 등 모든 샘플은 협력업체 기술자가 하지 디자이너가 직접하는 경우가 없다.
내가 디자인을 하면 검토 후 시공사에 넘기기 위해 사모님과 논의를 하는 줄 알았는데 디자인은 전혀 언급이 없다. 그래서 디자인을 어디서 시작해 어떻서 끝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공사가 시작되어 박람회장을 갔더니 사모님이 보이지 않았다. 농협중앙회 본사 남상무 보고 “상무님! 사모님은 어디 계시죠?”,
“저기서 일하고 계십니다.” 했다. 행사장 한 쪽을 보니 사모님께서 작업복에 공구 주머니를 차고 못질을 하고 있다. 난 정말이지 말이 안 나왔다. 황교수님 사모님이기도 했지만 서울대 출신에 하버드에서 공부하신 분이 망치로 못질을 하고 계신다. 그래서 남상무 보고 “아니 왜 저걸 사모님이 하십니까?” 했더니 남상무도 어쩔 줄을 몰라했다.
“사모님 왜 이런 일을 직접하십니까?”, “응, 정교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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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배열하는 것도 전부 디자인이라 맡기면 계속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원예는 직접 한단다. 난 참 좋은 직장을 다녔다.
사모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릎을 꿇고 못질을 하는데 난 G전자에 다니면서 한 번도 저런 일을 하지 않았다. 가끔 행사가 있으면 업체에서 다 알아서 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정장 차림에 주로 가서 식사만 하고 오면 됐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어디까지 따라가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연세도 있으신 사모님께서 작업복을 입고 공구 주머니를 차고 있는 모습이 좀 귀엽기는 했다. 사모님 화내실란가? 여러 가지로 대기업과 서울대를 비교 해 보면 우리 나라는 대기업이 훨씬 더 좋다. 그렇게 황교수님께도 많이 배웠지만 사모님께는 리얼 실무를 배웠다.
사람들은 전공이라는 것을 주면 그것이 모든 환경을 극복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같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사모님 같은 분이 이런 일을 직접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여차여차하여 고양꽃박람회 오픈 전날 겨우 마무리 했다. 당시 난 여기저기 일을 동시에 진행하여 거의 잠을 제대로 못잤다.
첫날 행사는 관계자만 출입이 가능했고 오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오신단다. 제일 먼저 고양관을 찾게 되니 나와 사모님이 가장 먼저 대통령을 맞이하게 된다. 거의 마무리를 짓고 다른 일들도 정리할 겸 좀 쉬었다가 대통령을 맞이하려고 집으로 갔다. 그런데 집으로 들어 가면서 아파트 입구에서 눈이 핑 돌더니 하늘이 휘청하며 얼질어질 했다.
순간 너무 피곤하여 그 자리서 쓰러지는 줄 알았는데 어찌어찌하여 집으로 들어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잠에 들었다가 깨었더니 벌써 대통령이 다녀가신지 이틀이 지났다.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뵐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만나지 못했다. 당시 좀 무리하기는 했다.
그동안 모아온 마일리지로 전)부인과 플로리다로 갔다. 플로리다는 상구형 동생 남편이 유학 중이라 소개로 가게 됐다. 상구형 동생은 한 때 종로구 적선동에서 나하고 같이 살았다. 그래서 서로 잘 안다. 난 바쁘게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보상 정도로 생각하고 갔다. 가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낚시 정도만 하다가 오려고 두 달 예정으로 갔다.
미국에 도착하자 상문이는 우리를 위한 많은 준비를 해두었다. 나름 신경썼으나 난 그냥 조용히 쉬고 싶었다. 그런데 가자마자 주립도서관에 어학코스를 신청했고 주말이면 교회를 정기적으로 가야하고 플로리다 주립대 박사과정도 소개시켜 주었다.
저녘이면 유학생들이 이집 저집 초대하여 쉴 날이 없어 한국에서 보다 더 바쁜 날들을 보냈다. 이러려고 온 것이 아니지만 전)부인이 어학과정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냥 다녔다. 난 어학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가끔은 와쿨라스프링이라고 타잔 영화 찍는 곳에서 내셔널지오그래픽 촬영 장면도 보고 예술가들이 모여 그림 그리는 곳도 가봤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곳에서 지금 나의 안전가옥 배원과 같은 곳을 봤다.
낚시는 딱 한 번하고, 올랜도도 다녀오고 했는데 나교수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보스톤으로 올라 오란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자 교민 중 누군가 차를 빌려 주어 우리는 보스톤까지 운전하며 가다가 인에서 하루자고 또 운전하면서 계속 올라갔다. 중간에 노퍽에 들러 수족관도 보고, 워싱턴 D.C.에서 우주 박물관, 백악관 등 구경하며 작은 언덕이 올랐다.
펜타곤을 내려다보며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이는 백악관이 들썩이거나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라 그냥 넘어간다. 세상에는 우물안 개구리가 모르는 무서운 비밀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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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뉴욕에 도착해 이들과 헤어졌다. 뉴욕은 친구들이 많다.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유학중인 용대가 나왔다.
내가 온다고 뉴욕에서 옐로캡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 양문돌이형하고 상사로 있던 분 등이 나오기로 했는데 모두 나오지 못한다고 하여 용대 집에서 몇 일 머물렀다. 용대는 뉴욕에서 상당한 커기의 집에 살고 있다. 문돌이형은 밀야도자기 설립자 아들인데 뒤에 전무가 회사를 빼앗아 지금은 그 주인이 아니다.
문돌이형은 회사에서 나와 좀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 만나기 껄꺼러워 나오지 않은 것 같다. 다음 날 보스톤으로 가자 나교수님은 매우 받겨 주었다. 난 당연히 그럴 것이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사부님 성격이 만만치 않아 고민됐다. 그런데 외국이라 그런지 사부님이 서울에서 볼 때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 동안은 항상 눈치를 봤다.
그날 밤 리만 펠로우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에 초대받았다. CNN, BBC, ABC, NHK 등 세계 각국의 유명 앵크들이 총 출동해 있다. 가끔 영어 배우려고 뉴스로 봤던 기자들이 다 모인 것 같다. 모두 유명 기자들과 하버드 교수들인데 나만 별도로 초대 받았다. 난 밥만 축내러 갔기 때문에 부엌으로 갔고 마침 그곳에 G전자 전자레인지가 있었다.
“어! 교수님 이거 내가 한건데…,” 사실 내가 했다기 보다 난 코스메틱 디자인만 했다. 나교수님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하버드대학교 리만 펠로우 기자들이 모인 자리로 나를 불렀다. 난 사부님께 누가 되거나 무서워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불려가 합석했다.
교수님은 제자라며 한국에서처럼 칭찬했고 저 전자레인지 만든 친구인데, 기능올림픽을 몰라 그게 뭐냐고 물었다. 난 ‘International youth skill olympics’ 라고 했더니 이 기자들은 대부분 기능올림픽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누구는 동경대, 북경대, 하버드 등 세계 각국의 명문대 출신이니 하버드서 서울대는 중요하지 않지만 기능올림픽 출신이 그곳에 온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라 했다. 한국 정부가 개무시 하는 기능올림픽을 하버드는 알아 준다. 그러면서 나교수님과 이야기가 잘 됐는지 바로 하버드 박사과정에 OK 됐지만 학비가 만만치 않았다.
얼마 후, 리만에서 각국 기자들이 학비를 책임져 주겠단다. 졸지에 공짜로 하버드 박사를 받게 됐다. 다음날 GSD를 구경하다 화장실을 가게됐다. 화장실 앞에서 인도 여학생을 만났는데 그녀는 내가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 발음이 약간 서툰 것도 있고 내가 집중해서 들을 일도 없었지만 대충 나와 비슷한 사람이 안에 있다며 안내해 주었다. 그 넓은 실습실에서 여학생이 혼자 열심히 모형을 만들고 있었다. “Where are you from?”, “South Korea”, “어! 한국분이셔요.” 알고 보니 이분은 황교수님께서 말한 이영희 선배다.
하버드는 황교수님 제자 중에 진윤이도 있어 만나기로 했지만 그날 한국에 들어간다고 하여 만나지 못했는데 영희 선배를 만났다. 영희 선배 남편은 바로 옆의 MIT에서 박사를 밟고 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에도 스튜디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영희 선배를 뒤로하고 하버드 숙소로 돌아왔다. 난 하버드 안의 기숙사에서 머물렀다.
뒤에 이영희는 서운여대 교수, 남편은 한성대 교수로 갔다. 남편 분이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 한성대 교수로 가자 “참 안 됐어 어쩌다 그렇게 안 풀렸지…,” 할 정도로 서울대 교수깜이었나 보다. 우리는 압구정동 식당에서 부부모임도 했다. 남편분이 MIT에서 세라믹을 전공했는데 나도 세라믹에 대해 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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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세라믹에 대해 아주 재미나게 이야기 했더니 이영희 교수와 전)부인은 뭔 말인지 모르겠다며 흥미 없어 했다.
아마도 남들로 치면 군대이야기 비슷하게 들렸나 보다. 난 국내 최초의 인덕션 개발에 참여하여 세라믹을 좀 아는 것 뿐인데 나중에 들으니 남편 분이 나를 꽤나 똑똑한 줄 알더라. 그래서 이도 해명한다고 애먹었다. 암튼 좀 아는 것도 힘들다. 난 실무 세라믹, MIT는 이론 세라믹…,
사부님께서 내일 하버드 관광을 시켜 주신단다. 교수님은 눈짓으로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 하는 것 같다. 이병주 차장은 한구일보 논설위원으로 백지영 아나운서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리만 장학생으로 하버드에 오신 분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날 하버드를 구경하며 경영대학원을 지나는데 이차장님은 갑자기 입에 침이 튀도록 설명했다.
“저곳이 김대중 대통령께서 공부하시던 곳이다.” 그러면서 말이 엄청 많아졌다. 나교수님도 남편이 그렇게 말 많은 것은 처음 본다며 의아해 했다. 다음 날 나교수님은 정동배가 하버드에서도 사고치게 생겼다며 서울대학에 자랑했고 그 다음 날 황교수님의 전화가왔다. 서울대에 전임자리가 났으니 들어 오란다.
물론 정규교육과정은 아니고 고위정책과정이다. 다시 하버드에서는 나를 빼고 나교수님과 리만 장학생들이 모여 토론했다. 결과는 하버드 졸업장은 몸값을 올려 주는 것이 사실이나 졸업하고도 교수자리는 쉽게 구하는 것이 아니니 서울로 돌아 가는 것이 좋겠단다. 그렇게 팔자에 없든 하버드 박사 과정 혹은 박사를 버리고 서울로 돌아왔다.
고위정책과정은 국회의원 등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것 비슷한데 나를 통해 컴퓨터도 좀 배우는 것이 어떨까하고 나를 전임으로 임명하려 했던 것이다. 그동안은 지금 대통령정책자문실에 있는 덕훈 뭐시긴가 하는 선배가 했는데 이 선배가 대통령정책자문실로 옮기고 내가 그 자리에서 전임 행사를 하면 된다.
그런데 이석현 의원이 컴퓨터는 배워 뭣하냐며 반대하여 난 지금 기억에도 없는 다른 과정 전담 강사가 됐다. 선배들이 질투하니 조심하라는 등의 말이 있었으나 난 그렇게 비중을 두지 않았다. 난 서울대 강의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수님께서 시키시니 그저 영광일 뿐이다. 참으로 특이한 놈 맞다.
동시에 난 서울음바에서 멀티미디어 타이틀도 여럿 출판했고, 여주 세종대왕 기념관 조감도, 서울시 서초구 경관 시뮬레이션, 서울남부지원 송파구 삼성건설 감정평가, LG화학 청주 조감도, 충청도 문당마을 조감도 등도 너무 많이 하여 정리조차 되지 않는다.
난 이미 고양시 화정동 신도시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25평 작은 아파트였으나 매우 만족했다. 기능장려금도 년간 500만원 정도 나오고 시간 강사만 뛰어도 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 위의 프로젝트도 한 건에 몇 백씩은 됐다. 아파트는 분양 받을 때의 기본 대출을 빼면 담보 대출도 하나도 없다. 어떤 면에서 서울대학교 졸업장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다.
기능올림픽 시작 하면서부터 계획했던 내 사업도 이미 시작했고 확장 시기를 점치고 있었다. 배운 것이 도독질이라고 항상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나면 한국산업은행에서 필요한 자금을 받아 사업을 확장 할 워밍업를 조금씩했다. 서울대학교 졸업장은 나를 계속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갔지만 그래도 기능대회에 대한 미련은 쉽게 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고 기능대회 심사하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또 후배들은 계속 나오고 가능한 빨리 그들이 이어 받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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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서울대 졸업장을 가진 선배로서 기능과 무관한 학벌만 있는 대학교수들의 폐단을 어느 정도 막고 물러날 생각이다.
솔직히 말해, 나도 순수하지 못했고 선수 또한 거부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렇다고 후배들에게 똑 같은 세상을 물려 줄 필요는 없다. 더 좋은 환경을 물려 주자는 것이 아니라 더는 나빠지지 않고 훈련에 집중 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내가 간 길 다음은 많이도 아니고 조금만 더 좋은 훈련 환경을 물려 주고 싶다.
그런데 보통의 대학 교수들은 세상에 물똥을 튀겨야 그것이 곳 권력이라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차라리 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고졸 출신 돌공이 한 번 찍어 누르면서 만족해 하는 아주 똘이아 같은 자들이다. 이들과 싸운 일은 다음에 정리해 보겠다.
난 홍이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이라는 자와 옳고 그름에 대한 이견으로 지독히 싸운적이 있다. “정동배! 네가 서울대 졸업장 하나 있다고 서울에서 대학 교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너의 그릇은 지방으로 가는 것이고 지방은 홍이대가 꽉 틀어지고 있다.
앞으로 너는 시간강사도 못하게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학 교수면 부정을 저지르고도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는 나라다. 하지만 사람을 잘못 골랐다. 난 대학 교수 자리에 그렇게 목메는 사람이 아니다. 여기저기 대학에 지원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반드시 그 대학에 들어 간다기 보다 이 분야에 나를 알리는 길이라 생각 했다. 몇 군데서는 ‘정동배 그 놈 내가 막았어!’ 할 만한 대학도 있다. 나도 사람인데 그 정도 눈치가 없겠는가? 우리나라 미대 쪽에서 난 왠만한 대학 교수보다 유명하다. 하지만 별 관심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천에 깔려 있고 좀 더 가치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놓고 고민했기 때문에 꼭 강사나 전임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다. 박춘섭 과장이 국장으로 승진하면서 선수회 김영삼 선배와 합심하여 선수 출신들을 대거 심사위원으로 영입했다. 나도 등달아 심사에 계속 참여했다.
서울기계공고에서 열리는 서울지방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는데 영등포 조폭 두목 출신이 선수로 참여했다. 좀 유명한 사형수인지 교도관의 감시가 심했다. “심사위원님! 저놈은 아주 무서운 살인마입니다. 사람을 아무 생각도 없이 칼로 쑤시는 놈이니 절대로 매달을 주면 안됩니다.” 했다.
난 ‘뭐 죄수가 잘 해봐야 메달을 따겠어?’ 정도로 생각했다. 이 친구는 내가 대회장에 들어서면 내쪽으로 뛰어오며 배꼽 인사를 했다. “심사위원님! 안녕하십니까?” 교도관이 한 말도 있고 해서 “예” 정도만 하고 애쓰 아는 척을 안 했다. 한 번은 밑의 똘마니들까지 동원해 내가 지나가면 일렬로 쭉 서서 배꼽인사로 “안녕하십니까?” 했다.
그래서 이러지 말라고 하자 더 이상 그러지 않아 편하게 심사 했다. 말은 참 잘 들었다. 문제는 대회가 끝나고 심사 하면서다. 좀 과장하면 이렇다. 물론 나보다 잘하는 선배나 후배는 있다. 그래도 전세계에서 내가 제일 잘 한다고 보면 나와 견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이 살인마다.
난 고민을 많이 했다. 왜냐하면 내가 메달을 주면 이 사형수는 무기수가 되고, 또 다음에 메달을 따면 20년 형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제도가 이들을 대회에 출전 시키는 것 또한 이유가 있다. 고민 후 다른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들으니 대부분 내 뜻에 따르겠단다.
무엇보다 선수 출신을 인정하는 이 때 함께한 심사위원들은 매우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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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공정하게 심사했고 압도적인 점수로 금메달을 땄다. 죄수가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렇게 잘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물론 피해자를 생각하면 그 간절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도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법이 이런 것은 교도관 주장과 달리 살인에도 여러 이유가 있다. 법이 완벽하지 않는 이상 무조건 피해자와 살인마로 구분하면 안 된다. 논리적 추론이지만 이번 나의 결정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후 일산에서 여생을 보내기에 충분한 명분이 됐다고 본다.
그 이후도 여러 차례 심사에 참석했다. 한 번은 수원공고에서 재심이 들어왔다. 김현선 교수와 둘이 갔는데 재심이기 때문에 심사장 구분 없이 똑 같이 평가한다. 이 선수의 아버니는 안양시청 공무원인데 민원담당으로 평생을 보낸 사람이다. 자기 말로는 사실상 안양시장급 되는 공무원이라는데 아마도 안양시 주사나 과장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경기도 어느 대학 교수가 하필 현직 공무원 아들로 장난을 쳤다. 아마도 이 분은 수원공고에 기자들을 불러 모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재심 조건으로 선수 출신 중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심사를 하면 따르겠다고 했다. 나하고 김현선 교수를 불렀는데 그 중에서도 나의 결정이면 무조건 수용 하겠단다.
난 현선이 형의 의견이면 또한 거부하지 못한다. 하지만 현선이 형은 나의 의견을 매우 존중해 주었다. 우리는 프로다. 수원공고 강당을 들어서면서 바로 장난친 것을 확인했다. 세부적인 심사를 할 가치가 없다. 그런데 강당에 들어서자 현선 선배에게 전화가 몇 통 왔다. 정부 행정 결정이 바뀌는 경우는 없으니 재심은 하되 결정을 바꾸지 말란다.
현선 선배가 전화를 받고 고민하다가 내 의견을 물었다. “형! 이 선수 아버지는 알바 아니고 이 작품을 보십시오. 이게 말이나 됩니까? 금메달은 못줘도 은메달은 줘야 될 선수에게 꼴찌를 준다는게…,”, “형 고민되시면 빠지시고, 내가 책임질 테니 결정 바꿉시다.
정부 결정이면 더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지 정부라고 잘못된 것을 마치 잘 한 것으로 끌고가면 저런 심사위원이 또 나올 것이고 그러면 계속 이런 일이 생길 것 아닙니까?“ 난 결정을 바꿀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당시는 어렸다. 결국 현선 선배도 ”나도 너하고 생각이 같다“ 면서 둘이서 결정를 바꾸었다.
그후 대한민국 행정 결정을 최초로 바꾼 사람이라며 조심하라는 경고도 좀 받았다. 헉! 뭘 어떻게 조심하라고…, 똥물에 빠지라고…, 맞다. 난 어렸다. 이런 어린 사람도 뜻을 이루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 사실 이도 서울대학원생이라는 타이틀이 있어 가능했지 아니었으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설혹 연좌제 같은 것이더라도 이는 분명 잘못됐다.
그러니 서울대 출신 정도 되지 않으면 이 나라에서 함부로 덤비지 마라. 이후 이 친구는 평가전을 거쳐 국가대표가 됐다. 그러면서 안양시청 공무원과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이분이 뭐라고 소문을 냈는지 이 분야에서는 정의의 사도 비슷했다. 대한민국에서 정의의 사도로 사는 것은 꼬이는 인생과 같다.
심사하면서 선배들과 이런 저런 대회며 선수 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한 선배가 이를 공단에 고자질 한 것 같다. 한 번은 대회 심사 중에 공단 직원이 와서, “저희들에게 의견이 있으시면 여기에 적어 주십시오” 하여, 난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미술도장은 우리나라에서 기능올림픽에만 있다.
그럼 대회 끝나고 아무도 모르는 미술도장 출신은 무엇을 해야 하나? 영어로도 Painting and Decorating 이다. 따라서 종목명을 장식미술로 바꾸어 달라’라는 의견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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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처음 이렇게 종목명을 정할 때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도서 십진분류법에 장식미술이 상위에 있어 이를 피하려고 미술도장으로 작명한 것 같다.
기능올림픽은 사회의 어떤 분야 보다 고도의 기술을 다루지만 제도상 가장 하위에 놓아 용어도 상위의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 랄지! 이는 개똥이 돌쇠로만 불려야 하는 것 비슷하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 아닌가? 여기가 대한민국이지 조선은 아니지 않는가?
아무튼 전문 기술인이 제도적으로 힘이 없어 단순 기능공과 구분되지 못하고 있지만 일반 세상은 이를 폄훼하기에 충분하다. 결과적으로 난 제도상 장식미술 직종이 기능올림픽대회 위에 올라가게 만들었다. 그러니 앞으론는 기술올림픽으로 불려야 맞다.
영어로 Operator 혹은 Crafts, Labor 는 기능인이고, Wright가 숙련된 기능인이고, Skill은 기술자다. Skill 위는 Technician, Engineer가 있다. Technician은 실무 중심의 기술자, Engineer는 기사, 기술사 등으로 그냥 엔지니어라 부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그 중간 쯤에 있는 기술을 바닥에 내려 놓고 진짜 조도 아닌 것들이 위에서 거들먹거린다.
김종필 국정원장이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를 잘 알았다. 그래서 기능올림픽은 고졸이지만 최고의 기술자들이기 때문에 서울대 교수들을 직접 지도자로 붙여 선수는 서울대학원생 비슷했다. 그런데 어중이 떠중이들이 많이 생기면서 이들은 뒷배로 올라와 우리를 개무시하기 시작하면서 헬조선이 다시 탄생한 것이다.
무식한 놈들이 반상의 도리라며 이름을 이렇게 개판으로 지었다. 놈개 끼새들! 이런 놈들은 욕을 쳐먹어도 싸다. 이름이 이러니 딸랑 공단 직원 놈 끼새가 우리를 눌러야 권위가 선다며 계속 찍어 누른다. 사람을 존중하기 더러우면 그 기술만이라도 인정해라.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놈들이! 도대체 민주화 운동 안 했으면 기술자도 찍어 눌러야 하나? 이 무식한 끼새들이 지가 뭘 알고 그랬겠어? 앞으로 보면 뭔 말인지 알 수 있다. 지구상의 그 많은 나라 중에 지 입에 밥 먹여 주는 사람들을 이렇게 천대하려고 노력하는 권력은 없다. 기본은 알고 저들끼리 싸우는 것이 세상이다.
그런데 이 나라 권력은 꼭 지 밥그릇을 차며 무시한다. 임진년에 그많은 장인들이 일본으로 넘어갔고 그들은 대부분 헬조선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 할 수는 없으나 암튼 그렇게 우리는 300년 후 36년의 치욕을 겪었다. 그런데 먹고 살만하니 헬조선 흉내내면서 또 기술자를 천시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도 운동권이…,
그런다고 법률이나 제도상 문제가 발생 할 것도 없다. 다만 난 우리 직종의 위상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사후 문제에 도움을 주었다. 나, 알고 보면 세상에 좋은 일 많이 한 사람이다. 독일 같은 나라에서 마이스터 등으로 불리며 대우해 주는 것과 우리는 매우 대조적이다. 한국은 이를 흉내내어 마이스터고등학교라 한다. 지금의 이 사건과 똑 같다.
김대중 대통령은 기업이나 기관이 아니라 사람에게 그 권리를 주었더니 서울법대 출신 최병렬, 조규향, 나경원 등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튼 한심하기 짝이 없다. 독일은 마이스터라하여 사람에게 그 신분을 주는데 한국은 기관에 주면서 사람을 여전히 공돌이 취급해야 공무에 권위가 선다. 안보, 안전, 한자, 법도 제대로 모르는 것들이…,
공단에 ‘사후 관리팀’이 있으면서도 이들은 그저 선수들을 눌러 그들의 위상을 올리는데만 관심이 있다. 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못딴 것이 아쉬울 뿐이지 그래도 메달리스트다. 그런데 공무원도 아닌 자들이 마치 공무원 흉내내며 “어이, 정동배 어떻게 왔어?” 이들이 이러면 누가 우리를 대우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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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태도를 바꾼 것은 따로 있다. 내가 서울대학원을 들어간 후 공단에 들어 가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가 되고 들어가면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온다.
도대체 무슨 시험을 어떻게 치르면 이렇게 개차반만 직원으로 들어온단 말인가? 아무튼 시험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사실 이 사건이 진행되지 않았으면 난 이들을 공무원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공단과 소송이 진행되자 이들은 직무유기 했으나 공무원법에 의한 공무원이 아니라 처벌이 안 된단다.
같은 법에 따라 이들도 지금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국가 공무원법에 의한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무슨 끼새 공무원 같은 건가? 선수들을 기능공이라 부르는 것도 법에 의해 이런 현상이 생긴 것 같다. 기능올림픽 국제대회 작품은 5일간 바탕, 레터링, 채색, 확대, 조색, 도배, 창 등 여러 기술의 조화로 평가된다.
미대나 음대, 체대를 가려면 길어야 3시간 어떤 것은 단 몇초로 결정된다. 도대체 무엇이 기능이고 무엇이 학문이란 말인가? 용어의 잘못된 선택으로 수십 배 어려운 일을 하고도 기능이라며 폄하 한다. 한 번은 어느 지방대 출신이 선수를 가르치며 공단 쪽 일을 하는 것 같아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이 선생은 마치 선수들을 위하는 척하며 맞장구를 치다가 미대 이야기를 하면서 대입 시험 뎃생과 그래픽디자인 직종 케릭터 디자인이 도대체 무슨 차이냐고 했더니 어떻게 자기가 들어간 대학 입시와 기능 대회가 비교 대상이냐며 심하게 화를 냈다. 이 끼새는 분명 공단 똘마니 고문관일 것이다.
이놈은 한성 지방대 출신이다. “정선생님! 00고등학교 기능훈련 지도교사 000입니다”, “예”, “저 끼새들요. 진짜 무식합니다. 수업도 안 들어가고 하루 종일 기능 훈련만합니다. 선수들과 할 일이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십시오. 저놈들은 정선생님이 직접 상대할 애들이 아닙니다.”
아마도 이놈은 내 명함에 서울대라는 소속을 보고 알아서 긴다. 그곳에는 백여 명의 기능지도자(대부분 고등학교 교사들임)들이 있었는데 나만 서울대 소속(?)인 것 같다. 공단에서도 신경을 쓰고 하니 나를 엄청 똑똑하게 생각했거나 같은 끄나풀 정도로 안다.
“한성대면 서울 본교 사범대 쪽에 박대감님이 계시죠?”, “예, 박대감님을 아십니까?”, “지금 지방 캠프스에는 없지만 얼마 전까지 지혜선 교수님도 계셨고요?”, “예, 서울대 출신인 줄 알았는데 한성대도 잘 아시내요?”, “제가 그분들 밑에서 배웠습니다.”, “그럼 우리학교 선배님이십니까?”,
야 이놈아! 서울대학원에 한성대 출신은 단 한 명도 들어온 적이 없다. “아뇨. 저도 기능올림픽 출신입니다. 미술도장 직종, 그 두 분이 지도하셔서…,” 갑자기 표정이 확 바뀌더니 몸둘바를 모르는 것 같다. “아닙니다. 저도 공부도 못하고 무식합니다. 그래도 지도교사 정도면 학생들을 좀 인정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했더니 머뭇머뭇하며 다른 교사를 아는 척하고 가더니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순이 선생님은 나를 한 번 버렸다. 하지만 난 아직도 순이 선생님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순이 선생님은 그 똑똑한 애들을 데리고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학교 공부로 우리를 나무란 적이 없다.
항상 기술을 우선해 주었고 우리를 조금도 무시한 적이 없다. 부산기공 선생님들은 그런 면에서는 참으로 휼륭한 분들이다. 실업계의 표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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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술을 이놈처럼 폄훼하는 자가 있으면 앞장서서 혼내 주신 분들이다. 실업계에서 입시반을 운영하며 국영수 강조 할 것이면 애초에 인문계 교사로 가라. 난 국영수를 전혀 중요하게 지보 않는다. 이놈의 첫 마디에서 적어도 서울대 출신이 아니란 것은 알았다.
서울대 출신은 절대로 남을 깔고 지보 않는다. 내가 만난 그 많은 서울대 출신 중에 이놈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나도 미대 출신이다. 어떻게 미대에 들어 가는지 알고 그들의 학력 수준이 어느 정도 인지도 안다. 그런데 이 무식한 놈이 기능 선수를 깔보고 있다. 미대나 체대, 음대생도 공부 안 하고 하루종일 실기만 하는 것을 난 잘 안다.
도대체 이놈 머리는 장식이야? 대학 졸업한지 얼마 되지도 안은 놈이 지 고등학교 시절을 완전히 잊고 있다. 난 200여 명이 넘는 잘난 미대 출신들과 적어도 12년 넘게 같이 생활했다. 그런데 이 놈이 내 앞에서 국영수를 놓고 머리가 어쩌구 저쩌구 한다. 그럼 서로 머리 나쁜 놈들끼리 좀 도우며 살지 굳이 자기 제자들을 깔고 눌러야 만족하나?
공단 일을 하는 선생들 중에는 이 놈이 제일 충신인가 보다. 그러니 유유상종이다. 공무원이나 공무원 흉내내는 놈이나 고문관 키우는 것은 똑 같다. 세금이 남아도니 이런 일도 생긴다. 고문관은 일시적 효과를 낼지는 몰라도 그 속에 진정성이 없다. 국민을 졸로 보는 놈들의 수법이다. 민주화 운동한 놈들이 이를 가장 악용한다.
속된 말로 대학 편입에서 캐릭터로 시험치는 곳도 있고 그나마 이도 하지 않는 대학도 있다. 이는 단순히 사회 풍습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문제가 이런 일을 가능케 한다. 법률적으로도 얼마든지 피 할 수 있는데 아무 고민도 안 하고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고민을 했다면 그래야 그 위에서 굴림 할 수 있으니 모른 척 한다.
솔직히 우리나라에 이 정도 머리되는 미대 출신은 없다. 머리도 나쁘고 실력도 없는데 대졸이라는 이유 하나로 시건방을 뜬다. 그래서 내가 청와대 그 실장에게 ‘전국민의 대졸화’가 필요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발씨놈들이 관리만 편하자고 하는 짓이 아니고 사람을 깔고 눌러야 거들먹거리기 편하거나 이익이 생긴다고 본다.
조선도 이래서 망했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오히려 장관이나 국회의원, 법관들을 개똥이 소똥이로 부르고 기능인을 장인님이라 부르면 뭐 어떻게 되냐? 그나마 장인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공돌이로 불러야 언론도 살고 권력도 서고 막 그러나? 법관, 장관, 국회의원을 개똥이, 소똥이로 하면 좋겠는가?
방송이나 영화 등 제작자들도 그 한성대 출신과 똑 같이 이런 사회를 만드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다들 수준 미달이다. 암튼 내가 이렇게 제안하면 회의도 하고 몇 차례 공청회 비슷한 것으로 종목명이 바뀔 줄 알았는데 다음 대회에서 바로 이름이 바뀌었다. 얼마 후 공단에 일이 있어 들어 갔다.
“대회 종목명을 바꾸는데 어떻게 선수들 의견도 안 듣습니까?” 했더니, “아! 선수 중에 서울대 출신이 있는데 그분이 바꾸었습니다” 했다. 살짝 구성혜 선배를 생각했다. 그러자 “여기 보십시오” 하면서 내밀었는데 내가 작성한 딱 한 장의 서류만 있는 파일이다. ‘헉!’ 내가 서울대 출신인가? 그럼 난 뭐지?
그날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암튼 말조심해야지…, 국민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선출직 공무원의 할 일이다. 선출직 공무원은 정규직 공무원에게 채찍을 가하거나 그들을 감시하며 독려해야 한다. 국민을 감시하거나 독려하는 것이 아니란 소리다. 그러면 정규직 공무원들이 국민을 관리 감독하면서 나라가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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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국민이 소송이나 진정을 넣으면 이는 상대방을 향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니 공무원이 이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반면, 재심을 신청하면 이는 국가를 상대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결국 고위 공무원이란 재심을 얼마나 해결 했냐가 곧 능력이다. 즉, 재심을 해결하지 못한 고위 공무원은 진급시키면 안된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자체장, 검사장, 법원장, 국장급 이상의 공무원 등 고위직으로 올라 가려면 반드시 재심 결정을 바꾼 사람이라야 한다.
재심 결정을 한 번 바꾼 공무원은 국민을 한 번 바라 본 것이다. 재심을 한 번도 처리하지 못한 공무원은 밥만 축낸 사람이니 이런 자는 진급하면 안된다. 이는 선출직 공무원이 할 일이고 국민은 바로 이런 사람에게 투표 해야 한다. 그런데 여론은 어차피 지키지도 않을 공약만 따진다. 나라가 망하면 언론의 책임이다.
건국 이후 지금까지 서로 속고 속이다 보니 이제는 서로 뭘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도 쉽게 바꾸는 재심을 왜 국가가 안 하려는 걸까? 국가 스스로 망쪼가 들려는가? 그래야 나 같이 억울한 사람도 줄지 않을까? 이래야 조선처럼 망하지도 않는다. 나라가 잘못하여 망해 놓고는 마치 일본 때문에 망한 것처럼 둘러 대기만 한다. 전쟁 한 번 안하고 망했는데…,
부모님은 공무원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는 날까지 한점 부끄럼 없이, 뭐, 이래야 하는데 죽는 날까지 ‘내땅 놔두고 왜 남의 땅으로 다니냐?’ 며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억울하게 살다가 돌아가셨다. 공무원의 잘못은 누가 처벌하는가? 아니 처벌은 고사하고 어떻게 바로 잡는가?
난 기능대회 심사를 하도 많이 하여 모두 몇 번을 했는지도 모른다. 지방대회나 전국대회도 있지만 국가대표 평가전이나 재심 등 다양하게 심사했다. 직종도 장식미술, 그래픽디자인 등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나를 많이 안다. 평균 1년에 두 번은 심사를 하지만 어떤 때는 3번, 4번도 한다.
장식미술 심사를 가면 그래픽디자인 선생님도 만나기 때문에 전국을 돌며 우리나라 거의 대부분의 학교 선생님들을 만난다. 이들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성격이 좀 거칠고 공격적이며 공단에 충성하는 스타일로 학생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 실력 보다 빽으로 승부를 거는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는 보편적으로 온순하고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그래서 영웅을 기다리는 소녀 같은 선생님들이다. 이들은 보편적으로 학생들에게 잘 하고 실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는 어렵다. 이 글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기능대회가 왜 이렇게 중요한지 모를 것이다. 이것은 선수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실업계 고등학교는 기능대회 입상 성적이 좋으면 학교가 교육부 등 정부의 지원을 받는데 유리하다. 따라서 각 학교들은 거의 목숨을 건다. 국가 입장에서는 기술을 최고로 연마한 사람들이 사회에 수백, 수천씩 깔리니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그래서 어떤이에겐 매우 중요하다. 한 번은 서울지방대회 그래픽디자인 직종에 나를 심사장으로 앉혔다.
그런데 정작 국제대회 동기인 그래픽디자인 대표였던 이맹희는 심사위원이다. 이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니 그냥 그대로 따랐다. 뒤에 알았는데 이 대회는 그 동안 내가 결과를 엎는 등 공단에 밉상이 되어 공단의 말을 잘 듣는 선생님들과 맹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나를 한 방 먹이기 위한 작전이다.
그래픽디자인은 100%, 장식미술은 90%가 주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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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부분의 기능올림픽은 100%가 객관적이다. 그러니 여러 명이 짜고 ‘왜 이런 색의 조합이 잘 됐나?’, ‘왜 이 캐릭터 표현이 좋나?’ 등 주장하면 어차피 주관적 평가이니 누가 민주주의를 잘 이용하냐의 문제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주동이 되어 몇 명이 똘똘 뭉쳐 있었고 나머지는 숫자는 많으나 이들을 이길 수가 없다. 민주주의는 독한 놈들이 모여 설쳐야 이긴다. 개똥이다. 지금 운동권과 똑 같다. 조 같은 운동권 끼새들! 기능대회는 시작 전에 심사위원들 사전 교육을 하는데 대략 200여명이 모인다.
난 제일 뒤에 앉았는데 앞을 보니 주어진 소책자를 읽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뿐만 아니라 교육 내용을 귀담아 듣는 사람도 없다. 딱 한 명만 빼고…, 난 국가대표 출신이지만 이런 내용도 항상 귀담아 듣는다. 뿐만 아니라 심사규정도 하나도 빼지 않고 읽는다.
대회가 끝나고 심사 후 작품을 공개 하자고 제안했더니 맹희가 마치 뭔가를 기다렸다는 듯이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왜 안 되냐고 했더니 이런 일은 본부에 연락 후 허락을 받고 해야 된단다. 그래서 그래픽디자인 심사 규정에 심사의원의 합의가 안 되면 심사장이 결정하도록 되어 있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런 규정이 어디 있냐며 우기더니 본부에서 허락을 받고 올 테니 기다리란다. 좀 기다리고 있었더니 그런 규정이 있다며 내가 하자는 데로 한단다. 참 신기하지? 연쇠대 석사 출신 맹희도 자기 손에 그 규정집을 들고 있으면서 그것을 물어 본다고 간다. 가봐야 본부에서도 규정 읽어 보고 확인해 줄 것이 뻔한데?
그래서 직권으로 작품을 1등부터 꼴찌까지 쭉 진열했다. 대략 4-50여 작품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선생님 등 관계자들을 불러 들였다. 선수 한 명이면 담임, 코치, 지도교사, 부모 등 한 직종이면 대략 50에서 100여명이 따라 다닌다. 대회실 문을 열자 험상굿게 생긴 남자 교사 몇이 그들의 앞에서 무조건 터집을 잡을 양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정동배! 너 오늘 죽었다’ 딱 이 분위기다. 그래서 우선 금, 은, 동을 발표하자 역시 여기 저기서 아우성이다. 그래서 작품을 보여주며 1등부터 꼴지까지 있으니 모두 확인하라고 했다. “그동안 괜히 저보고 뭐는 어떻게 합니까? 심사위원님이 지도 좀 해주십시요? 등 어떻게 하면 메달을 딸 수 있는지 많이 물어 보셨습니다.
오늘 이렇게 진열된 작품을 보시고 우리 학생이 어느 정도 수준이고 또 그 학생을 기준으로 상위가 더 잘했으니 무엇이 잘 됐고 부족한지 보시면 됩니다.” 하자 뒤에 남자 교사 한 명이 “그러니까 우리 학생이 메달을 못딴 이유가…,” 하더니 십 몇 등인 것을 보고 그 위로 쭉 있는 작품들이 더 좋은 것을 보자 “맞내” 했다.
뭉쳐서 터집을 잡으려던 선생님들과 다들 할 말이 없자 모두 수긍했다. 맹희는 국제대회 동기로 얼굴만 놓고 보면 내가 만난 여자 중에 제일 예쁘다. 미인이라기 보다 귀여운 스타일인데 아마도 연예인 중에 내놔도 으뜸일 것이다. 그래서 미인계로 나를 홀리려 한 것 같은데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흠집을 잡으려던 선생님들도 모두 할 말이 없다.
이런 일이 있자 보편적으로 온순하고 실력 있던 선생님들이 나를 엄청 좋아하게 됐다. 어떤 때는 대회장에 가면 선생님들이 나를 응원했다. 양쪽 직종을 왔다 갔다하며 심사를 하다보니 1년에 보통 100여명 이상의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대부분 나를 매우 좋아했다.

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107/240

이들에게 난 ‘답답뻥’이다. 답답한 속을 뻥 뚤어주는 사람이라고 방금 내가 만든 신조어다. 이 날의 사건으로 고등학교 선생님들 펜클럽이 생길 정도로 선생님들이 나를 따랐다. 아마도 이들에게는 운동권 10만 명보다 내가 더 답답뻥이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내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 약간 과장하면 실업계 고등학교 등 유사 분야 교수나 선생님들 중 나를 모르면 간첩 비숫했다.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별로 중요한 역할 없이 그냥 자리만 지키는 사람들이다. 얼굴은 몰라도 실업계 고등학생들 대부분에게 난 신화까지는 아니지만 유명세로 다들 안다.
이 일이 있고 경문대학 윤교수를 만났더니 “정교수! 한 고등학교 소똥 선생님 아나?”, “모르는데요”, “소똥 선생님이 정교수 이야기 많이 하던데…, 얼마 전 기능대회에서 소똥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하고 정교수 보내 버릴려고 베루고 있었는데 정교수가 뭘 어떻게 했는지 대단한 사람이라며 오히려 칭찬 하더라” 하더니,
“소똥 선생님은 보통 사람이 아냐 그날 준비 많이 했다더라. 정교수! 조심해! 큰일 날 뻔했어!” 했다. 어떤 때는 심사를 가면 선생님 여러 명이 와서 감사 인사도 했다. 무슨 연예인 비슷한 것 까지는 아니지만…, 암튼 나에게 태클을 거는 몇 명의 선생님들과 공단을 그날 난 한 방에 제압해 버렸다. 울산 화봉공고에서는 그래픽직종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출력을 외부업체에 의뢰했고 이들의 하는 행동이 뭔가 수상하다. 선수가 작품을 그냥 출력하면 되는데 업체에서 굳이 선수들 작품을 받아 출력한다. 난 쿽이나 포토샵, 일러스트 등 그래픽 툴을 잘 다루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수준급이다. 그러니까 이 툴들로 실무를 엄청 많이 했다.
G전자에서 6-7년은 사실상 그래픽디자인(코스메틱 디자인)을 했다. 대학 졸업 후 제품디자인을 2-3년 정도 했기 때문에 어쩌면 그 곳에서 맥을 가장 먼저 배웠고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출력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절차가 이상하여 그 업체 뒤에서 그들의 하는 것을 지켜 봤다. 그랬더니 관계자가 손을 벌벌 떨었다.
“무슨 죄를 짓고 있기에 그렇게 손을 벌벌 뜹니까?”, “심사위원께서 보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자, 심사장과 다른 심사위원들이 나에게 보고 있지 말라고 성화여서 그만 두었다. 그 외에도 유사한 일이 많았다. 다음 날 점심 시간에 한 선수가 울면서 도와 달라고 했는데 진짜 얼마나 억울했으면 닭똥보다 훨씬 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찾아왔다.
자초지종은 출력이 잘못되어 그런단다. 이 말만 들으면 출력이 잘못된 것을 내가 도와 줄 수는 없다. 유추하자면 외주 직원이 이 선수의 모니터를 보면서 마지막 작품을 저장 할 때 순간적으로 작은 질문 창을 띄운다. 그러면 보통의 경우 그냥 창을 닫기 때문에 이 선수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순간 작품이 작게 줄어들며 영어로 된 질문이 뜬다.
pixel을 mm로 환산하는 질문일 가능성이 높고 아마도 선수는 이를 대충 닫았다. 그러니까 선수의 실수가 아닌데 선수는 아직까지도 마치 본인이 실수 한 것처럼 착각한다. 뒤에 이 선수를 한 번 만났는데 그때까지도 난 이런 것까지 예상하지 못해 물어 지보 못했다. 암튼 시간 마이너스 점수가 있으니 출력을 다시 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관련규정 등을 좀 살핀 후 학생의 작품을 다시 출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회의에서 모지방대 오정도 교수가 강력히 반대했다. 그중 두 명 정도는 심사 전부터 공단에서 정동배씨를 도와 주라고 보냈으니 말만하라는 사람도 있다. 전부 페이커다. 운동권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일이 많으니 절대 주의해라. 사기꾼 키쉐들…,
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108/240

심사장 최교수는 같은 홍이대 출신으로 말을 아끼지만 오교수 편이 확실했다. 하지만 두 명은 계속 내편인 것처럼 행동했고, 경상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그 중 사람이 가장 신뢰가 갔다.
그러면 최소 4:3으로 내가 유리했다. 내가 출력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지적한 것은 다들 알고 있고, 심사규정에 마이너스 점수가 10분에 1점씩 3점이 가능했고, 출력을 선수가 직접 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다시 출력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오교수가 한 발 물러나는 척 하더니 그럼 투료로 결정하자고 했다.
그동안 진행상황을 보면 최소 4:3이지 분위기상은 6:1로 내가 절대적으로 유리 할 것 같아 투표로 결정하자는데 동의했다. 그런데 투표 결과 2:5로 져버렸다. 대단한 민주주의다. 아마도 이때부터 난 민주주의 보다 독제의 길을 선택한 것 같다. 독제도 같이 가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대한민국 최고의 장인을 뽑는데 다수결이라니…,
운동권 끼새들이 지 밥그릇 챙기는데 열중인 가운데 나라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개판을 치고 있다. 난 전두환 정권 7년 동안 국가대표를 했고 전후 몇 년을 들어봐도 기능대회에서 1, 2 등을 바꾸는 정도는 들어 봤지만 이렇게 여러 절차를 만들어 놓고 개판을 치는 것은 듣도 보고 못했다. 군사 독제에서는 아주 작은 것에도 부끄러워 했다.
`88년부터 민주 정부가 들어섰으니 대략 12-3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유치원생도 아는 다수결이 민주주의면 이에 따른 병폐를 막는 것이 정치가 할 일이다. 독제 똥멍구도 안 되는 민주주의가 여기저기서 일어 나는데 운동권은 봉급만 올리고 있다. 그러니 이 나라 운동권은 씨를 말려야 한다. 민주주의건 독제건 장인 무시하면 망한다. 알겠어! 개나 소나 자격도 없는 놈들을 민주주의라며 책임 있는 자리에 올랐으면 절차적 민주주의의 부정부패은 없어야 한다. 내 생각으로 경상대 교수를 빼면 모두 오교수와 같은 편이다. 이렇게 편을 짜고 덤빌 수 있으니 작은 조직의 민주주의는 곧 범죄다. 소수의 투표는 절대로 민주주의가 아니니 가능한 투표하지 마라.
결국 누군가를 위한 들러리를 서거나 나중에 후회하는 멍청이일 뿐이다. 도대체 학교 선생들은 이런 걸 안 가르치고 뭘 가르치는 거야. 돌이켜 보면, 이 학생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소송을 통하는 것 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모든 송사는 독제이기 때문에 법조인이 민주주의 운운하면 사기꾼 키쉐다.
민주주의가 안 되어 법으로 가는 것이고 법은 독제로 처단한다. 수원공고에서 처럼 신뢰 할 수 있는 제3자에게 심사를 맡기는 방법 등 다른 견제 장치가 없는 소규모 민주주의는 모두 범죄다. 당시는 나도 무식하여 다수결로 결정되니 방법이 없다. 물론 이런 경우 지금이라도 다수결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략 2-3시간을 토론 후 다수결로 결정했는데 이런 엉터리가 일어났다. 바로 절차적 민주주의에 멍구이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필요 이상의 많은 절차를 만들어 놓고 각 절차에서 그들에게 유리한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면서 마치 간이라도 빼어줄 것 같이 연기만 한다. 캐릭터 심사 시간이 됐다. 바닥에 40여 점을 깔아놓고 선수 번호를 가리고 별도의 비밀 심사 번호가 붙여졌다.
심사위원들은 대부분 각각의 작품을 보며 부분별 심사에 들어갔는데 오교수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 특정 작품 그러니까 캐릭터에 특징을 넣어 놓으면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게 표시를 해 놓고 그 범죄작의 비번만 기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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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미술도장의 예를 들면, 부산기공과 인천기공이 쌍벽을 이룬다. 물론 부산기공이 더 잘했지만 이는 학생들이 뛰어난 것이지 선생님들의 열정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부산기공은 지도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 모두 공무원이다. 공무원은 그냥 시간만 떼우면 된다. 반면 인천기공은 선생님이나 학생이 모두 죽을 각오로 기능올림픽에 올인한다. 그러니까 열정이 대단한 학교다. 그 외 나머지 학교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부산기공과 인천기공 작품만 알면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처럼 오교수는 그가 지원하는 학교 작품과 경쟁학교 작품만 기억하고 창문 옆에 앉아 단 몇 분만에 심사를 끝마쳐 버렸다. 나를 찾아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 학생이 오교수 지원 학생의 경쟁자였던 것이다. 경상대 교수를 빼면 모두 짜고치는 고스톱이다. 절차일 뿐이지 심사 자체가 전부 엉터리다.
이런 경우는 독제가 훨씬 맞다. 대한민국 최고의 장인을 선발하는데 민주주의는 무슨 개불…, 하지만 대회 선배라는 것을 빼면 일개 심사위원이 할 수 있는게 없다. 그동안 공단에서 보냈니 뭐니 하던 사람들도 전부 오교수 옆에 찰싹 달라 붙어 따라 다녔다. 경산대 교수는 애써 끼어 들기를 싫어한다.
선수는 나만 바라보고 닭똥을 흘린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개별 심사 후 합산을 보냈고 절차에 따라 이후 모든 작품을 전시했다. 억울하다는 선수의 작품 3점을 보자 이들의 계획된 범죄가 확실했다. 심사결과가 한참 후 나왔는데 금메달은 역시 오교수 범행대로 굴러갔고 억울한 선수는 4-50여명 중 삼사십 몇 등으로 강등되어 있었다.
실력대로 평가하면 큰 점수차로 1등을 할 선수가 대략 15등 정도 할 선수의 로비에 밀려 거의 꼴지가 됐다. 혼자 두 시간 정도를 고민 했고, 선수 출신인 내가 아니면 누가 이를 바로 잡을 수 있겠는가? 대회 운영위원회에서 서명을 하라고 했다. 도저히 양심에 찔려 서명 할 수가 없다.
이런 잘못을 바로 잡으라고 있는 것이 심사위원인데 이들이 장난을 치면 선수들은 무엇을 믿고 대회 준비를 한단 말인가? 오교수의 행동이 이 선수에겐 대한민국에 대한 불신이다. 그래서 서명 할 수가 없다. 오교수와 그 똘마니들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갈협박에 마치 조폭 같이 행동했다.
이들이 대학 교수라는 것을 빼면 영등포 조폭과 무엇이 다른가? 그 순간 만큼은 내가 금메달 준 조폭 두목이 대학 교수들 보다 휠씬 훌륭한 사람이다. 이 조폭 두목이 어떤 사람을 죽였는지는 모른다. 술먹고 깽판치는 부랑배를 죽였다면 대학교수들은 이제 고등학생이 뭔가 열심히 살아 보려고 출발하는 젊은이의 꿈을 짓 밟은 것이다.
누가 살인마인가? 조폭 두목은 묻지마 살인을 하지 않는다. 마피아건, 야쿠자건 그들은 성실히 살아가려고 배우는 학생을 상대로 평생을 잊지 못할 대범한 범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봐도 대학교수 보다는 국가도 어쩌지 못하는 인간 쓰레기를 치운 조폭 두목이 이 세상에 더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살인마를 풀어주는 제도가 생겼다.
내가 그 살인마를 세상에 돌려 보내길 참 찰했다는 생각이든다. 디테일로 보면 국가는 범죄자를 보호하고, 배운 것들이 사회에 무리를 일으킨다. 그날 밤 난 울산 화봉공고를 떠날 수가 없었다. 모두들 떠나고 화봉공고 정문 앞에서 밤을 지세기로 했다. 집에 전화를 하여 지금의 억울한 사정을 설명했다.
“자기야! 우리도 이제 나이도 있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자!” 전)부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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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 아무 말도 못하고 그만 전화를 끊었다. 내가 기대한 것은 ‘힘들어도 함께 세상을 헤쳐 나가자’ 뭐 이런 것이다.
그날 난 화봉공고 정문 앞에 앉아 날이 밝을 때까지 울었다. 난 내가 고생해서 잘 안다. 공부를 못하니 기술이라도 배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세상에서 배웠다는 놈들이 가는 곳 마다 깽판이다. 발씨놈들! 그런데 지인들은 오히려 타협하라고 난리다. 도대체 누구와 뭘 어떻게 타협하고 협상하라는 것인가?
아침까지 그러고 있으니까 동이 트고 사람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이 일이 비공식으로 김대중 대통령께 보고가 올라 갔을 확률이 99%다. 불의에 항거하는 정동배로…, 대회 운영위원회를 찾아가 같은 사실을 바로 잡아 달라고 했다. 기술위원장은 서울산대 교수로 대학 다닐 때 찾아가 몇 번 인사를 드린 적이 있다.
이 사람 역시 교육공무원이었으나 막상 일이 터지자 어떻게든 자기에게 불똥이 튀지 않게 피해 다닌다. 내가 계속 강조하자 결국 기술위원장, 선수회장 등 책임있는 사람들이 작품 확인차 방문했다. 모두 말을 잇지 못했다. 이는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깔눈만 달렸으며 확인이 가능한 결과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후 어떤 장소로 오라고 했다.
가고 있는데 오교수가 비행기로 급하게 내려 왔다며 지나 가는 나를 보고 엄청 큰소리로 욕을 하고 랄지이다. 나 같으면 뭐 잡고 반성하고 있겠다. 그런데 오교수는 홍이대 동문과 한국예초을 총 동원해 내 강의자리를 막겠다. 일거리를 막겠다. 굶어 죽게 하겠다며 고함을 친다. 이 친미 놈! 나중에는 한국진흥원 등 되려 이놈 동문들이 나 취업시킨다고 난리였다.
한 장소에 도착하자 장관급이라는 노인 비슷한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온갖 무슨 논리를 펴는데 간단한 말을 어렵게 돌렸다. 내가 서울대 졸업장만 있지 무슨 개똥 철학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뭐 솔직히 그 따위 철학자나 이론은 알고 싶지도 않다. 이런 멍청이들을 잘 아는 놈들의 행실을 지금부터 지켜봐라. 놈쌍의 늙은이들!
요약하면 이렇다. 난 신고자인데 이는 나에게 더 불리한 조건으로 각 항목의 평점과 2점 이상 차이 난 것이 몇 개인지 확인하고, 오교수는 피신고자이니 평점과 3점 이상 차이 난 것을 조사 후 누가 더 많은지 확인하여 결정하는 것이라 했다. 잘났다는 늙은이들의 언행불일치를 보자. 장관급은 개불! 꽉! 노동부 장관급은 다 개똥이다.
“무슨 그런 검증이 다 있습니까? 하려면 똑 같이 같은 조건으로 해야지” 하며 계속 우겼으나 이들은 막무가내다. 이를 놓고도 한참 실랑이를 벌렸다. 지금은 이해 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는 오히려 이런 나의 행동이 이들에게 의심을 산 것도 같다. 내가 억울한 선수 학교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거나 뭐 이런 것…, 하여튼 뭐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그렇게 그들은 하나하나 천천히 평점과 차이 난 항목들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다. “뭔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확인하여 잘못된 것이 확인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확인이 되면 당연히 결과를 바로 잡아야죠” 그렇게 나와 수 차례 약속했다.
오후 2시가 넘어 최종 결과가 나왔다. 노인들도 최종 결과를 보고 모두 놀랐다. 결과는 나의 경우 평점과 차이나는 것이 20개 정도라면 오교수는 보다 유리한 조건임에도 수백개가 나왔다. 그러니까 오교수가 밀고 있는 선수는 모든 항목을 만점(어쩌다 9점) 처리했고 억울하다는 선수는 거의 0점(어쩌다 1점) 처리했다.
노인들은 마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대회 운영 규정에서부터 전부 처음 부터 계획된 조직적인 범행이다.
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111/240

나를 기다리라더니 다시 그들끼리 따로 회의에 들어 갔다. 얼마 후, 장관급이라는 노인들이 나오더니 내가 원하는대로 할 테니 조건을 제시 하란다.
난 당연히 금메달을 주라고 했다. 그러자 누군가 노인들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하더니 은메달을 준단다. 아무리 대한민국 기능인이지만 이들은 전문 기술자인데 이렇게 간단하다. 노인들이 장관급이건 대통령급이건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장관급이면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지. 어이! 노친네들아!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리에 맞는 행동이 중요하다.
암튼 고려장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런 범행을 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는 등이 모두 빠지고 단지 그 학생에게 메달을 줌으로써 끝내자고 한다. 그것도 은메달을…, 이들의 행동이 매우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럼 처음 부터 거들먹거리지나 말든지. 난 억울한 선수에게 금메달을 주고 오교수는 앞으로 국가의 모든 심사에서 빼라고 했다.
그러자 그것은 어렵지만 기능대회나 공단에서는 더 이상 심사 등을 못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직 선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친구가 공단 직원으로 있었는데 이 친구인지 선수회 쪽 선배인지 몇 명이 찾아와 그만 끝내자고 했다. 참으로 이상하다. 그만 끝내고 아니고를 왜 나보고 결정 하라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 선수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곧 시상식인데, 나 때문에 열리지 못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기다린다며 성화다. 난 전날 저녁, 아침, 점심, 저녁 4끼를 쫄쫄 굶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있다. 얼마 후 선수의 의견이라며 은메달을 받아 들이겠단다. 하지만 은메달은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
전국대회는 무조건 금메달을 따야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 그러니까 전국대회 금메달과 은메달은 천지 차이다. 차라리 노메달로 하고 다른 배상을 하면 다음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 이를 그 선수에게 공지하라고 하자 그렇게 했다며 서명 하라고 한다. 대전 근처의 학교로 아는데 그런 더러운 메달 아직도 달고 다니냐?
사실 선수가 받아 들이겠다면 난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 또한 내가 직접 들은 것도 아니니 믿을 수가 없다. 이미 신뢰가 무너졌는데 금메달이면 모를까 뭘 믿고 서명 하나? 와중에 내가 서명을 하면 나 또한 오교수와 같은 배를 타게 된다. 이미 부정이 확인된 자와 어떻게 한 배를 탄단 말인가? 그러면 똥색의 메달에 나도 서명하는 꼴이다.
그래서 서명하지 않고 이 일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하기로 하고 자리를 떴다. 노코멘트를 약속하고도 이 글을 남기는 것 또한 이유가 있으니 차차 알아보자. 가끔 언론에서 검찰개혁을 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형사는 반드시 민사를 바탕으로 일어난다. 거의 99%, 그러니까 재미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 이상 그 바탕은 반드시 민사가 있다.
민사는 바로 이런 디테일에서 출발한다. 이런 문제를 자세히 보면 90% 이상은 공직자가 개입되어 있다. 따라서 검사가 공무원을 처벌하지 못하면 가치도 없는 형사소송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20년 소송에서 배운 것이라면 검사는 판사 출신이나 민사 담당을 많이 한 변호사 출신 중에서 뽑아야 한다.
그러니까 판사, 검사, 변호사 중에서 검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검사는 본인의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하겠지만 형사는 어지간하면 처벌받지 않고 그러면 민사는 암덩이리가 되어 더 큰 사건이 된다. 민사를 모르는 형사는 있을 수가 없지만 이를 아는 검사가 별로 없다. 더 디테일을 설명하자면 위 사건만 가지고 한 달은 더 설명해야 될 것이다.
민사를 고려하는 검사가 없는 이유는 형사만 판단하여 실적을 쌓아야 빨리 진급하니까?
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112/240
모든 공무원이나 기업의 평가는 정량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 정성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공정성에 시비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이것을 해결하라고 그 많은 공무원이 있다.
정량적인 평가는 문제가 많다. 형사가 혐의없음 되면 민사에서 매우 불리하게 작용된다. 엄청난 중대 범죄가 아닌 경우 민형사가 동시에 발생하면(대부분의 송사가 여기에 해당 됨)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으면 민사가 처리 될 때까지 형사의 공소시효 등이 모두 일시 중지돼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민의를 반영하는 아주 작은 단초(端初)가 될 것이다.
위 사건의 경우 공직자가 반드시 형사 고발해야 한다. 그래서 고소, 고발이 구분되고 110만 명 혹은 200만 명이나 되는 공직자가 있는 것 아닌가? 위의 경우나 나의 경우 공직자가 고발하여 풀어가야 하는 사건이다. 국가기관이 개입된 모든 범죄는 공무원의 고발로 출발해야 한다. 아마도 이러면 우리나라 범죄률 90%는 줄어 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판검사는 굶어 죽을까봐 걱정이라면 더 적은 사건을 더 자세히 본다고 생각하면 굳이 그 밥그릇 놓치 않아도 되니 염려 마라. 생각을 해 봐라. 공무원이 고발을 밥먹듯이 하는 나라라면 누가 감히 이런 범죄를 저지러겠는가? 이 외에도 난 여러 심사를 하면서 항상 크고 작은 소동을 일으켰다. 난 천덕꾸러기인가? 문제아인가? 애물단지인가?
아니면 진짜 정의의 사도인가?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제 발생 이후에도 여러 차례 다른 심사에 참석했지만 그 때는 온순했다. 더 이상 이런 심사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멍하니 정신이 나가버렸다. 청와대 무슨 실장인가 했던 사람이 항상 뒤에서 지켜보며 도와 준 것 같기도 하고, 너도 한 번 당해봐라 한 것도 같다. 지금은 후자에 가깝다.
암튼 장관급이라는 사람들도 절대로 신뢰하면 안 된다. 헉! 솔직히 이곳에서 전임은 절대로 못하겠다. 당시 경미대 교수들 급여 명세서를 우연히 보고 말았다. 이사장님! 교수들 대우 좀 잘 해 주시죠. 이러니 전부 밖에서 사고 치는 것 아닙니까? 물론 경미대 교수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난 전국구니까? 온교수나 유교수는 그럴 위인도 아니다.
형들! 미안해요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아무튼 그 날 이후 난 전임에 대한 생각을 많이 접었다. 경미대학에서 강의 끝나고 나오는데 여학생 한 명이 따라 오더니 좀 도와 달란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직장에서 일한지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 월급을 못 받았단다. 그래서 내가 그런 것을 어떻게 도와 줄 수 있냐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오교수님은 정교수님이 잘 아니까 도와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며 마치 내가 거짓을 말하는 줄 알더라. 아마도 오교수는 내가 노동부 쪽 즉, 공단과 일을 많이 하니 노동 관련 일과 구분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서울미대 나온 오교수 보다 약간 인문학 비슷한 환경대학원 나온 내가 더 잘 안다고 생각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를 나에게 넘겼다.
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힘들어 하는 학생을 위해 인근에서 가장 비싸 보이는 식당에서 밥을 한끼 사주고는 오히려 내가 배웠다. 노동위원회, 소청심사위원회는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이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지금 돌이켜 보니 어쩌면 교수들은 이런 것을 기본적으로 좀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자가 일하고 돈도 못 받는데 다른 무슨 기술적 지식을 가르친단 말인가? 사실 그날 이후 난 생각이 많았다.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난 흘러가는 세월에 월급쟁이로 굳어 버리기에는 여러 조건들이 좋다. 국제기능올림픽 선수 출신은 한국산업은행 대출 우선 순위가 있고, 한국산업은행 은행장은 가까운 친척이다.
내가 여러 차례 공청회에 참여한 기능장려법은 대한민국 영업이익의 우선 순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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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파트 특별 분양권도 아직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니 나와 일반 사람들의 기준은 분명히 다르다. 나의 아지트는 프로젝트를 수행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비가 잘 갖추어져 있다. 시설적인 측면에서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보다 낫다.
그렇다 보니 강정화 서울미대 석사, 서종산 서울대 교수, 성상문 협선대 교수, 김현선 한세대 교수, 정수지 서울대 석사, 이수연 서울대 석사 등도 다녀 갔고 여러 가지 준비도 하고 있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세금도 적지 않게 냈고, 온라인 교육도 운영 중이다. 경미대학에서는 산학반이라고 기업에서 학생을 교육하는 제도가 있다.
일산, 파주 지역 사다리차, 이삿짐 센터, 운송 등 협회장과 논의하여 경미대학 산학반을 운영하기로 했다. 그러면 2년은 경미대학 졸업장을 주고, 학점제로 2년을 더 운영하면 내가 4년제 졸업장을 줄 수도 있다. 물론 교육부 평생교육원장이 수여하는 졸업장(공식)이겠으나 나 또한 같이 수여(비공식) 할 수가 있다.
내가 여기 저기 교수 모집 지원서를 접수 할 때 지방 신문에 교육부 인가된 학교라며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모집 공고가 났다. 어차피 별 의미를 두지는 않고 그동안 이력서를 여럿 출력해 놨으니 그 중 하나를 접수 시켰다. 평생 기술자로 내 사업을 하고 싶었으나 서울대 졸업장은 이상하게 계속 대학으로 연결됐다. 어쩌면 가장 쉬운 길일지도 모른다.
서울대 졸업장이 없었다면 참으로 먼길이겠지만 서울대 졸업장은 나를 계속 학교 가까이에 묶어 두었다. 2000년 8월경 1차 서류심사에 합격하여 면접에 참여하라는 통지가 왔다. 강성존 운영처장이 약간의 설명을 더해 주었다. “우리 학교는 다음 등 벤처기업과 매일경제, 동아대 등 컨소시엄으로 교육부 인가를 마쳤습니다.
초대 총장으로는 전)교육부 차관을 지내셨고, 지금 청와대에 계신 조규향 교육문화수석이 오실 겁니다. 오늘 면접은 조규향 수석이 청와대에서 잠깐 나와 진행하십니다.” 설명을 마친 강성존는 윗층 면접실로 나를 안내 했다. 조규향이 앞에 있고 옆으로 몇 명 더 있었는데 누군지 기억하지는 못한다. 아마도 조현제, 강성존, 황인대 등이였을 것 같다.
조규향은 “영어는 얼마나 합니까?”, “잘 하지는 못합니다. 서울대 대학원 시험에 합격한 정도입니다.” 조규향은 서울법대 출신이라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 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컴퓨터 교육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G전자에 있으면서 연수원에서 C언어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프로그램들은 대부분의 책으로 배웠습니다.”,
그러자 옆의 누군가가 “C언어가 뭡니까?” 하자 조규향이 “컴퓨터 언어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20여년간 소송을 통해 유추하자면, 조규향의 일탈로 면접을 본 것 같지는 않다.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로 면접에 참석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대중 대통령 지지자들은 여차하면 조규향의 일탈로 취급하려는 전략이 감추어져 있을 수도 있다.
추론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평생교육법에 원격대학을 설치하여 조규향이 나를 교수로 채용하게 했다. 여기 저기서 투쟁하는 나를 돕거나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 나에게 힘이 되고자 조규향을 보냈을 수도 있다. 또한 기능장려법의 특권으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 권리를 지킬 수 있게 서울법대 출신이 법률적 방패가 되라는 뜻으로도 예측된다.
하지만 조규향은 그 뜻을 알지 못해 부산 인맥이 있는 여자 분을 교수로 채용했고, 김대중 대통령 지지자들은 김대통령 쪽으로 불똥이 튀는 것을 막으려는 생각으로 그 뜻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 것 같다. 주인공이 조규향이 아니라 정동배로 보면 이해가 쉽다. 솔까 딸랑 서울법대 출신이 무슨 법률적 이익이 있나? 와! 진짜 논리 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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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사실상 면접 본 것도 잊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원서를 내어 면접을 본 곳도 있고, 또 동면대학 같은 경우는 꼭 전임으로 오라는 곳도 있었다. 당시 미대는 석사가 최고였고, 서울미대 교수들도 김민수 교수를 제외하면 모두 석사다.
환경대학원 미대 출신들도 서울대, 홍대, 서울여대, 한양사이버대, 이대, 서울과기대 등 모두 인서울 교수다. 서울미대 디자인과는 석사를 1년에 2-3명 밖에 배출하지 않아 석사를 받으면 서울대, 홍대, 국민대, 중앙대, 이대 등 교수로 간다. 그러니 지방에서는 서울대 석사 하나만 있으면 천하무적이다. 다른 전공으로 치면 거의 하버드 박사와 동급이다.
어떤 지방대는 강의를 가면 학장이 찾아와서 인사를 할 정도다. 이럴 때면 항상 황교수님과 상의를 했고 교수님은 ‘지방으로 갈 것 같으면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당시는 일거리도 많았고 강의 오라는 학교도 많았다. 난 서울대 졸업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G전자 디자인연구소의 10년 넘는 경력에 대통령 훈장까지 있다.
그 외에도 난 3D MAX나 AUTO CAD, 다이렉트X, 코딩, 그래픽 툴 등 관련 못 다루는 프로그램이 없을 정도의 기술적 강의도 가능하니 굳이 마다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가능한 4년제 대학 강의도 서울 쪽으로 돌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현선이 형이 오라고 하면 거부 할 상대는 아니다.
추론되는 몇 가지를 보면, IMF 이후 방송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럼 이 많은 인재들을 다 어떻게 하란 말이냐?’ 내가 이 방송을 기억하는 것도 그렇고 여러 법률적인 소송을 진행하며 알게 됐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법으로는 내가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릴 수도 있다.
물론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 천재 중의 천재라는 전제로 보면 그렇다. 뭐 천재라는 생각도 들고…, 비록 지금 이러고 있지만 법률적으로 난 이재용이나 윤석열 보다 대한민국의 중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네? 그런데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사람의 스펙, 실력, 행동하는 양심, 법률 등을 본 것이 아니라 국가를 이루는 여러 가지를 종합하여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그 시스템에서 내가 그럴 수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 지지자들이 진정성 있게 김대통령을 믿고 나를 봤으면 이런 잘못된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김대통령이 말하는 인재는 학벌이나 돈, 특정한 능력이 아니다. 대한민국 법에 의한 인재란 절대로 지켜져야 하는 사람을 말한다. 단순히 기능장려법만 놓고 보면 뭘 그걸 가지고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세상의 균형이나 공정, 정의, 노동, 환경, 정보, 교육, 문화 등 여러 가지를 놓고 보면 그렇게 된다. 그러니 따지지 마라. 그냥 주장이지 나도 잘 모른다.
정확히 김대통령은 정동배를 본 것이 아니라 모든 법과 세상을 보고 제도를 만들었고, 내가 그 제도에서 살아 남기에 최적화된 사람으로 보면 더 맞는 표현이다. 서울디지털대학교(반국가단체)에서 동침이 시작됐고, 공단 직원들이 나를 돕지 않을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공단에 근무하던 전)청와대 무슨 실장 출신이 나를 돕는지 한겨레 아니면 경향의 월간지 ‘닷컴’ 가장 뒷면에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창간호는 SM에 이수만 사장이 쓰고 다음으로 내가 썼다. 2001년 이 글을 시작으로 많은 글을 남겼다. 공단에서 전화가 왔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건물을 같이 쓰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한국위원회다. 서울법대 건물을 함께 쓰는 환경대학원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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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환경대학원을 다니지만 그냥 서울법대라고 한다. 환경대학원은 잘 모르지만 서울법대 건물은 다들 잘 알고 있으니 편하게 그렇게 했다. 내가 서울 처음 올라 왔을 때도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진주라고 했다. 사천에서 왔다고 하면 사천이 어디지? 강원도에 있나? 충청도에 있나? 그래서 그냥 진주라고 하면 대충 더 묻지 않는다.
그러니까 난 진주 아니고, 서울법대 아니고, 정수직훈 아니고,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아닌 사천, 환경대학원, 국가대표 훈련장, 국제기능올림픽대회한국위원회 이렇다. 공단에서 전국대회 그래픽디자인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지난 번 일을 거론하며 같이 하는 심사위원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것은 보안 사항이라 말을 할 수가 없단다.
그럼 서로 신뢰 할 수 없으니 가지 않겠다며 끊었다. 다시 연락이 왔다. 심사장이 바로 그 오정도 교수라는 것이다. 와! 난 처음 장난인 줄 알았다. 그 난리를 치고 기술위원장, 장관급이라는 아무짝에 쓸모 없는 노친네들이 하루종일 검증하고도 밥만 축냈고, 모두가 확인한 범죄자를 심사장으로 모시니 정의의 사도 비슷한 니가 와서 똘마니 좀 하란다.
이 글을 읽고 똘마니로 갈 사람 손! 그날 이후 난 공단에서 하는 그 어떤 심사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 나라에 정의나 공정이 있다면 그 장관급이라는 기술위원 노인들, 지금은 세월이 지나 대부분 늙어 죽었겠지만 이들 모두 청년과 나의 꿈을 짓 밟고 나랏돈으로 먹고산 죄를 물어 파묘하고 부관참두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무짝에 쓸모 없는 이 늙은이들 모두에게 즉시 공정이 무엇인지 보여주길 바란다. 아니면 산자는 선거권을 박탈하고 죽은 자의 투표를 무효화하면 어떨지? 국가는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이제 곧 엄청난 노령화가 가속만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 될 것이다. 그러면 이런 쓰잘데기 없는 노인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해결책은 딱 하나다. 대한민국판 부관참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생명 박탈이 아니니 국제법 위반도 아니고 연좌제를 부활하는 것도 아니니 부담도 없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쓸모 없는 것들은 치워야 한다. 도독질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노인은 용서해도 젊은 사람의 꿈을 빼앗는 늙은이는 절대로 용서하면 안된다. 젊은이의 꿈은 곧 나라의 미래다.
아무리 역사가 중요해도 모두는 미래를 산다. 노인이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똥칠을 하고 다녀도 용서해라. 미성년자 성폭력은 용서해도 젊은이의 꿈을 짓밟는 자는 절대로 용서 하지 마라.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는 늙은이를 장관급이라며 노동부에서 모시니 세상에 보이는 것이 없다. 젊은 사람 중에도 촉법 등을 내세우는 인간 쓰레기가 있다. 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젊다고 모두 꿈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능 선수들은 얼마나 열심인지 아나? 이들에게 부정을 행한 것은 분명 국가 미래의 꿈을 짓 밟은 것이니 이들을 처벌하라. 하루 종일 개고생하고 마치 처벌 할 것 처럼 기만하고 다음 해 심사장이라니 이 염병할 노친네들…, 아니 발씨놈들이 장관급이라며 거들먹거리지나 말든지…, 놈쌍의 늙은이 끼새들!
나 때문에 서양연이도 참 힘들었다. 양연이는 공단 직원이지만 나하고 국제대회 동기로 바로 옆에서 훈련했다. 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교 역할을 했다. 이번에는 찾아와 국제대회 심사위원을 해 달라고 했다. 현선 선배가 심사를 하고 있는데 국제대회 심사하는게 뭐 그리 대단한거라고 좋다며 선배 배신하고 뛰어 가겠는가?
이후도 몇 번을 찾아 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서울대를 뒷멍구으로 들어가도 자존심은 있다. 그깟 자리 때문에 사람 배신해 가며 의리를 저버릴 S대 출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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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성폭력은 개인에게 씻을 수 없는 악몽이고 고통이다. 하지만 꿈을 짓 밟는 것은 국가를 갉아 먹는 짓이다. 그런데 나랏 돈으로 이런 놈을 지켜…, 후배님들! 무엇이 중한지 알겠나? 언론에 끌려 다니지 마라. 양연이가 중재한다고 뛰는 바람에 김경협 감사도 만났다.
내가 공단에 불만은 많았으나 고등학교 선배는 언제 만나도 부담이다. 학교 다닐 때 선배들한테 많이 맞아 봐라 그렇게 된다. 고등학교 같은 과 선배 김경협 의원은 성격이 온화하고 차분하다. 그래서 난 불만 등을 마음껏 토로했고 선배는 항상 조용히 들어 주었다. 이 시점에서 사건을 한 번 더 유추해 볼 필요가 있다.
정동배는 어릴 때부터 가난하고 순수(무식)하게 자랐다. 이런 놈이 계속 발버둥쳐 꾸역꾸역 세상의 일원이 되면서 사회의 작은 부조리들에 맞서 싸우게 된다. 이는 정치인들이 보기에 이용 가치가 있다? 국가는 일반적인 흔한 절차로 사회의 질서를 만들어 놓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국가의 개입으로 사회의 판을 다시 짜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국가의 개입으로 일부 ‘의지의 한국인들’을 사회의 중심으로 끌어 들이는 일을 한다. 다들 보편적으로 말을 잘 듣지만 이용 가치가 없으면 버린다. 이들은 대부분 국민들이 알만한 사람들인 것 같다. 그렇게 각 분야별 특성이 있는 사람들을 국가가 나서거나 보이지 않게 지원 한다. 주변의 내 친구들도 여럿 여기에 포함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기능올림픽 출신이나 체육올림픽, 명장, 인간문화재, 명창, 유학파, 국내파 의지의 한국인 등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뒤에서 지원하기도 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이는 단지 내 추측일 뿐인데, 여기는 대충 몇 개의 그룹이 있다. 지인들 중에도 명문대에 들어간 친구들이 있는데 이들은 거의 1그룹에 포함된다.
다음이 2그룹이고 아마도 4그룹까지 놓고 사람들을 분류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니까 이런 정책이 실시될 때까지 난 4그룹 정도에 포함 됐을 것으로 유추된다. 아마도 1그룹에는 심형래나 황영조, 같은 학교 박사 일부, 유학파 그리고 기능올림픽 선수들 중에도 동기 이연아, 고대에 들어가거나 외국에서 박사를 받은 선배 등이 좀 있는 것 같다.
1그룹에 속한 사람들 중에 일부를 서울대학원 시험에 여럿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모두 영어에서 탈락해 서울대는 그냥 포기한 것 같다. 그런데 4그룹 이하에서 별볼일 없던 정동배가 서울대학원에 합격 하면서 졸지에 1그룹에 나타난 것이다. 쉽게 말해 거의 원석 수준이다. 그룹은 거의 한 단계를 올라 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반국가단체(서울디지털대학교)는 테스트베드?
체육올림픽의 경우 금메달 중에서도 특히 일부만 1그룹에 속하고 대부분의 금메달도 3그룹 정도에 속한다. 기능올림픽의 경우도 금메달 일부 여기에 속하고 나처럼 은메달인데 대기업 본사 정도 다니면 4그룹 정도에 속한다. 그래서 나를 부정이나 뒷배, 특혜 등으로 서울대학원에 합격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신병들 생각하는 것 하고는…,
그러니 3그룹 이하가 1그룹으로 올라 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내가 서울대학원, 그러니까 그동안 1그룹 사람들을 상대로 여러 차례 시도 했는데 모두 실패한 서울대학원을 4그룹에서 들어간 것이다. 그러니 내가 4그룹에서 1그룹으로 바로 올라섰다.
그러면 정부에서 콩나물 키우듯이 살살 다루어 일어설 수 있게 도와 주어야 될 놈인데 4그룹에서 1그룹으로 올라간 놈이 그만 1그룹에서 날아다녀 버렸다. 위의 글로 내가 얼마나 날아 다녔는지는 대충 알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나오니 정독해라. 사실 난 누군가 지켜 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그냥 열심히 살았던 것 뿐이다. 서울대학원에서도 중도 포기 하지 않게 래몰 도와 주려 했는데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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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니, 누군가 지켜봤고 그러면서 살짝 도와 주려다가 오히려 모두 나한테 끌려 다녔다. 속된 말로 이 나라에서 누가 서울대 수석한 놈을 도와 줄 수 있겠는가?
서울대서 수석만 한 것이 아니라 국무총리나 국정원장을 모시고 행사도 주최하고 당시 1급 공무원이었던 행정실 직원과 싸우는 등 도무지 통제가 안 된다. 국가기관이나 정치에 들어 가서도 말을 안 들어 20년간 국가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 동원해 뺑뺑이를 돌렸다. 난 어릴 때부터 뺑뺑이 도는 것을 잘 한다. 국가는 모든 일이 명분이다.
아주 사소한 것 까지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그 모든 명분을 통과 해 버렸다. 자 이제는 어떻게 할까? 부장판사 부장검사 50% 이상이 내 후배고, 1급 공무원 대부분도 내 후배고, 내 아랫 사람들이 국회의원도 수두룩하다. 그럼 이제 국가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다. 무식한 정치인들은 자기와 상관 없다고 하겠지만 정치는 지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견이나 정책이 나오면 이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이 나라는 잘난 놈으로 100만이다. 우리나라는 정당 정치고 그렇게 지시를 했는데 이들의 움직임과 무관하다면 이놈이 정치를 계속 해야 하나? 난 그 100만명과 싸워 홀로서기에 성공한 사람이다. 결국 모든 논리의 모순점에 도달 했다. 박지원은 이런 모순점을 직접 말하고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의지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물어다 주는 밥만 받아 먹다 보니 지금은 그 밥상만 기다리는 꼴이다. 따라서 1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비교적 다루기가 쉬운 반면 3그룹이나 4그룹에서 졸지에 치고 올라온 정동배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컨트롤이 힘든 놈이다.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이 재임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검토 한 것 같다. 보통의 경우 금메달 등이 1그룹인데 4그룹에서 1그룹으로 올라온 정동배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1그룹이니 이런 것은 전부 내가 유추한 것일 뿐 국가 기관에 실제 이런 제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식하게 내가 몇 그룹에 속하냐는 등 민원 넣지 말라는 소리다.
정리를 하다 보니, 노무현 대통령은 진심으로 나를 아낀 것 같다. 그냥 마음이 팍팍 느껴진다. 1999년 12월 내가 이병주 차장과 하버드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머물든 경영대학원을 둘러 보았고 두달 후 2000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은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했다. 난 절대로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오늘 서울대 교문을 나서면서 서울대 출신임을 잊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서울대 졸업생 전부를 보고 한 말이지만 어쩜 나에게 한 말 같다. 난 고졸로 세상에 나갔으면서 대졸로 살았고 서울대 석사를 받고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국졸, 고졸 혹은 중졸로 살았다. 물론 법을 해결하는 등 래몰 대졸이나 대학원졸로도 일부 살았다.
우연인지 몰라도 아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다음 달인 2000년 3월부터 서울대서 강의를 했다. 어쩜 우리 교수님들이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의 선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솔직히 서울대학에서 내가 교수님들 눈에 뛸 만큼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그 곳은 진짜 잘난 사람들이 많다.
서울대 15동 건물에서 고시패스했다고 명함 내밀면 진짜 친미놈이다. 대충 돌아다니는 학생들도 사법고시 정도는 다 패스하고 다닌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이때 쯤으로 추정되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방송에서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라.’ 하신 후 계속해서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했다. 난 잘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면 일단 따라 하고 본다.
물론 더 많은 말씀을 하셨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이 이런 말들이다. 이 때부터 국가보안법이 시작된 것 같다. 정확히는 지금의 국보법과는 조금 다르다. 다시 정리하면 지금 윤석열 대통령께서 하시는 계엄령, 무슨 법사니, 군의 국회 진입 등 모두
118/240 김대중 대통령 혹은 그 지지자들이 만든 대중표 국보법이다. 그러니 길거리서 촛불을 들었건 질서 있는 데모니 등 모두 김대중을 똥으로 취급하는 짓이다.
결국 운동권들에 의해 완벽하게 국가보안법 위반에 맞게 만들어져 상대 당에 넘기면 국가보안법을 만든 사람들 스스로 이를 폐지하라는 식으로 변질된 것 같다. 이는 상대당이 아니면 누군가 스스로 불쏘시개 혹은 양초가 된 김대중 대통령을 쳐야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대중을 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하나씩 비켜가는 중이다. 난수표를 받아 윤석열을 반대하며 시위는 지금 무식한 놈들은 김대중을 치는 중이다.
그런데 누가 이 나라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치겠는가? 시간의 문제지만 노무현이나 문제인, 정동영, 한화갑, 박지원 중에 누군가 김대중을 치고 많게는 10여년 혹은 몇 년 후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면 김대중 대통령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국가보안법은 나나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듯이 이해 하면 스스로 따라가는 법이지만 결코 쉽지가 않다.
같은 과정을 거치면, 지난 20년 간의 나처럼 약간 바이벌 비슷하여 여기에 동조하게 되고 그러면 김대중 대통령은 다시 자리를 찾는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위의 사람 중에 누군가 지금 나의 고통을 함께 감래해야 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박정희나 전두환 보다 더 누리고 사는데 누가 그 불 속으로 뛰어들겠는가? 전부 입만 살아 있다.
그래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은 나 역시 김대중 대통령을 약간이지만 신성시 한 부분이 있다.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나나 김대중 대통령은 인성이 더 강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어 옛 청와대 건물에서 도배하고 칠하며 지낸 세월을 결코 달갑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나 역시 사천에서 같은 일을 하며 발발시시 했던 것과 같은 심정이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을 선입증 후집행으로 바꾸면서 나와 같이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라 생각했고 이를 어떻게 입증할 방법이 없어 만들어서라도 진행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서울디지털대학교(반국가단체) 같다. 첨부는 처음 부터 알리바이를 만든 흔적 등이 있으니 고정 간첩으로 보고 국가보안법 제7조로 처벌하면 된다.
이런 부분까지 알지 못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경 같은 사건이 터지자 정동배를 같은 조직으로부터 빼내기로 했지만 당시는 국가보안법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최병렬 등 당신을 탄핵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이 법이 지나가는 모든 관련자들을 같은 법으로 처벌하게 했다.
그때 방송에서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디지털아트연구소를 설립하여 정동배를 반국가단체로부터 분리 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나와 무관하고 황당한 문서위조로 내가 고소, 파면, 운영 중지된 것은 전부 노무현 대통령의 작품이라면 모두 이해가 된다. 노재봉 총리도 같은 문서에 서명은 했지만 일의 흐름은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처음 내가 사문서 위조로 고소 당했다고 하니까 ‘그것은 내가 싸인했어! 내가 서명했는데 왜?’ 하시는 표정에서 당신 역시 너무 기가 찬 표정이었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는 표정은 아니었단 소리다. 경찰과 전화 통화하면서 당신이 만든 서류라 하셨고 경찰, 검찰도 대부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대통령령 밖에 없다.
물론 검경이 잘 한 것은 아니다. 노대통령은 일을 지시한 것이 아니라 관행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국회 청문회 등에서 관행으로 시끄러웠다. 관행은 검찰이 고소 내용과 상관없이 최병렬 등과 정동배를 놓고 저울질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소송 중에 나경원이 법률고문으로 등장하자 정동배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사법 시스템을 너무도 잘 알았다. 결국 또 유호근의 문제인데 유호근 검사가 이런 결정을 하면 다른 검사나 법원은 이 결정을 엎을 증거가
119/240 나오지 않는 이상 모두 따라 간다. 암튼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노무현 대통령도 나라법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고 서거 전날 김대중 대통령을 두고 온 것을 알게 됐을 것 같다. 이런 사법 시스템을 고려 하면 이용훈 대법원장이 마치 이를 알고 그런 말을 한 것 같으나 금방 사과한 것을 보면 이는 누군가에게 듣고 그냥 해본 소리 같다.
암튼 노무현 대통령은 반국가단체로부터 정동배를 완전히 빼 내는데 모든 것을 바쳤으니 스스로 탈출한 것이 맞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은 확실히 나와 같은 편이다. 노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는 대통령들의 싸움이다.
그러니 딸랑 장관이나 국회의원 한 번 했다고 까불지마라. 이를 유심히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만 해도 몸에 힘이 들어가며 눈물이 난다. 다들 좀 깊이 생각하자. 위대한 정동배가 아니라 김대중과 노무현을 생각하라는 소리다. 난 이분들에 의해 만들어진 아주 보잘 것 없는 작은 피조물일 뿐이다.
나를 무시하면 두 분을 무시하는 것이란 말이다. 그냥 확! 김대중 대통령을 약간 신성시하여 모셔 오려 했으나 문제인 대통령과 다수당이 나를 버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버렸다. 그래서 지금 중천에 있다. 이 일이 집행되면 의외의 사람들이 죽거나 살자 할 수도 있다. 이는 무식해서 그런 것이니 죽지 말고 조용히 수의를 받아 들여라.
아직도 정신 못차리는 정치인이 있는데 까불지 말라면 까불지 마라. 건방지게…, 지금은 루비콘강을 두 번 건넜다. 서울대 강의가 끝나고 2001년부터 동침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어쩜 학교 대부분이 실험쥐였는데 정동배만 빼고 모두 잘못된 돈에 눈이 멀어 버렸다. 내가 조규향 등에 속아 학생들에게 인가 됐다며 사기친 것으로 일부 학생들의 오해가 있을 수 있으나 총장, 교수, 직원, 학생 등은 모두 내가 합류하기 전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니 최소 학생 800여명과 직원들이 먼저 나를 속였고 내가 떠날 때 역시 학생들이 하나가 되어 나를 속였다. 돌이켜 보면, 난 당시 갈 수 있는 대학들이 좀 있었다. 꼭 나를 위해 대학의 전공을 만든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대학들이 많았다. 그런데 일부는 내가 면접 등에서 탈락했지만 일부는 내가 거절했고 그러면 자꾸 다른 곳이 생겼다. 그런 와중에 서울디지털대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나에게 선물을 준 것이 아니라 명분이였고 최종적으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 할 구실이 되어 버렸다.
물론 조규향이 하기에 따라서는 선물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은 늦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조규향을 포함한 의지의 한국인들을 모아 만든 테스트베드가 바로 서울디지털대학교다. 조규향이 처음 부터 정동배를 교수로 채용했으면 정상적으로 인가가 났고 그러면 나를 이사로 앉혀 국가의 모든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며 경영, 해외 파트, 법률 지원 등 각 전공을 살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조규향이 동향 여자 교수를 채용하여 일이 틀어지면서 마지막 어디선가 인가가 불발됐고 대안으로 신고제로 출발하면서 역시 주인공 정동배를 억지로 집어 넣었다. 당시는 학교의 대부분이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황인대의 카리스마에 조규향이 벌벌 떨어버렸다. 그렇게 김대중의 선물은 계속 변색되어 국가보안법으로 정착했다. 조규향 박통대 총장님! 법은 말입니다. 정책에 의해 어떻게든 계속 흘러가는 물과 같습니다. 내가 법 입문까지 강의 해야 합니까? 사천시 말단 공무원과 청와대 수석이 동급이면 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양날의 칼인 셈이다. 이쯤에서 내가 동침하기 전의 경기도 고양시 내 아지트에 대한 설명을 좀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오너였던 일반사업자로 등록된 디지털디자인연구소는 여러 장비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컴퓨터는 대략 4대 이상이 있었다. 왜 정확한 수치가 불가능하냐면 나의 연구소 컴퓨터는 모두 내가 직접 용산에서 부품을 구입하여 조립한 것들로 보통 삼성이나
120/240 LG의 최고 사양 보다 최소 2배 이상 뛰어난 것들이다. 물론 가격도 비쌌다. 하드, 메모리, 보드, 카드 등 모두 당시 용산에서 판매되는 최고의 사양들로 장착했다. 이렇게 되면 주변에는 컴퓨터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은 부품들이 많이 있다. 당시는 돈도 많이 벌었지만 대부분 새로운 장비를 구입하는데 재투자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컴퓨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친미 듯이 새로운 부품이 나오면 구입해서 장착하고 서로 비교도 하며 살았다. 그렇다 보니 용산 전자상가에 가면 사장님들도 여럿 알았고 한 집 건너 한 집에 지인이 있을 정도였다. 또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그래픽 카드나 보드 등에 대한 정보도 주고 받았다.
나의 아지트에서는 인터넷으로 여러 프로그램들 비교 분석도 했다. 돈만 보면 굳이 시간 강사를 왜 뛰었나 싶을 정도로 씀씀이나 생활도 좋았다. 아지트 구석에는 하드 디스크를 옆에 여럿 쌓아 놓고 작업했기 때문에 나와 영팔이가 사용하는 컴퓨터와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는 고사양 두 대 정도가 있고 주변의 뭐라 말하기 곤란한 부품들이 좀 있었다.
디지털카메라는 소니 제품으로 당시 방송국 PD나 감독들이 사용하는 고사양 제품이었고 노트북에 편집기도 몇 대 있었다. 소프트웨어도 정품이 있었고 사운드도 최고의 시설들을 갖추고 있었으며 전문가용 제도판도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용산인지 압구정동인지는 모르겠으나 연구실에 있는데 이성규 박사가 방문을 꽝 열면서 들어왔다.
왜 정교수 혼자 좋은 장비를 사용하냐며 화를 내더니 내 디지털카메라를 휙 가져가 버렸다. 너무 순간적인 일이라 난 아무 말도 못하고 멍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얼마 후 행정실 쪽에서 이성균이 소리를 지르며 왜 정교수만 좋은 장비를 사주어 강의를 좋게 만드냐며 항의를 했다. 그러자 관게자는 학교에 아직 디지털카메라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정교수한테만 래몰 좋은 카메라를 사준 것을 안다며 내 카메라를 들고 보여주며 항의를 하자 행정실 직원이 학교는 아직 카메라가 없고 아마도 정교수 개인 장비 같다고 했다. 좀 기다리자 내 방으로 빼꼼히 들어 오더니 혹시 카메라가 내 개인 장비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렇다고 하자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더니 그럼 노트북은 누구 것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것도 내 개인 장비라 하자 아마도 그날 이후 내 앞에서 상당히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 같다. 내가 조현제와 가까이 지내니 다른 박사들과 직원들이 나만 좋은 장비를 사준 줄 알더라. 그러면서 내 장비를 이놈 저놈 막 들고 다니면서 오히려 어떤 때는 나한테 주지도 않더라. 참 나! 학교의 모든 장비를 다 합쳐도 내 개인 장비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운영되다가 등록금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장비를 구입했다. 그러니까 사실상 초창기는 모두 내 장비로 시작했고 다른 교수들은 캠으로 쵤영했다. 행사 등에서 내 장비로 여러 학교 문제를 해결하자 조규향도 굴러 들어온 놈이 더 낫다며 좋아했다.
디지털카메라는 2000년 7월 26일 소니 제품을 당시 수백 만원 주고 내가 직접 구입했다. 그동안 내가 세상을 작게만 봤다면 지금 용산에서 보니 디지털아트연구소 등은 하나의 절차일 뿐이다. 결국 국가보안법을 처음 만든 사람들이 폐지하게 만들기 위해 이런 전략을 의기투합하여 만들어낸 정책(?) 같다. 사육신 같은 피바람이 불만한 발상이다. 그동안 내가 생각하는 사태의 심각성 보다 다수당에서 생각하는 무사안일함이 일을 점점 키웠다.
어차피 1999년 경이나 2000년 경부터 준비된 일이니 김대중 대통령 쪽에서는 마음 먹은 데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사천시 공무원들도 처음 부터 콱 지고 있었고 이들은 아무 저항도 못하고 그대로 순장의 길로 빨려 들어온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쪽이란 김대중 대통령을 포함하지 않는다. 내가 더 디테일을 설명하면 이 부분은 모두 공감하게 된다. 정황증거라도 너무 명백하다.